엘 불리: 요리는 진행 중
El Bulli: Cooking In Progress, 2011

‘엘 불리’는 스페인 코스타브라바의 작은 해안가 마을에 위치한 세계 최고 레스토랑의 이름이다. 1964년 문을 열어 2011년 문을 닫기까지 미슐랭 3등급을 14년간 유지했고, 영국 잡지 ‘Restaurant Magazine’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식당에 5년간 이름을 올렸다.
이런 유명한 레스토랑이라면 그 규모가 상당할 것 같지만, 엘 불리는 1인 325 달러 정도의 코스 요리만 선보였고 하루 단 50명 정도의 손님만 받았으며, 1년에 6개월은 신메뉴 개발을 위해서 휴업했다. 다음 시즌의 예약은 단 하루 만에 마감되었고, 시즌 별 8000석의 자리를 두고 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약을 신청하곤 했다. 스페인의 외딴 마을에서 소규모로만 운영하며 운영일도 한정되어있는 레스토랑이 어떻게 이런 세계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며 사랑 받았을까?

<엘 불리: 요리는 진행 중>은 엘 불리가 문을 닫기 몇 해전, 그들이 6개월간 휴업을 하고 요리 연구에 매진했다가 다시 레스토랑을 개장하는 과정을 속속들이 보여주면서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다큐멘터리다.
이 레스토랑을 이끄는 페란 아드리아와 그의 셰프들이 보여주는 체계성, 창조성, 혁신성과 요리에 대한 진지하고 열정적인 태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요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며 세계 최고의 명성이 결코 쉽게 얻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전설적인 레스토랑의 독특한 요리 연구법
다큐멘터리는 우선 천재 셰프로 칭송 받는 페란 아드리아와 그가 이끄는 엘불리의 셰프들이 6개월간 바르셀로나의 실험실(?)에서 기존의 음식과 재료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하는 과정을 담는다. 예를 들어 고구마라는 재료가 있으면 이를 삶아보고 쪄보고 구워보고 말려보고 즙을 내보면서 가장 좋은 풍미를 내는 방법이 무엇인지, 어떤 오일과 제일 잘 어울리는지, 어떤 모양으로 담아야 아름다운지를 연구한다.
재료 하나하나를 속속들이 해체하여 새롭게 재구성하는 이런 과정을 혹자는 '분자요리' 라고 하고, 페란 아드리아는 ‘해체주의 요리’라고 부른다. 이는 잘 알려져 있는 요리와 그 재료들의 본질은 남기되 질감과 형태, 풍미와 온도 등을 바꾸어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경험을 이끌어 내는 요리 방법이다.

이들은 실험실에서 한 재료를 수많은 조합과 방식으로 요리해 보면서 그 결과를 기록, 분류, 비교하고 다음 시즌을 위한 최상의 메뉴를 구성해 나간다. 엘불리에서는 35가지의 메뉴가 3시간 동안 서빙되는데 이 모든 메뉴는 전에 시도된 적 없는 새로운 것이어야 하고, 풍미와 프레젠테이션, 질감과 형태 면에서 다른 가능한 시도보다 뛰어나야 한다. 엘불리의 셰프들은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메뉴를 창조하기 위해 요리사를 가장한 괴짜 과학자, 분석가들 같은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메뉴를 개발할 때는 ‘맛’조차 나중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 놀랍다. 페란 아드리아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시점에서 맛 보다는 마술 같은 뭔가가 있는지,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창조적 연구가 지금 시점에서는 제일 중요하다”, “우리가 매년 추구하는 것은, 놀라움, 감정, 새로운 질감이다”. 이들은 6개월간의 연구를 마치고 다시 엘불리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사실 매년 레스토랑 문을 닫고 이런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은 노동과 시간, 비용이 엄청나게 드는 귀찮고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요리에 대한 웬만한 열정과 진지한 태도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을 매년 해온 엘불리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요리가 주는 감각 경험 그 이상을 향해
이제 레스토랑 재개장을 얼마 앞두고 엘불리로 돌아간 페란과 셰프들은 보조 셰프들과 서버들을 교육한다. 레스토랑의 모든 구성원들이 군사작전이라도 수행하는 것처럼 엄격하고 재빠르고 체계적이게 움직이도록 주문하면서 페란은 그들의 어린 셰프들에게 요리와 창조를 가르친다.
페란은 한 수업에서 셰프들에게 “아방가르드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가는 건 창조적인 감정을 얻기 위해서다. 그냥 맛이 좋네!가 아니라. 뭔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죽인다!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이른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재료나 음식으로 절대 뻔하지 않은 질감과 맛, 형태를 경험하게 하면서 그 음식 속에 깃든 창조성과 혁신성에 감탄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고자 한다. 예를 들어, 라비올리라는 음식은 납작한 밀가루 반죽 안에 내용물이 채워져 있는 파스타의 일종인데 페란은 밀가루 반죽 대신 물에 넣으면 사라지는 특수한 재질의 반죽을 사용해 ‘반죽껍데기가 사라지는 라비올리’를 선보인다.

요리에 대한 엘불리의 이런 접근 방식은 우리가 생각해온 요리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요리는 그저 다양한 감각기관을 통해 맛있다, 예쁘다, 향기가 좋다고 느끼게 만드는 데서 나아가, 본 재료나 요리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과정 속에 깃든 창조성과 혁신성에 감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리가 이런 경험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손맛이나 눈대중이 아닌 체계적인 연구와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도 포함된다.

그냥 보기만 해서는 뭘 기대할 수 있는지 절대 알지 못할 엘불리의 요리들은 형태와 모양, 맛과 질감 등 모든 면에서 혁신적이다. 매년 세상에 없던 요리를 선보이면서 요리의 패러다임을 확장하고, 일반적인 요리가 주는 감각적인 경험 그 이상을 추구하며, 돈벌이 보다는 요리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넘쳐나는 엘불리.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누구나 그 세계 최고의 명성에 수긍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다만 혁신을 추구하는 엘불리와는 달리 다큐멘터리는 평이하고 지루하게 찍혔다는 것이 아쉽지만, 전설적인 존재감의 레스토랑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영상은 꽤나 귀한 기록이다. 2011년 문을 닫은 엘불리는 2014년 요리 연구를 하는 창조센터로 바뀌었고, 엘불리에 있던 셰프들은 스페인 곳곳에 레스토랑을 열었다고 하니 엘불리의 요리가 궁금한 사람들은 이런 곳들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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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미식가라 생각하는 사람
스페인 여행을 앞둔 사람
요리에 대해 진지하게 배우고 있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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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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