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의 계곡
In The Valley Of Elah , 2007

영화의 제목인 '엘라의 계곡'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남서쪽에 위치한 계곡으로 성경과 코란에도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이 한판 대결을 펼쳤던 장소이다.
골리앗 이라는 거인장수에 맞서 싸운 다윗은 나이어린 꼬마로 모두가 두려워하는 골리앗에 맞서 돌팔매질로 그를 무너트리고 훗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소년인데, 영화가 골리앗과 다윗이 싸웠던 장소를 제목으로 선택한데는 거인과 소년의 대결이 여러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데서 기인된 것일수도 있다.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골리앗으로,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찾기위해 공권력에 도전하는 아버지를 다윗으로 비유한 것이다. 영화 <엘라의 계곡>은 수많은 전쟁영화를 통해 보여주었던 전쟁의 당위성을 주장하지도 않고 약자의 입장에 서서 수많은 전쟁을 치뤄야만 하는 미국을 비난 하지도 않는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평하려는게 아니고 누가 다윗을 골리앗과 맞서게 햇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심도 있게 접근하는 영화이다. 다윗이 전쟁터에 떠밀려 나가게 된것이 흡사 이라크에 파병된 수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어쩔 수 없는 선택과도 닮이있기 때문이다.

진실속에 감추어진 아픔과 상처
군복무시절 헌병대에 근무했던 '행크 디어필드(토미 리 존스)'는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작은아들 마이크가 부대로 복귀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아들을 찾아 나서게된다. 아들이 명예로운 군인이 되기를 바랬던 행크는 큰아들도 전쟁터에서 잃고 작은아들 마저도 탈영했다는 오명을 쓰게되자 군부대와 경찰서를 찾아가지만 어느곳에서도 아들의 실종과 관련해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단순 마약사건으로 몰고가려는 군수사대는 마이크의 시신이 발견되자 사건을 재조사 하게 되는데 이것도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뿐이고 경찰과의 영역다툼과 지휘권을 장악하는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자신을 도울수있는 사람은 경찰서에서 상사의 성희롱에 괴로워하던 '에밀리 샌더스(샤를리즈 테론)'인데 에밀리의 도움으로 서서히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조사과정중 에밀리의 집에 머물때 아들 데이빗과 나눈 대화속에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면 영화의 제목으로 '엘라의 계곡'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듯 하지만 거대 권력에 맞서는 자신들의 미약한 힘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장면 이라고 할수도 있다.
조사가 계속될수록 진실은 서서히 밝혀지고 유순하고 착하기만 했던 아들 마이크가 전쟁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해 마약에 의존했었고, 극도의 불안감은 적군의 포로들에게 가학적인 고통을주며 해소하려 했음도 알게된다.

국가를 향한 다윗의 돌팔매질
영화 <엘라의 계곡>은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가 미국으로 돌아와 살해된 '리처드 데이비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그래서인지 재미를 주기위한 연출은 배제하고 철지히 한 군인이 겪어야만 했던 아픔과 상처들을 보여주는데 치중한다. 전쟁의 실체는 마이크가 생전 자신의 핸드폰으로 촬영한 영상이 전부이고 그 영상 마저도 뜨거운 중동의 열기를 이겨내지 못해 사람의 얼굴조차도 파악하기 힘들정도로 선명하지 못하다.
행크의 눈에 보여지는 아들의 영상속에는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상이 그대로 드러나있고 병사들이 겪어야만 했던 심리적 상처가 얼마나 큰것인지 여실히 드러나는데,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면 미국 병사들을 실은 트럭이 아이를 발견하고도 정지하지 않고 계속달려 결국 아이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차를 멈추는 순간 자신들은 적군의 표적이 되고 단 한번의 공격으로 부대원이 전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멈출수가 없었고, 공을 따라 거리의 한가운데로 따라올 수 밖에 없었던 아이는 영문도 모른채 돌진하는 트럭에 받쳐 사망하고 만것이다. 질주하느냐 목숨을 걸고 멈춰서야 하는가...이런식의 질문은 영화의 곳곳에서 등장한다.
결론을 보여주기 보다 그들의 행위를 보여주며 정당성을 강조하며 전쟁을 치룰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영화이다. 거꾸로 메달린 국기는 국제적 조난신호라고 한다. 행크는 성조기를 거꾸로 매달고 아들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국가에게 더이상의 아픔과 희생을 강요받아서는 안된다고 애원 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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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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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KANG ME JU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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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사무엘상 17장 48-51절은 이스라엘 민족과 블라셋 민족의 전쟁이 벌어진 엘라 계곡에서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전전긍긍하게 만든 블라셋의 거인전사 골리앗을 물매(새총)로 물리쳤다는 이스라엘의 청년영웅 다윗을 그린다. 성서를 통해 전승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그 이후로 현세까지 수많은 이야기꾼들에게 영감을 주며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2003년, 800여 개의 크루즈 미사일을 동원해 이라크를 초토화로 만든 미군의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이후, 미국은 국제질서를 지키겠다는 명목 하에 자국의 청년들에게 총을 쥐어준 채 먼 이국 땅으로 밀어 넣었다. 성경구절에 등장한다는 그 전장을 적시한 <엘라의 계곡 In the valley of Elah>은 외박을 나갔다 사라진 아들을 추적하는 아버지와 그 주변인들의 시선을 통해 먼 타국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조우를 소환한다. 군수사관 퇴역장교인 행크 디어필드(토미 리 존스)는 ‘다리가 부러져도 점호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원칙주의자이자 애국주의자다. 그는 자신의 소신에 입각해 두 아들을 모두 군대에 보냈으며 군에서 큰 아들을 잃었다. 그리고 이라크에 파병됐다 귀환환 둘째 아들 마이크(조나단 터커)가 외출 후 미복귀 탈영 중이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 직접 아들의 행보를 수사하고 추적해나가던 행크는 결국 암담한 현실과 대면하며 그 현실의 뒤편을 추적하다 자신의 뿌리깊은 소신마저 뒤흔들만한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포스트 9.11 이후, 미국과 중동의 갈등관계를 묘사한 작품들은 차고 넘치게 등장했으며 그만큼 그 관계의 폭력성과 이로 인한 증후군에 대한 성찰도 낡고 고루한 것이 됐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엘라의 계곡> 또한 마찬가지다. 이라크로 파병됐다 돌아와 실종된 아들 마이크를 뒤쫓는 행크가 간접적으로 목격하고 수집해나가는 건 먼 이라크 땅에서 아들이 겪어야 했던 폭력적인 경험들이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이라크 땅에서 죽음과 직면하며 살아가는 청년들은 결국 그 공포에 맞서기 위해 괴물로 자라난다. 결국 행크가 찾게 되는 건 아들이 아닌, 아들의 괴물 같은 시절이다. 저 너머에서 벌어지는 참상 속에서 자신의 아들이 견뎌야 했던 끔찍한 비극을 목도하고 자신들이 서있는 현실의 안위가 무엇을 밟고 서있는가를 극명히 깨닫는다. <엘라의 계곡>은 결국 거대한 세계적 음모 속에서 압사당한 어느 개인적 비극을 환기시킴으로써 그 세계에 깊게 뿌리내린 부조리의 실체를 벗겨내고 그 세계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엘라의 계곡>의 목적지가 그 성찰에 놓여있다면 그 목적지로 관객을 유도하는 표지판의 역할은 미스터리적인 추리극의 플롯에 있다. 사라진 아들의 행방을 뒤쫓는 아버지의 행보는 사건에 접근해나가는 흥미를 자아내는 가운데, 사건의 실체를 이루는 뒤편의 진실에 대한 호기심을 점증시켜나가는 구실로서 진전된다. 또한 그 서사적 추이는 허구적인 연출력과 사실적인 정보력 사이의 균형을 잘 메워나가며 적정수준의 몰입도를 유지해나간다.무엇보다도 <엘라의 계곡>은 시종일관 서로를 팽팽하게 끌어당기면서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신경전을 벌이듯 캐릭터로서 분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실질적으로 메시지 전달에 대한 목적성이 뚜렷한 <엘라의 계곡>에서 배우들의 연기란 그 뚜렷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권태로움을 덜어내는데 공헌한다. 특히 지혜로운 관록과 고집스런 원칙을 담아낸 냉소적 표정으로 보수적인 성찰을 도모하는 토미 리 존스는 <엘라의 계곡>에서 뛰어난 방패와 같다. 의욕이 넘치는 여형사 에밀리 샌더스를 연기하는 샤를리즈 테론의 혈기를 눙치면서도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고 아내인 조안 디어필드를 연기하는 수잔 서랜든으로부터 밀려오는 페이소스의 속도감을 적절하게 줄여낸다.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전하지만 이라크는 꽤 위험합니다.” 어쩌면 <엘라의 계곡>은 먼 이국의 현실에 불과할지 모르기에 국내 관객에게 적당한 거리감을 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동시에 팍스 아메리카나의 실체에 담긴 지난한 희생을 가리키는 낡은 성조기의 조난 신호는 지정학적인 거리감을 더욱 선명히 구체화시킨다. 하지만 그것이 실화를 모티브로 둔 작품-Inspired by actual events-이라는 점을 밝힐 때 그 허구에 담긴 진의는 우리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국익을 위해 젊은 피를 요구하는 영화 속 미국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네 현실 역시 다를 바 없는 선택을 감행하고 있다. 그 땅엔 괴물이 자란다. 그 괴물은 결국 국가적 영웅주의로 위장한 이 세계의 편협한 음모를 방조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이 세계의 구성원 모두가 키워낸 비극적 산물인 셈이다. 엘라의 계곡에서 골리앗에 맞선 다윗의 영광스러운 승전보 이전에 그 땅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지금 우린 따져 물어야 한다.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 글_민용준 기자 (kharismania@mov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