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t
1의심, 의혹, 의문 2. 확신하지 못하다, 의심하다, 의문을 갖다 3. 믿지 않다, 의심하다
다우트의 주배경은 교회이다 배우는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투톱 회라는 배경과 낯선배우진들의 등장에 지루하다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으나
그 어떤 블록버스터영화보다도 깊은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영화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대단한 이유는 준히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영화를 비판적으로
해석할수 있는 눈이 있기때문이다.
데어윌비 블러드가 있었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리고 이런 다우트라는 영화가
있기 때문에 무작정 미국 영화를 비난할수 없는 이유이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뉴욕의 브롱크스의 한 교회이다.
1960년대라면 페미니즘 흑인인권운동등 민주화의 시대로 나아가는시대
교의 교장 알로이셔스 수녀와 구 성당 신부 플린은 여러가지 사안을 두고 대립한다.
새롭게 들어온 플린에 대한 거부감이 건지 그의 사상이 마음에 안드는 건지
시종일간 플린에게 태클을 건다.
그러던 어느날 최초로 교회로 들어온 도널드라는 흑인학생
동성애적인 성향을 지닌 도널드라는 학생에게 플린 신부는 더욱 신경을 써주며
챙기는데 를 본 알로이셔스 수녀는 이를 곱게 볼일 없고 결국 그는 신부가 학생을
성희롱 했다는 증을 가지고 신부를 교회에서 몰아내려고 하는데..
다우트는 철저히 정치적인 영화입니다 언뜻 알로이셔스 수녀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
플린 신부는 진보주의자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가 나온 시기도 부시의 공화당이 물러가고 최초의 흑인대통령 주당의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때인데요 부시의 정책을 반성이라도 한게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입니다
영화보기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는 영화
영화의 결말을 보면 그래서 뭐?? 누구야?? 라는 황당함과 짜증이들수 있을정도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열린 결말의 형식을 두고있는 이 영화는
언뜻보면 신부가 범죄를 저지른것같고 수녀가 말도안되는 의심을
하고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열린 결말은 요즘
영화에도 익숙하게 볼수있지만 다우트가 놀라운점은 놀라울만치 현실의 정치를
반영하는 영화를 재현해 낸점에 있다는 점입니다.
9.11테러이후 무작정 악의축을 지정하고 보복을 감행한 부시정권
있지도 않은 대량학살무기가 있다고 결론을 내려놓고 무작정 이라크를 침공하고
수많은 악법을 재정 단지 아랍인이라는 이유로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아야 했던 시기.
과장된 해석으로 불릴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영화에 나오는 수녀와 신부의 대립은
정치적 태도의 차이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수녀는 신부가 성학대자라고 생각하지만 객관적 증거를 찾기보다는 거짓말을 하는둥
오히려 신부를 자기의 손으로 제거하려는 정치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의심은 확신 만큼 강력하다
끝내 자신의 의견을 재고해보지않고 무작정 일관된 주장을 펼치는 수녀의횡포
결국 신부는 힘을 써보지도 않고 교회를 떠나고 맙니다.
표면상으로는 교회를 떠났기에 신부가 죄를 저질렀고 수녀가 옮은 일을 한것처럼 보입니다다
하지만 수녀는 마음에 안드는 자를 제거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정도로 객관성을
제거한 도로 약자를 제거한다. 누군가를 의심할때 충분한 근거가 있는건지
우리가 교육을 하는데 너무 일관된 획일적인 교육을 하는게 아닌가 이 영화 다우트를
보면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주기에 충분히 볼 가치가 잇는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명연기가 영화를 더욱 빛나게하다
이 영화 다우트 메릴스트립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이미 에덤스 비올라 데이비스와 같은
배우들의 명연기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특히 메릴스트립과 전혀 연기와 당당히 밀리지않게
긴장감을 유지하는 호프먼의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릴 스트립이 누구입니까?? 미국 최고의 여배우이자 아카데미 후보만 해도 13번으로 꼽힐만큼
최고의 배우가 아니던가요.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는 작품성 있는 인디영화에 점차 내공을
키워온 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연기는 어느덧 메릴스트립과 대등한 연기를 펼칠정도로 감탄의
경지에 르렀다. 주연 못지않게 비올라 데이비스 에이미 애덤스의 조연들의 퀄리티있는
연기는 욱 영화의 살을 찌웁니다.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존페트릭 세인리는 자전적 경험이 영화에 많이
인용되었음을 말한다 영화의 배경인 브룽크스 출신인 그는 어렸을때부터
카톨릭 학교에 다녔고 제로 친척 소년이 신부에게 성추행을 당한적이 있었다고한다.
카톨릭 고위 신부에게 건의 처리를 부탁했지만 오히려 신부는 징계는 커녕 승진을 한
현실을 보고 분노햇다는 일화에 가의 경험과 시대상을 잘 반영하였음을 알수있다
영화의 바탕인 신부와 수녀의 긴장감 정치권력 다툼도 직접 교회에서 본 체험이
주가 되었음을 측해볼수있다. 작은 것을 놓치지않는 섬세함 현실을 잘 파악하는
안목등 으로 더욱 주목해야할 감독임은 틀림없다
다우트는 어떻게 보면 시시한 영화입니다 교회가 배경이고 총이 나오지 않으며
결말 또한 확실한 매듭을 맺지 못하고 끝내니까요...
하지만 일차원적인 재미를 주는 블록버스터 영화와달리 러가지 각거리를
던져주고 배우들의 명연기가 펼쳐지는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다우트를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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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궁금하신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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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석희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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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미사 중 신부의 설교가 시작된다. ‘확신이 없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의미심장한 물음, 약간의 침묵. 항로를 잃어버린 어느 선장의 사연이 이어진다. 항로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선장이 별자리의 방향까지 의심하게 된다는 이야기. 이에 덧붙여지는 말. ‘의심은 확신만큼이나 강력하게 지속됩니다.’ 확신과 의심은 모두 다 마음에서 비롯된다. 의심과 확신은 배반적인 언어지만 그 태생의 기반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의심과 확신은 방향이 다를 뿐, 한 지점에서 출발한 믿음이다. 국내에서도 공연된 바 있는 유명한 동명희극원작을 영화화한 <다우트>는 그 불분명한 믿음의 갈래길에 선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1964년, 뉴욕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가톨릭 학교에 새로 부임한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는 강권적인 교회 분위기에 온화한 변화를 주도한다. 그러나 학교장 알리시아스 수녀(메릴 스트립)는 권위적이고 원칙적인 방식을 고수하려 하고 두 사람은 은밀한 대립관계로 거듭한다. <다우트>는 성향이 다른 두 인물의 심리적 대결 구도를 치밀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그 대립은 점차 갈등으로 발전하고 서로를 향한 험담과 비난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 계기로 작동하는 방아쇠가 바로 의심(doubt)이다. 알리시아스 수녀는 학교의 권위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온화하고 자유주의적인 플린 신부는 요주의 인물이다. 같은 바람을 두고도 ‘바람이 변하고 있다’는 알리시아스 수녀와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플린 신부의 견해차는 은밀하되 강경한 대립구도를 암시한다. 제임스 수녀(에이미 아담스)의 증언은 두 사람의 관계에 갈등을 발화시키고 긴장을 가열시킨다. 제임스 수녀는 플린 신부와 학교의 유일한 흑인 입학생인 로널드 밀러 사이에 모종의 의혹이 있음을 의심하고 이에 대해 알리시아스 수녀에게 증언한다. 결국 알리시아스 수녀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모되고 이는 플린 신부와의 갈등을 가열시키는 강한 발화점이 된다. 영화는 두 사람의 심리적 대립 구도를 직설적인 방식보단 행위 등을 통한 간접적인 제스처로 묘사한다. 알리시아스 수녀의 방에 들어선 플린 신부가 알리시아스 수녀의 자리에 앉는 순간 경직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이윽고 차양을 올리는 알리시아스 수녀가 햇살에 눈을 찌푸리는 플린 신부를 모른 체 할 때, 그리고 차양을 내리기 위해 일어선 플린 신부의 자리를 다시 알리시아스 수녀가 탈환(?)하는 과정까지. 두 인물의 심리적 대립이 묵언적인 행위를 통해 일차적으로 묘사된다. 한편 심리적인 대립이 본격적인 격양으로 치닫는 순간, 그 주변부의 도구들이 감정의 온도를 높이는 촉매로 활용된다. 알리시아스 수녀가 플린 신부에게 자신의 의심을 처음으로 드러내고 이를 통해 두 사람의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 울려 퍼지는 전화벨은 팽팽한 감정의 대립을 더더욱 신경질적으로 보완한다. 인물을 하부에서 올려 비추거나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기울이는 카메라의 시선 역시 인물의 잠재된 불안을 적절하게 드러낸다. 저온에서 고온으로 끓어오르는 물처럼 감정적 충돌이 갈등의 파고로 출렁이기까지의 과정들이 세심하고도 견고하게 직조된다. 희곡을 기반으로 한 <다우트>는 다분히 연극적이다. 인물들을 둘러싼 환경을 무대적인 장치로 활용하는데 능숙하기도 하지만 그 중심에 선 배우들의 연기가 연극적인 연기를 가능케 하는 까닭이다. 직설적인 대사보다도 행간의 의미 사이를 읽게 만드는 제스처나 표정, 행위가 영화적 의미를 완성시킨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메릴 스트립은 현악기의 떨림처럼 섬세하지만 날카롭게 감정의 고저를 다스리고, 그 사이에 놓인 에이미 아담스는 짓눌리지 않고 제 수준을 유지한다. 특히 짧은 분량임에도 바이올라 데이비스의 연기는 실로 인상적이다. 뛰어난 배우들은 <다우트>에 있어서 최고의 자산이자 일등 공신에 가깝다. 알리시아스 수녀는 플린 신부에 대한 의심 너머의 진실을 놓고 공방하지만 실상 그 대립각의 시작점은 서로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긴 손톱과 설탕의 섭취를 혐오하는 알리시아스 수녀가 손톱을 기르고 설탕을 선호하는 플린 신부의 성향을 알게 됐을 때 이미 구도는 이뤄진다. 정치적 축출을 위해 작동한 의심이 진실에 대한 공방으로 번져나가고 그 지난한 갈등 속에서 승패가 정해졌을 때, 영화는 그 승패 너머의 진실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그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과연 진실은 드러났는가. 실상 그것은 중요한 물음이 아니다. 영화는 그래서 그 진실을 애써 조명하려 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긴 의심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건 진실을 위한 의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자신의 신앙적 원칙을 깨버리면서까지 의심을 확신으로 밀고 나가는데 성공한 알리시아스 수녀는 끝내 눈물로서 자신의 통증을 내보인다. 교구를 떠난 플린 신부보다도 깊은 상처가 드러난다. 사실이 드러내는 순간, 진심이 부서진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진실을 드러낼 때 오히려 승자의 강박은 허위가 된다. 강박에서 튕겨나간 의심이 진실에 적중한다 해도 그로부터 비롯된 수많은 말은 허물을 만든다. 바람에 날린 깃털처럼 퍼져나가 주워담을 수 없게 된 말들이 양심을 자극한다. "이 모든 것이 다 내 의심에서 비롯됐어." 알리시아스의 눈물엔 자신의 의심을 통해 뿌리내린 고통에 대한 뒤늦은 자각이 담겼다. <다우트>는 그 속된 믿음이 낳는 책임과 의무를 지적하고 되짚는 현명한 물음이자 사려 깊은 대답이다. 진실을 위한 믿음은 숭고하지만 의도를 위한 믿음은 현명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고 만다. 그것이 비록 사실을 관통한다 해도 그 안에 담긴 진심은 배려하지 못한다. 승패를 위한 의심은 모든 것을 부순다. 그 끝에 남는 건 부끄럽게 선 황폐한 욕망 뿐, 어떤 명예도 실리도 남아있지 않다. 믿음이란 이토록 강하고 지속적이라 위험한 것이다.
2009년 2월 2일 월요일 | 글_민용준 기자 (kharismania@mov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