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게 보여준 하늘,
어느 비행사에 대한 추억
とある飛空士への追憶, 2011
천한 신분의 용병, 고귀한 예비 황녀
샤를은 실력이 뛰어난 일등 비행사다. 그러나 베스타드라는 천한 신분이 그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 동료들의 멸시는 예사고,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천한 베스타드’라는 말이 먼저 튀어 나온다. 그래도 샤를은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면전에서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그저 참는다. 조금 의아했다.
대개 신분 때문에 차별받는 주인공들은 현재 상황에 분노하고 자연스레 개혁, 신분 상승을 꿈꾸지 않나. 샤를은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고 일등 비행사가 된 젊은이답지 않게 기가 약해 보였다. 속된 말로 착해 빠졌다고 할까.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속수무책 당하고 말 ‘호구’처럼 느껴졌다.
걱정은 곧 뜻밖의 임무 수행으로 이어진다. 샤를은 상관들의 호출로 불려가 예상치 못한 임무를 떠맡는다. 단 한 대의 정찰기에, 적국의 표적이 된 예비 황녀 ‘파나’를 태우고 혈혈단신 황도까지 모시라는.
빼어난 미모의 귀족 아가씨 파나는 레밤 제국 카를로 왕자의 피앙세. 본래 카를로 왕자는 파나를 구하기 위해 제8특무함대를 보냈다. 그러나 레밤 제국과 전쟁 중인 아마츠카미에 격파당하고, 이에 궁지에 몰린 군에서는 보수만 지불하면 뭐든지 한다는 ‘용병’을 고용하기로 했다. 뛰어난 비행 실력과 위에 반항하지 않을 유순한 성품, 현재 상황이 유복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에 샤를은 딱 들어맞았다.
차기 황비 극비후송임무
예상대로 샤를은 군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사실 그에게는 레밤 제국의 안위보다 신형 정찰기 ‘산타 크루스’에 대한 흥미가 더 컸으리라. 베스타드 신분으로서 이 정도의 정찰기로 비행할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샤를과 파나의 만남은 비교적 조용했다. 처음 마주치는 순간 눈에서 불꽃이 파파박 튀었다는 운명적인 만남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숨겨졌던 이야기가 있었으니, 샤를은 어린 날 파나와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극한의 상황, 이성과 감성
통상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함께 극복한 남녀는 사랑에 빠질 확률이 높다. 극한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아드레날린 분비는 제쳐두고, 우선 서로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샤를에게 파나를 ‘혈혈단신으로’황도까지 모시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는 조금 황당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고용한 용병이어도 사람이고, 남자다. 게다가 파나는 아무리 왕자의 약혼녀라지만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가 아닌가. 군은 정말로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끝까지 아무런 해설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현실이 아닌 만들어진 로맨스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는다. 적기의 공격으로 섬에 불시착한 후, 크게 다친 샤를을 간호하면서 파나는 연약한 소녀에서 야무진 아가씨로 변해간다. 비행 초반 파나는 말도 거의 없었고 샤를에게 폐가 된다는 생각에 불안해했다. 샤를의 말에 대답만 겨우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파나는 조금씩 대담해져간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그녀 안에 존재했던 자아를 찾는다. 힘겨운 여정 속에서 파나의 눈에 띄는 변화는 단연 반가웠다.
화려하진 않지만 인상적인 고공 액션
사실 각종 SF, 액션 영화를 통해 화려한 고공비행에 익숙해진 관객들로서는 애니메이션 CG효과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비행사의 추억>에서 보여주는 고공액션은 부족한 화려함을 인물들의 감정 묘사로 훌륭하게 채웠다. 극중 샤를은 성실하고 인간성을 중요시하는 파일럿이다. 대형 비행선을 격파할 때 그들에게 사죄하는 모습, 상대방을 격추시키기보다 따돌리려고 하는 모습에서 샤를의 됨됨이가 느껴졌다.
극중 샤를과 아마츠카미 쪽 1인 비행사의 고공 결투가 있다. 레밤에 샤를이 있다면 아마츠카미에는 그 비행사가 있는 것이다. 크기도, 속도도 비슷비슷한 두 정찰기의 대결. 사실 이 장면의 액션이 제일 돋보인다. 긴박한 상황이기도 하거니와, 파나가 끝내 한 명의 파일럿으로 활약하기 때문에.
신데렐라 스토리의 성별 체인지?
등장인물의 설정만 두고 보면 그렇다. 극중 샤를은 천한 혼혈아 신분, 파나는 무려 왕자의 약혼녀. 임무를 수행해서 샤를이 받기로 한 보수는 당연히 엄청나다. 게다가 파나는 마음만 먹으면 샤를에게 한자리 해줄 수도 있다. 마냥 순수하게 생각할 수는 없는 확연한 신분차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끝까지 아름답게 남을 수 있었던 건, 등장인물들의 빼어난 심리 묘사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피날레를 장식한 샤를의 비행. 그건 정말로 눈부신 비행이었다.
전체적인 스토리와 등장인물 설정만 놓고 보면, 사실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오래오래 여운이 남는다. 줄거리는 평범하지만 이야기는 풍부한 작품. 샤를이 비행사의 꿈을 꾸게 된 계기가 떠오른다. 하늘에서는 모두가 자유롭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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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mingki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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