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외곽의 고풍스럽게 으리으리한 대저택.
대저택의 풍모만으로 이 집에서 무언가 어떤 긴박한 일이 벌어질 것이란 걸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집주인인 폴은 두 눈을 볼 수 없는 예술평론가. 사고로 잃은 두 눈을 가리려 항상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많이 늙었지만 아직 예술혼이 있기에 남은 시간 동안 자서전을 집필하려 한다.
자신이 구술을 하고 워드 타이핑을 할 대필 작가를 물색하다가 뽑은 여인은 제인, 바로 다릴 해나이다.
두 눈을 볼 수 없는 작가가 대필 작가로 뽑은 인력이 여성이라는 것부터가 무언가 석연찮다.
그 큰 저택에서 여인과 함께라니.. 두 눈이 없는 대신에 손으로 촉감을 느끼며 방향과 윤곽을 구분하는 그는
면접을 보고 난 후 제인의 얼굴을 만져보며 두 눈이 보지 못한 의미를 찾으려 시도한다.
이런 긴밀한 관계는 영화 내내 이어지는데, 가령 폴이 목욕을 할 때 욕탕 안에서 폴은 제인을 부르며
그냥 들어오라고, 자신은 늙은이라고 말한다. 그런 자신감은 이미 남성성을 읽은 폴의 생체적 특징을
나타내주고 있고, 아직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제인은 그런 폴을 희롱하듯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로
목욕탕 안에 들어선다. 그리고, 항상 눈은 볼 수 없지만 항상 집안의 불을 켜길 원하는 폴을 비웃듯
불을 모두 꺼버리는 제인.
영화는 그런 제인의 이상한 행동과 폴의 지시에 반대되는 일을 하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대체 제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폴이 아무리 늙었다하더라도, 늙어서도 남자는 남성이고 여자는 여성이다.
그것이 믿음이나 인간적 신뢰관계가 아니라도 무척 위험할 수 있는 상황.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믿고 맡길 때 그 밑에 내재된 믿음은 꽤나 단단해야하기 때문이다.
제인이 가슴을 드러내고 잠을 자고 있는 침실에 가서 제인의 가슴을 우연히 더듬고 나오는 폴의
엉거주춤한 모습은 그런 면에서 인간적 신뢰의 약한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눈 먼자와 낯선 이방인의 구도에서 남성과 여성으로의 관계 진전이 일어날 수 있을까?
영화는 그런 묘한 분위기를 즐기는 듯 관객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언터처블 : 1%의 우정>에서 전신불구인 백만장자 필립이 뽑은 도우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오직 우직한 신체뿐인 흑인 드리스 였다.
그가 드리스를 곁에 둘 도우미로 뽑은 이유는 드리스의 솔직한 성격이 ‘재미있어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필립의 신경질적인 성격에 드리스의 솔직한 성격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실험해볼 작정이었던가.
필립처럼 주변에 다른 도우미들이 있고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두 눈은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때에는
어떤 위험에 대처하는 기회는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여기 <블라인드 리벤지>에서 폴의 대필작가 선택은 개연성이 부족해보인다.
그 시작부터가 석연찮으니 영화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미지근하게 흘러간다.
영화 중반이 너머가면서도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오직 분위기와 제인의 눈빛만으로
지탱하기 어렵다는 것을 힘겹게 보여주는 듯 하다.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제약. 그리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제인.
마침내 제인이 폴을 속여왔다는 것을 안 폴은 반격을 시도하는데, 장애는 장애일 뿐,
폴은 결국 제인에 의해 벽장 안에 갇히는 신세까지 된다.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는 제인의 이상한 행동들, 시키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한 행동들이
과연 두 눈이 보이지 않아서 속았을 뿐인 것인가.
그렇다면, 제인에게로 시선을 돌려보자.
<스플레쉬>의 그 아름다운 여인 다릴 해나.
'대릴 한나' 라고도 한국말 호칭이 있지만 영문 발음으로 '다릴 해나'가 맞는 듯 한데,
여튼 다릴 해나가 또한 그렇게 썩 스릴러스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세월이 지나서 보톡스를 맞았는지 과히 퉁퉁 부은 얼굴은 <스플레쉬>의 아름다운 인어 모습은
온데간데 없지만 여전히 탄탄한 몸매와 나근한 목소리는 어떤 깊은 사연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과거의 사연은 또한 그대로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려준다.
즉, 제인과 폴의 인연은 스릴러가 아니라 잘못된 실수와 오해였을 뿐.
그 결과는 슬프게 끝났지만 그래서 그런지 제인과 폴의 마지막 대결 장면은 소소한 에피소드로 마감된다.
마지막 대결 장면이 무척이나 힘없이 끝나버렸기 때문에 영화가 미적지근한 스릴러라는 인상을 벗어날 수 없다.
과격한 스릴러와 반전은 기대하지 않아도 적어도 열린 결말이나 닫힌 결말이나 매한가지로
인상깊은 엔딩 장면 하나는 나왔어야 하지 않았는가 싶은 아쉬움이 짙다.
<스플레쉬>의 동화이야기는 추억으로 묻어두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는 후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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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져리>의 추억을 엇비슷하게나마 느끼고 싶은 분
<스플래쉬>의 아름다운 인어와 동화를 추억하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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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염승훈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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