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있다.
미국 텍사스의 작은 마을 카시지에 찾아온 ‘착한 사람’ 버니 티드.
‘착한 남자’라고 말하는 것도 불경스러운, ‘남자’이기 이전에 ‘사람’의 본모습은 그렇게 선할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 버니. 버니의 직업은 장의사이다. (영화 속에서 버니는 장의사라는 말 대신 장례식
연출가’라고 말한다. 버니에게 있어 장례의식은 하나의 연극 연출과 같은 예술적 의식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버니는 죽음을 맞은 유가족들을 진심을 다해 따뜻한 위로를 하며 상처를 이기게 하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언행으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이웃이자 친구이자 ‘착한 사람’이 된다.
특히 버니역 잭 블랙이 이전작들에서 많이 보여주었던 노래하는 모습은 역시 이 영화에서도 변주되지만
그것은 단순 코미디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진지한 나눔과 베품의 선물이다.
그런 버니를 누가 시기하고 욕할 것인가.
비난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고 오히려 마을에서 괴짜 같은 존재로 사는 마조리 뉴전트
부인까지 그와 일상을 공유하는 관계까지 이른다. 괴짜라는 마조리 부인은 어떤 사람인가.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들에도 불만을 갖고 함께 말을 나누면 피곤한 스타일이 아닌가.
그런 그녀에게 친절하고 착한 버니는 어쩌면 먹기 좋은 먹이감이었을 것이다.
‘착한 사람’도 화가 난다
착한 버니는 마조리 부인을 살해한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버니가 아무리 착해도,
아무리 친절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존재라곤 해도 살인자는 살인자이다.
그렇게 착한 살인자(?)도 법적 처벌은 받아야하는 것. 버니는 재판에 회부되고 여기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들어난다. 죄와 벌은 따로 둘 수 있는가? 이다.
아무리 착하고 성품이 유순한 천사라고 해도 화가 날 수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 천사가 사람을 죽인 것도 마찬가지로 현실이다. 마주리 부인이 착한 버니를 대하는 것이,
그런 취급이 과연 목숨을 잃어야 할 정도인가, 하는 의문, 정의로운 판단도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버니도 역시 사람이기에 마조리 부인으로부터 훼손되고 지친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버니의
선택은 일반 사람과 별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살인을 한 후 시체를 냉동고에 넣고 9개월간
보관하면서 스스로 얼마나 공포와 좌절을 느꼈을 것인가. 이 부분에서 엽기적 범죄로도 접근할 수 있고
마을을 혼자 다니게 된 버니의 이상한 모습에서도 측은한 감정이 도사린다.
현실의 법과 비이성적 집단 최면
미드 <한니발>에서 한니발 렉터 박사로 나오고 있는, 2012년 칸 남우주연상을 받은 매즈 미켈슨의 역작
<더 헌트>를 보자.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와 조용히 살고 싶은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는 이혼의 상처가
있지만 새롭게 여자 친구도 사귀고 아들 마커스와도 행복한 일상을 지내고 있다. 그런 일상을 뒤흔드는
일이 루카스에게 벌어지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유치원생과 비이상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소문’이다.
현실에 발생된 ‘액션’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이라는것에 주목할 때 루카스가 가야 할
험난한 길은 더욱 안타깝다. 열 사람이 욕하면 병이나고 백 사람이 욕하면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말과 행동, 과거, 습관, 생김새까지 모두 다 고려해서 말하진 않는다.
어느 특정한 한 부분만으로 확대재생산이 되고 그것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법처벌을 받게 될 운명의 버니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바로 <더 헌트>의 사람들과 대비된다. 마녀 사냥은
시대적 산물이었을 수도 있지만 집단 최면은 사람들의 의도적 행위, 수긍하는 의지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버니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표현은 그래서 비이성적이고 심지어는 법과 상관없거나 법위에 군림한다.
‘버니가 그럴리 없어요’
‘절대 버니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가 배심원이 되었어야 했는데…’
마을 사람의 기나긴 인터뷰, 과장된 수식어와 칭찬은 오히려 혼돈스럽다. 심지어 목사님까지 무죄를 주장한다.
마치 마을 전체가 어딘가에 홀린 것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버니를 칭송하고 범죄자 버니를 무죄로 확신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하지만 그 죄를 지은 것은 사람이고 죄를 미워하든 사람을 미워하던 슬프고 억울하고 불편한 마음은 다 똑같다.
죄와 사람을 구분해야한다는 것은 법집행자의 자세일 뿐 일반인은 아마도 죄=사람 이라는 등식에 한치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버니가 무죄라는 등식이 성립하려면 버니는 살인마가 아니어야한다. 그게 올바른 수식이다.
하지만 버니는 살인자이고 총을 4발이나 쏘아 죽인 후 시신을 냉동고에 유기한 자이다.
지루한 주말 예매를 힘차고 재치있는 노래로 흥미롭게 만들어준 그런 버니의 모습.
버니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이 부분부터 스포가 내재되어 있으니 주의하세요.)
버니에 대한 칭송 가득한 마을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고 있다보면 그들의 말 속에서 버니의 착한 행동이,
버니가 마을 사람들 속에 얼마나 침투했는지 마치 오랜 시간 두고 본 것처럼 느껴지고 생생하게 그려진다.
다소 지루한 인터뷰들은 영화에서 매우 긴 시간을 할애하는데 마치 다큐처럼 이어지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은
이 영화가 의도하는 바, 관객에게 많은 의문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또 그의 범죄가 미필적 고의 또는 인간으로 가장 끝에서 치뤄야했던
고통의 마무리 라는 점에서 이성으로서 판단할 수 있겠는가? 하는 공격적 질문이다. 이 질문조차
어려운 때 지방 검사는 묘안을 낸다.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의 판단을 배제하고 가장 먼 곳에서 본
사람의 판단에 기대는 것. 그래서 버니는 마을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 운명에 처해진다.
(이 검사로 나온 매튜 맥커너히가 한 가족 앞에서 철저하게 냉혈한으로 분했던 <킬러 조>의 그 매튜
맥커너히 라니! 배우의 역할과 표정 때문에 극 몰입이 방해되는 현상을 가끔 겪는다.)
그리고 버니에게 내려진 결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에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막이
올라갈 때 진짜 인터뷰처럼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그 상상의 끝을 마무리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 마음 속의 버니는 즐겁게 웃고, 서로를 위로해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안아주던 진심어린 버니의 모습만 기억될 뿐이다. 슬그머니 죽음이 찾아와 학생을 하늘로
데려갔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슬픔을 달래주던 위트있는 장의사 버니.
더이상 유죄와 무죄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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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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