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소녀 벨라와 아름다운 뱀파이어 에드워드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뱀파이어들과 늑대인간 간의 대결과 갈등을 그린 원작소설은 판타지와 현실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21세기 대중문화 전반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작품의 큰 인기요인 중 하나는 캐릭터인데, 에드워드를 주축으로 한 컬렌가 뱀파이어는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힘을 가진 불멸의 존재라는 것 외에는 오랫동안 정형화된 특징들을 모두 파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늘이나 십자가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 태양을 보면 불타죽는 것이 아니라 피부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인다는 점 등이 그렇다. 내 생각엔 실제로 이런 점들이 뱀파이어와의 로맨스를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만약 남자 주인공이 낮이 아니라 밤마다 돌아다닐 수 밖에 없다면 소설이든 영화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않았을까?
“완전한 침묵. 육감이 맹렬하게 작동하면서,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할 수 있었다. 에드워드가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던 어떤 일. 제이콥이 내게 다시 연락하게 한 어떤 일. 숲 속에서 컬렌 가 사람들과 늑대인간들이 서로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접근해야 했던 어떤 일. 어쨌든 내가 기다리고 있던 어떤 일.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언젠가 일어나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일. ‘그건’ 결코 끝나지 않았던 거야. 그렇지?”
- 소설 <이클립스> 중 -
영화의 시작은 전작인 <뉴 문>의 후반부와도 이어진다. <뉴 문>은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가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청혼하는 장면으로 마무리 지어졌는데, <이클립스>의 도입부에서 에드워드는 벨라에게 계속해서 청혼하지만, 벨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에드워드야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벨라를 기다려왔다고 해도, 벨라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상황에서 청혼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상황일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벨라는 퀼렛족 마을을 찾아가 제이콥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에드워드는 벨라가 퀼렛족 마을에 가는 것을 막는다. 이 부분에서 물론 에드워드는 늑대인간이 너무 불안정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내 생각에-다른 분들도 이렇게 생각하시겠지만-에드워드의 질투가 나타난 부분일듯 싶다. 전편에서 에드워드는 벨라에게 이별을 선포하고 장시간 그녀를 떠나있었고, 에드워드의 빈자리는 제이콥에 의해 충분히 채워졌다. 물론 마지막에 일어난 어이없는 사건에 의해 벨라는 제이콥을 버리고 에드워드에게 돌아갔지만, 일련의 이런 사건들을 통해 에드워드는 다른 가능성을 봤을지도 모른다. 벨라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삶을 택할 수도 있다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을 막으려고 한건 아닐까? 한편으로 보면 사랑에 빠진 남자의 질투심 내지는 불안감일 테지만.
난 이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 있어
내가 겪어왔던걸 너도 겪게 하라고?
넌 내가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
널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야
<이클립스>를 제작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특별한 무기가 없어도 그 자체가 하나의 무기인 뱀파이어의 초인간적인 속도를 표현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시속 40마일 이상의 속력을 내는 뱀파이어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제작진은 수많은 방법을 찾았는데, 그 중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매직 카펫’ 방식을 선택했다. ‘매직 카펫’이란 4피트 너비의 카펫으로 컴퓨터화 된 윈치 위에 깔아 놓고, 배우들을 나무들 사이로 끌고 다닐 수 있는 특수 장치이다. 마치 공항의 무빙워크 원리와 유사한데 이보다 훨씬 빠르게 작동된다. 배우들이 이 위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면 이것이 다른 영상과 합성되면서 최고의 속도로 움직이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 장면은 초반 컬렌가가 빅토리아의 뒤를 쫓는 장면,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대결전에서 사용된다.
전작의 영화들을 통해 ‘트와일라잇’ 세계의 뱀파이어에 대해 관객들이 알아갔다면, <이클립스>에서는 뱀파이어의 천적인 늑대인간 퀼렛족에 대한 중요한 특징이 한 가지 나온다. 바로 ‘각인 현상’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각인 현상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와 제일 먼저 보는 생명체를 엄마로 인식한다는 정도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늑대인간의 각인현상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쉽게 말해 늑대인간의 각인현상이란 ‘반한다’의 강한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영화에서 잘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제이콥은 샘과 애밀리의 각인을 보면서 자신이 벨라에게 각인되기를 바란다. 결국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른 면에서 생각해보면 만약 제이콥이 벨라에게 각인됐다면 이 로맨스 영화가 비극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인 현상은 다음편인 <브레이킹 던>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질 포인트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장편의 소설을 2시간내외의 영화로 옮기는 작업에서 이 부분이 덜 중요하게 다뤄진 듯해서 아쉬웠다.
샘은 애밀리에게 각인 된거야
누군가에게 각인되면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모든게 변하고
그 사람을 위한 일이면 뭐든 할 수 있고
중력에 의해 세상이 존재하는게 아니라
그녀에 의해 세상이 존재하는거야
게다가 영화 중간에 나오는 퀼렛족의 전설 이야기도 그렇다. 이 전설은 영화 후반부의 벨라의 심경 변화에 큰 영향을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다가 뱀파이어 종족과 퀼렛족이 천적이 되어 대립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됐다면 좋았을 듯싶다. 물론 원작 소설이 있는 만큼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괜찮을 것 같지만, 영화만을 가지고 전체 스토리와 그 이면에 숨겨진 감정들까지 모두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대 추장인 타하아키만이 마을을 구할 유일한 인물이었어
하지만 추장의 세 번째 아내가 싸움에서 뒤지고 있는 추장을 봤지
하지만 그녀에겐 힘이 없었어, 추장을 구할 방법이 없자 그녀는 용기를 냈어
그녀의 희생이 냉혈인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시간은 타하아키가 냉혈인을 제압하는데 충분했지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에드워드와 벨라가 살고 있는 포크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시 시애틀에서는 계속적으로 의심스러운 실종사건이 이어지게 된다. 실종사건이 점점 더 심각해지게 되자 컬렌가 사람들은 볼투리가가 개입할 것을 걱정한다. <뉴 문>에서 에드워드는 벨라를 안전하게 구하기 위해 볼투리가에게 그녀를 뱀파이어로 만들 것을 약속했고, 만약 볼투리가가 아직 벨라가 인간인 것을 확인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컬렌가는 시애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수습하려 하고, 그런 와중 시애틀에 신생 뱀파이어 군대가 생겼다는 의심을 하게되는데...
<이클립스>에서 주목할 점은 컬렌가 뱀파이어들의 과거에 관한 것이다. 영화에서 충분히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트와일라잇>에서는 에드워드, 칼라일, 에스미, 앨리스에 대한 과거 이야기가 등장한 바 있다. <이클립스>에서는 재스퍼와 로잘리의 과거 이야기가 다뤄진다. 신생 뱀파이어와의 전쟁을 준비하던 중 과거 군인이었던 재스퍼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고, 로잘리는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 하는 벨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생 뱀파이어와의 대결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던 영화에서 이런 과정들을 통해 조금 더 이야기가 풍족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나는 벨라에게 차갑게 대하던 로잘리의 슬픈 과거 이야기를 통해서 좀 더 그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전편인 <뉴문>이 <이클립스>를 위한 쉼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뱀파이어 군대와 격돌할 늑대인간 부족을 등장시키기 위해 <뉴문>이 필요했던 것 같다. 게다가 시리즈 마지막인 <브레이킹 던>을 위해서도 <이클립스>는 중요한 의미인 것 같다. 게다가 이 영화를 보는 여성 관객이라면 누구나 고민했을 내용이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바로 ‘에드워드를 선택하느냐? 제이콥을 선택하느냐?’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뱀파이어 남자친구와 늑대인간 남자친구의 장단점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혹자는 세상이 불로 끝나리라 하고, 혹자는 얼음이라 한다 내가 맛본 욕망에 비춰보면, 불을 택한 사람들 옆에 서리라 하지만 두 번 죽어야 한다면, 이미 증오에 대해서도 아는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얼음도 불 못지않아 충분히 세상을 파멸시키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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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향해 달려가는 <트와일라잇>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