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마법의 섬 홋타라케
어릴 때 그 이불이 아니었으면 잠들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때가 타고 닳고 닳아도 그 꼬질꼬질한 이불을 덮으면 세상 어떤 솜털보다도 포근했다. 그렇게 나에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소중한 물건들은 다른 물건으로 대체되어 내가 어떤 것에 그렇게 순진무구하게 사랑을 주었던 기억들마저 대체된 듯하다.
우리가 소중히 했던 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그토록 아끼던 인형들, 백구 강아지, 파란코트, 캐스터네츠 등 정말로 여우가 가져간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버렸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 영화는 나의 가장 사소하고도 아득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여고생인 하루카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아버지와 함께 살지만아빠는 매우 바빠 자주 볼 수 없고, 하루카는 그러한 일상들이 매우 불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싸우고 찾아간 도심 속 야산의 여우사당을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들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물건을 가져가고 주인이 필요로 하다고 빌면 다시 돌려주는 여우이야기에 나오는 작은 여우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열쇠고리를 훔쳐가는 작은 여우를 쫒아가다가 샘물에 함께 빠지게 된다.
여우들은 인간이 버린 물건들로 만든 훗타라케 섬으로 떠난다. 하루카는 어머니가 어린 시절 사준 작은 거울을 되찾으려 하지만 사실 그 거울은 모든 것에 무한의 힘을 주는 마법의 거울이다. 그 거울만 있으면 굉장한 힘을 얻을 수 있고 죽은 인형도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 거울을 가지려고 하는 권력자들이 지키고 있다. 하루카가 이 거을을 얻고자 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기 때문이다.
거울을 찾아 떠나는 모험에서 하루카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다준 양 인형 코돈을 만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거울 안에서 그녀는 늘 바쁘고 자기에게 무관심하던 아버지가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려고 애쓰면 혼자 자기를 키웠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그 안에서 아빠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후지 TV는 개국 50년 기념으로 제작한 <잃어버린 마법의 섬 홋타라케>는 FULL 3D CG로 제작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다. 3년간 작업을 거쳐 2009년 여름에 개봉했다.
개국 특집으로 애니메이션을 기획한다는 것이 일본이 애니메이션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알 수 있다. 또, 드라마에 비해 10배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가고 다큐멘터리에 비해서도 몇 배의 제작비가 드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그 정성이 참 대단하다.
일본의 2D 애니메이션은 우수한 컨텐츠로서 세계 어디에서도 뒤지지 않지만, 3D는 헐리우드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도 부족할 정도이다. 이번 애니메이션은 그러한 부족함을 채우려고 많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다. 아기자기한 캐릭터와 표현력이 영상미를 더해주고 곳곳에 묻어나오는 상상력이 내가 어릴 때 하던 상상과 닮아 많은 공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CG 라던지, 그래픽 부분에서는 조금 발전해야 하는 면도 보였다.
일본이 사물과 동물들에게도 생각과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나라인 만큼, 애니메이션의 소재도 그를 토대로 한 신비롭고 다채로운 상상력의 소재들이 많다. 그래서 그 스토리와 소재 만으로도 이미 흥미를 일으키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이 아이들만 본다는 것도 이제 옛말인 듯 하다. 애니메이션은 영화나 드라마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상미를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 어른들에게 더 없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른도 언젠가 아이였을 테고, 지금은 좀 많이 큰 아이일 뿐이다. 그래서 이러한 소재가 더욱 와 닿고 공감이 가는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을 여우가 집어간다는 미신이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소중하지 않은 틈을 타 여우가 가져가 버렸다고 생각하면 왠지 덜 책임감이 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익숙했기 때문에 없어졌을 때, 그 빈자리가 더욱 생각나는 물건들이 있다. 하지만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들의 필요도 느끼지 못한 채 잊고 지내고 있다. 그것은 나의 유년시절일지도 모르고, 어제 였을지도 모른다. 사람일지도 모르고, 어떠한 추억일지도 모르고, 물건일지도 모른다.
스쳐 지나갈 지도 모르는 이러한 생각들을 영화화 하고 소재화 한다는 게 쉬운일은 아닌 듯 하다. 마치 “ 나 한번쯤 이런 생각해 본 적 있어, 너희들도 그러니? ” 고 묻는 듯한 애니메이션이다. 그래서 함께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고, 그때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지금의 소중함을 더욱 더 간직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우리는 너무 방심하고 살진 않았나 싶다. 내가 그것에 대해 소홀해지면 어느새 여우가 가져갈 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쥐고 있는지 내 손을 펴보면 될 일을 나는 인생은 아직 어렵다며 눈앞에 있는 손을 펴 보지도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내 손을 폈을 때 많은 것들을 잃었을까봐 겁이 나서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주먹쥐고 살 순 없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이 행복과 소중함들을 잃지 않기 위해 처음 다가온 설레임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영화를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이 난다. 나라면 무서워서 그 이상한 토끼를 쫒아가지 못했을 텐데, 어쩐지 이 영화에서 나는 앨리스가 되어버린다. 앨리스가 일어나 보니 그것은 잠깐의 꿈이었지만, 앨리스는 아주 많은 것을 깨닫고 왔을 것 같다.어떤 모험이 내 눈 앞에 있을 지 모르기 때문에 잠시 시계를 들고 있는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에 다녀오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설령 그것이 꿈이 아닐지라도.
나에게 애니메이션은 그런 이상한 나라와도 같다. 앨리스가 되어 행복했던 영화, <잃어버린 마법의 섬 홋타라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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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최나영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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