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미 인(LET ME IN)은 ‘나를 들여보내 주세요’ 라는 의미다. 이는 사랑(LOVE)를 연상케 한다. 내 삶에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건 웬만한 노력과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그렇기에 ‘렛 미 인’이라는 상대방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자기 삶의 변화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뜻한다.
<렛 미 인>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데뷔작이다. 어릴 적부터 평범하지 않은 신비로운 무엇을 추구했다는 그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 마술사, 심지어 코미디언으로까지 활동하며 상상력을 발휘해 왔다.2008년 스웨덴에서 한 차례 영화화되었고, 2010년에 맷 리브스 감독에 의해 헐리웃 버전으로 재탄생했다. 아역배우들의 수준 높은 연기가 돋보였기 때문에 리메이크판의 평가는 예상외의 호평을 기록했다. 그러나 동일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스웨덴 영화가 존재하는 이상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리메이크판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영화의 중심축이자 가장 큰 이야깃거리가 되는 오웬-애비-토마스 세 사람의 삼각관계가 원작과는 다르게 해석된 것이다. 극중 오웬이 애비의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한 토마스는 애비에게 있어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는 보호자다. 열두 살 어린아이의 몸을 가진 애비는 숙명적으로 피를 먹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감당하기 버겁다. 피를 갈구하는 본성은 그녀에게는 생존 본능이다. 과다한 흡혈로 죽은 사람의 시신을 처리할 능력이 없고, 물론 그에 따르는 각종 위험(경찰에의 추격 등)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토마스의 존재는 애비에게 있어 필연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람이 반드시 토마스여야만 할 필요는 없단 사실이다.
극중 토마스는 애비에게 ‘늙고 지쳤다’는 얘기를 한다. 이 때 그녀는 자신을 도울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리라. 그래서 선택된 사람이 오웬이다. 학교에서는 힘 센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왕따, 아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엄마. 의지할 곳 하나 없어 외로운 소년은 아름다운 소녀 애비에게 끌리고, 금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져버린다. 비참한 현실에 허덕이던 오웬에게 애비와 함께하는 삶은 너무나도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토마스의 말로가 어땠는지 알면서도 그녀를 따랐다. 오웬의 앞날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뱀파이어 소녀와 인간 소년의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어 있어도, 인물들의 설정 구도가 위와 같은 이상 애비는 속칭 불여우 타이틀을 벗지 못한다. 이는 연기는 연출이든 전작에 뒤지지 않는 퀄리티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리메이크판이 혹평 받은 결정적인 이유다. 왜냐하면 원작의 뱀파이어 소녀는 제 생존을 위해 남자들을 이용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비가 토마스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이용했다’고 생각되는 결정타는 애비의 집에서 오웬이 발견하는 옛날 사진이다. 꼭 제 나이 또래의 소년시절 토마스와 변함없는 얼굴의 애비가 함께 찍은 그 사진은 토마스로 하여금 인생을 다 바쳤지만 결국 버림받은 남자의 비극을 보여준다. 그러나 원작소설의 토마스(호칸)는 애비(이엘리)를 소년시절에 만나지 않았다. 그는 소아성애라는 성적 취향을 가진 교사다. 아동성애 혐의로 인해 교단에서 쫓겨난 후 소녀를 만났고, 제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소녀를 위해 헌신하는 입장이다. 말하자면 두 사람 사이는 기브 앤 테이크였다.
또한 스웨덴판의 서정적인 분위기는 소년을 향한 소녀의 애틋한 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새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처연하게 서 있는 소녀에게서는 슬픔과 애정에 대한 갈구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뱀파이어’라는 설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리메이크판의 경우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까지 조성되어 소년의 희생을 부각시킨다. 맥스로 엔딩에서 오웬이 흥얼거리는 노래 ‘조금만 먹고 나중을 위해 남겨두어라(Eat some now Save some for later)’는 설마 했던 의혹을 확신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영원을 사는 뱀파이어와 그에 비해 턱없이 짧은 생애의 인간, 두 소년소녀의 애달픈 사랑이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생각되는 것이 안타깝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자기를 기꺼이 희생하는 일이다. 두 사람 관계에서 한쪽의 희생이 더 커지는 순간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게 된다.
같은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해도 감독의 관점에 따라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 등장인물의 성격, 목적, 존재 이유부터 작품 전체의 분위기나 결말까지. 물론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앞으로 오웬을 보호자로 의지할 애비라는 소녀도 확실히 매력적이고, 어떻게 보면 슬프기까지 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나를 들여보내 주세요’ 라는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엘리가 아닌 애비에게는 ‘나를 지켜 주세요’ 내지는 ‘나를 보호해 주세요’라는 의미의 가 어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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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리웃판 <렛 미 인>을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
조금 색다른 모습의 뱀파이어를 기대하시는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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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mingki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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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이라는 제목은 2008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먼저 들었다. 스웨덴의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은 원작 소설 ‘Let The Right One In’을 영화화해 세상에 알렸다. 영화는 큰 화제를 모았고 반응도 뜨거웠다. 그리고 이후, 소설의 판권을 갖고 있던 햄머 영화사도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렛미인>을 리메이크 영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탓에 내용에서 큰 차이는 없지만, 누가 만들었냐에 따라서 다른 스타일을 보인다. 매트 리브스 감독의 <렛미인>은 보다 장르적이면서 미국적인 뉘앙스가 더 많이 풍긴다.뉴멕시코의 작은 마을에 한 소녀와 늙은 남자가 이사를 온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년 오웬(코디 스밋-맥피)은 놀이터에서 혼자 놀다가 새로 이사 온 소녀 애비(클로이 모레츠)의 묘한 매력에 끌린다. 하지만 애비의 등장 이후 마을에는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뱀파이어인 애비가 살기 위해 피를 구하러 다녔던 것이다. 애비와 함께 온 남자는 애비의 아빠가 아닌 연인으로 애비에게 피를 구해다주다가 사고를 당해 자살을 택한다. 애비의 정체를 알게 된 오웬은 애비를 도와주고 애비 역시 오웬을 괴롭히는 학교 아이들로부터 오웬을 지켜준다. 결국 오웬은 애비의 곁에서 죽은 늙은 남자의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는다.<렛미인>은 뱀파이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들처럼 낭만적이거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최근에 나온 <트와일라잇>처럼 말랑말랑하지도 않다. <렛미인>은 슬픈 동화이면서 처절한 생존 이야기인 동시에 잔혹한 로맨스다.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장르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소년 소녀의 사랑과 캐릭터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관심을 끈다. 이 작품이 1934년 창립된 공포, 스릴러 영화 전문 제작사인 햄머 필름의 작품이라는 점은 그래서 더 주목할 부분이다. 정통적인 방법으로서의 장르영화와 그의 변형까지 모두 시도할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리메이크는 아니라고 해도 먼전 만들어진 스웨덴 영화 <렛미인>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작이 두 소년 소녀의 가슴 아프고 순수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면서 미장센에 비중을 뒀다면, 미국판 <렛미인>은 이에 비해 장르적인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 여기에 캐릭터 자체의 성격과 감각적인 영상으로 시선을 끈다. 특히 전체 미장센을 보여주는 방식보다 클로즈업으로 사물을 집중감 있게 표현한 영상은 캐릭터와 주변을 격리하는 방식으로 소년 소녀의 고립감을 상징한다.<렛미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캐릭터의 매력이다. 전작의 소녀 뱀파이어 이엘리를 연기한 리나 레안데르손이 순진무구한 소녀 같은 느낌이 강했다면 애비를 맡은 클로이 모레츠는 팜므파탈적인 느낌이 강하다. 애비와 오웬의 순수한 사랑보다는 오웬에게 결정을 강요하는 악녀로서의 뉘앙스를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캐릭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클로이 모레츠라는 배우의 영향력 때문이다. 또래보다 성숙해 보이는 이미지에 어떠한 연기도 능숙하게 해내는 클로이 모레츠는 원작의 애비를 자신만의 것으로 새롭게 만들어버렸다.소설에서 출발한 <렛미인>은 확실히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들과는 그 궤를 달리 한다. 사람을 죽여 피를 빨아 먹어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뱀파이어라는 근본적인 설정은 같지만, 행위 자체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주가 되고, 소외된 사람들에 시선을 맞춤으로서 장르적인 관습에 발목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애비와 오웬이라는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다. 뱀파이어와 사람이지만 같은 처지의 두 사람은 그런 이유로 서로를 보듬는다.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 ( iwai@movis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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