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5구의 여인
이 영화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이 원작이라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지만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또다른 소설이 있는데 그건 바로 세계적인 미스터리 작가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이다. <환상의 여인>은 여러가지 번역본이 출간되어 있고 문고판으로도 있으니 아무거나 들고 읽어도 도대체 어떻게 된거지? 그 여인은 누구지? 하는 의문으로 앉은 채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교본이자 많은 영화 감독들이 좋아하는 추리소설이다.
이 영화 <파리 5구의 여인>을 말하기 앞서 <환상의 여인>을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 ‘여인’의 존재에 대하여 치밀하게 파고드는 추리소설적 기법과 의문점, 복선들이 난무하지만 그래도 결과를 기대하는 심리가 도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소설 <환상의 여인>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그래서 더 자잘한 디테일이 소설 속에서 진행되는 추리적 감각이 소비된다. 주인공 헨더슨은 아내와 싸운 후에 집을 나와서 술집에 갔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데이트를 즐기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헨더슨은 죽은 아내를 발견하고 자신은 살인자로 몰리게 된다.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현장부재증명 즉, 알리바이를 대야 하는데 데이트를 한 여인을 찾으면 되는 일일 터. 하지만 그 여인을 찾는 일 자체가 마치 환상 속의 일처럼 부정당하고, 그 여인과 함께 갔던 곳, 만났던 사람들 모두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있는 헨더슨의 사형집행일이 점점 다가온다.
죽기 일보 직전까지 헨더슨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지만 도대체가 찾을 수 없는 그 여인. 그날밤 헨더슨은 대체 누구와 술을 마시고 누구와 영화를 봤으며 누구와 말을 한 것일까? 대체 그녀는 누구이며 어떻게 된 일일까? 말 그대로 환상의 여인일까? 그리고 여기 능숙한 중년의 남자 연기자 에단 호크가 분한 영화 <파리 5구의 여인>은 그보다 더 환상적인 여인을 만나게 된다.
소설가인 대학교수 톰은 이별한 아내와 딸을 보기 위해서 파리에 왔지만 학교에서 제자와 불륜을 저질렀던 잘못이 용서가 되지 않아 집에서 쫓겨난다. 설상가상으로 가방까지 도둑맞고 갈 곳이 없어진 톰은 낡은 호텔의 지하 창고에서 무료로 숙박할 수 있는 대가로 호텔의 경비를 맡게 된다.
잘 나가던 대학교수에서 허름한 호텔의 경비직이라니. 톰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며 틈틈이 일을 하고 소설을 쓰며 사랑하는 딸을 만날 방법만 생각한다. 톰에게 있어 딸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표이기에 모진 현실의 장벽을 견디는 힘이다.
그리고 우연히 파리 예술가 모임에 들렸다가 환상의 여인 – 마르짓(크리스틴 스콧 토머스)를 만나게 되어 깊은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 미스터리한 여인은 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며 그의 현실과 존재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신비로운 면을 갖고 있다. 어느 남자인들 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톰은 점차 이 여인에게 빠지게 되지만 이후로 이상하게 톰 주변의 일들이 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톰을 괴롭히던 주변인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고민거리였던 일이 해결이 되는 등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딸까지 실종된 상황에서 톰은 또한번 실의에 빠지게 되고 이제 그 삶의 의미이자 모든 것이었던 딸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하는 상황에 처해진다. 이 때 그토록 빠져들었던 마르짓이라는 여인은 그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오는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하는지, 톰은 파리라는 공간에서 예술과 삶과 사랑에 대한 심각하고 무거운 선택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에단 호크의 예술가적 풍모는 영화 속에서 그대로 파고들어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잘 어울러진다. 꽃과 곤충들에 대한 디테일한 화면은 냄새로, 또는 시각적 은유로 삶의 이면을 말해주는 듯 하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진 한 남자의 내면은 누추한 호텔 지하방 풍경으로 그대로 보여진다. 가진 것이 없지만 실제로는 아내가 있었고, 딸도 있었고 번듯한 직업인 대학교수였다가 소설을 쓰는 예술가적 재능을 가진 남자, 그런 남자에게 또한 주변의 여자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선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오직 딸. 그리고 그런 자신의 처지를 잊게 해주고 언젠간 일어설(지하 창고방을 벗어나 윗층 세상으로 올라갈) 힘을 줄 소설이다.
그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고 사랑, 어딘지 모르지만 그저 신비로운 감정의 인생을 선택할 용기가 있을까? 우리는 가끔 지금 현실을 잊고 다른 인생, 다른 모습으로 살아봤으면 하는 욕심을 부린다. 예를 들면 가끔 흔히 하는 이런말들,
‘스위스 푸른 초원에서 살고 싶다’
‘미국 뉴욕 노천 카페에서 모닝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런 희망의 모습은 지금 현실의 부정이라기 보다는 현실을 뛰어넘는 희망의 기대가 아닐까? 지금의 모든 것을 버리고 스위스와 미국으로 가라고 한다면 과연 가겠는가 말이다.
영화는 원작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화면 곳곳에 원작에서 묘사한 색체와 내면의 감정표현과 파리의 예술적 문화 분위기를 보여주려고 애썼지만 굳이 그러하지 않아도 에단 호크의 깊은 눈매 만으로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만의 분위기는 완성되었다. 영화는 커다란 변화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무거운 분위기와 다소 무채색의 질감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삶의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은 느낌을 표현하기 위하여 톰의 얼굴 피부와 손짓은 짙은 삶의 명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에단 호크의 표정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면 이 말뜻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자.
여인 마르짓은 과연 누구일까?
 |
|
 |
 갑작스레 다가온 사랑에 설레이는 사람
깊이 있는 내용의 스릴러를 보길 원하는 분 |
|
|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
<파리 5구의 여인>은 ‘빅 픽처’ ‘템테이션’ 등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가난한 이민자들이 몰려 사는 파리 5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사랑이 찾아온 여름>으로 영국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던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은 원작 소설과는 또 다른 자신만의 논리와 스타일로 영화화한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술과 문화의 화려한 도시 파리는 <파리 5구의 여인>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의 어두운 이면과 편심 초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카메라가 영화의 분위기를 창조한 두 축이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도시와 그 속에서의 불안정한 삶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위해 카메라는 인물이든 풍경이든 끊임없는 아웃포커스로 미스터리를 유지한다. 영화는 스릴러의 요소를 최소화하지만 무언가를 감지할 수 없는 카메라의 방식만으로도 기이한 서스펜스를 야기한다. 카메라가 인물만큼이나 비중을 둔 풍경 또한 불안정한 인물의 정신을 드러내는데 일조한다. 인물의 감정 상태는 곧 인물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마치 미로에 빠진 것처럼 톰(에단 호크)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파리 5구의 한정된 장소만을 오간다. 사랑에 빠진 여인도, 일터도, 숙소도, 주변인들도 그래서 모두 미지의 세계다. 영화는 그 미지의 것들에 대한 작은 실체의 파편들을 던지지만, 여전히 출구는 묘연하고 명확하게 인지되는 것은 없다. 영화는 톰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명쾌하게 해결할 생각도, 파리 5구의 세태를 날카롭게 성찰할 생각도 없다. 초현실적인 상황으로 전복하고 일말의 단서들로 여러 추측을 해볼 수 있게 만들 뿐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자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요인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사색하게 하고, 불안정한 심리를 여운으로 곱씹게 하는 영화다.
2013년 4월 25일 목요일 | 글_서정환 기자 ( ppalma@movist.com )
무비스토리
최신방송
좋아요 :
0명
글쎄요 : 0명
갑작스레 다가온 사랑에 설레이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