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블록과 라이언레이놀즈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이 영화는 미국 영주권(그린카드)을 얻기 위해 남자 부하직원에게 위장 결혼을 요구하는 캐나다 출신의 열혈 커리어 우먼의 이야기이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출판사 편집장 마가렛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온 이민국 직원으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캐나다 출신인 자신의 미국 워킹 비자가 만료되었으며, 이에 따라 더 이상 미국회사에서 일할 수 없으므로 캐나다로 돌아가야한다는 것. 이 위기 상황에서, 사무실에 들어온 남자비서 앤드류를 본 마가렛은 그와 위장 결혼하여 그린카드(영주권)를 얻는 방법을 생각하고, 이민국 직원들에게 자신과 앤드류가 결혼할 사이라고 주장한다. 일을 잘 못한다고 마가렛에게 항상 시달림을 당해온 앤드류지만 착한 성격때문에 마가렛의 요구에 마지못해 동의하면서, 이들의 위장 결혼 작전이 시작된다.

둘은 앤드류의 고향인 알라스카의 작은 마을로 가서 그의 괴짜 가족들과 상견례를 치르는데, 이때부터 도시여성 마가렛에게 고난의 여정이 시작된다. 이민국 직원들의 의심을 무마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가렛과 앤드류는 뜻밖의 감정이 자신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음을 깨닫게 되는데.. 대충의 줄거리만 봐도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일 거라는 느낌은 바로 온다. '로맨틱코미디' 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 하지만 그 점이 영화를 보는데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뻔한 이야기에 뻔한 결말을 가진 영화라는 것 또한 당연하니까.
하지만 영화를 보고, 들었던 생각은 '뻔하다' 라는 생각보다 은근히 빠져들게 만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뻔한건 사실이다. 기타의 로맨틱 코미디가 가졌던 현실이라기 보다는 영화같고, 결말까지도 예측가능한 영화였지만 이 영화는 이 영화만의 장점을 잘 부각시켰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앤드류의 고향인 알래스카의 모습이었다. 할머니의 90세 생일파티를 위해 3년만에 가는 고향집에 갑작스럽게 동행해야하는 마가렛의 허둥대는 모습이 로맨틱 코미디에서라면 당연한 모습으로 부각되었겠지만, 영화'프로포즈'는 그런 모습과 함께 등장하는 하얀 배경과 탁 트인 바다, 푸른 숲을 통해 당연하다는 식상함을 아름답다는 감탄으로 바꾸어버린다.그리고 알래스카의 풍경과 너무 잘 어울리던 캐빈. 독수리의 발에 채여 하늘을 날던 하얀 강아지 캐빈은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귀여웠다.
은근히 다른 매력을 보인건 그런 영상미나 강아지가 전부는 아니었다. 다른 영화들에서 항상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라이언레이놀즈가 상사에게 당하는 젊은 부하직원을 맡아 그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 그리고 벌써 40대 중반인 산드라블록이 남자와 자본지 1년반이나 지난 히스테릭한 커리어우먼을 뻔뻔하게 소화해 냈다는 점은 영화를 보는 또다른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앤드류를 포함 가족 모두를 너무 사랑하고, 항상 유쾌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는 할머니의 존재는 자칫 아버지와의 다툼과 가짜 결혼 덕분에 무거워질뻔한 극의 분위기를 살려내 준다.
너무나 뻔뻔하게 여타의 로맨틱코미디와 별 차이를 두지 않는 스토리를 가진 영화'프로포즈'. 하지만 그만큼 보통의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의 영화가 주는 즐거움과 가슴설렘, 따스한 감동을 물씬 담고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프로포즈>에 대해 온갖 종류의 로맨틱 코미디 설정들이 총집합해 있는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악마 같은 상사와 외모의 강점이 두드러진 부하직원, 뉴욕 스타일이 시골에 가서 부딪치는 문화적 충돌, 거기에 알고 보니 한 지역의 성주라고 해도 무방할 유력 집안의 자제. 이중 한 가지만 해도 여러 영화들이 떠오를 정도로 <프로포즈>는 여기저기서 참으로 다양한 설정들을 끌어 와서는 시치미 뚝 떼고 새로운 코스 요리라도 되는 듯이 눈앞에 떡하니 내 놓는다.

물론, 그런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은 산드라 블록이라는 믿음직한 배우와 라이언 레이놀즈라는 키가 190이 넘는다는 훤칠한 주인공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니깐 특별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주인공들이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냐 하는 것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똑같은 얘기를 주인공들만 바꿔서 연신 내어 놓는 걸 보면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일단 <프로포즈>의 기본 세팅은 조금 불안하긴 하다. 이 불안함의 근저엔 산드라 블록이라는 배우가 있다. 문제는 이 강해보이고 고집불통의 얼굴 표정과 나이든 티가 팍팍나는 주름까지 겸비한 여배우, 이미 로맨틱 코미디는 졸업하고도 남았을 나이의 여배우가 얼마나 매력을 발휘해 분명히 등장할 나이 어린 매력적 여성을 따돌리고 남자 주인공의 눈을 홀리게 할 것이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산드라 블록의 캐스팅은 반은 성공, 반은 실패에 가까워 보인다. 실패라고 보는 건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산드라 블록이 나이 어린 경쟁자를 물리칠 정도의 매력을 발산했는가에 좀 의문이다. 물론 분명 산드라 블록은 여전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프로포즈>에서 경쟁자를 쉽게 물리칠 수 있었던 것에는 경쟁자를 소외시킨 연출의 힘이 작용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반의 성공은 당연하게도 그녀가 펼치는 적확한 연기 때문이다.
하이힐을 신고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랄지, 강아지를 들고 방방 뛰어 다니는 모습, 거기에 누드로 이리저리 뛰고 넘어지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그녀에 대한 호감과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온 몸을 던져 연기한 산드라 블록의 연기 투혼은 그 자체로 충분한 호감의 대상이 된다.
전형적인 소재를 활용해서 전형적인 연출로 전형적인 영화를 만들었다고 영화가 재미없는 건 아니다. 어쩌면 가벼운 코미디물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한 전개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편히 관람할 수 있으니깐. 그런 차원에서 보면 시종일관 유쾌한 활력과 유머가 넘실대는 <프로포즈>는 분명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꽤 웃긴 영화인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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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원하시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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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환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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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정이 무섭다. 대립적 관계에 놓여있던 남녀가 필연적인 계기를 통해 운명적 공동체를 계약하고 이로 인해 끊임없이 부딪히고 갈등하다 이내 정들어 로맨스를 낳는다. 대부분 로맨틱코미디라고 불리는 영화들은 이토록 닳고 닳은 관계적 갈등을 기본적 골조로 삼아 로맨스를 축조한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닳아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재생산되는 건 낡고 낡아서 앙상할 것만 같은 로맨스의 골조를 풍성하게 치장하는 코미디 덕분이다. 로맨스의 진심을 훼손하지 않는 동시에 적절한 기능성을 갖춘 코미디는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를 풍요롭게 만드는 자질이다.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의 형식으로 대변되는 <프로포즈>도 마찬가지다. 마가렛(산드라 블록)은 사내에서 마녀라 불릴 만큼 악명이 자자하지만 업무적인 능력을 인정받는 뉴욕의 출판사 중역이다. 그녀의 손에 출판사의 주요 업무가 결정되거나 누락된다. 게다가 웬만한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 그녀 덕분에 보좌관 앤드류(라이언 레이놀즈)는 출근길부터 분주하다. 마녀는 스타벅스를 마신다. 마가렛이 출근하기 전까지 저지방 두유 라떼를 책상에 올려놔야 한다. 커피를 엎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자신의 커피도 같은 것으로 통일한다. 마가렛의 완벽주의에 앤드류의 회사생활은 엣지있게 돌아간다. 그런 어느 날, 마가렛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 벌어진다. 캐나다 출신인 마가렛의 비자 발급이 중지됐으며 이에 따라 출국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이 사장으로부터 통보된 것. 그러나 불통은 앤드류에게 튄다. 강제출국을 막기 위해 앤드류와의 혼인 사실을 밝힌 마가렛 덕분에 앤드류는 위장 약혼의 공모자가 된다. <프로포즈>는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작품이다. 급작스럽고 돌발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진전되는 사연엔 두서가 없다. 지나친 우연성에 기대어 직조된 스토리는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의 방식이라기 전에 내러티브의 열악함에 가깝게 이해될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프로포즈>는 즐길만한 매력이 다분한 로맨틱코미디다. <프로포즈>를 휘청거리게 만들 구조적 결점을 단단하게 다지는 건 온전히 캐릭터의 매력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심캐릭터부터 주변부에 산재된 다양한 캐릭터들이 발생시키는 매력이 작위적인 우연을 연출하고 전형적인 공식에 기대는 스토리에 활력을 발생시킨다. 뛰어난 순발력으로 우연에 기대어 굴러가는 사연에 필연성의 생기를 불어넣는다. 생애 처음으로 누드를 선보였다는 사실까지 일례로 들 필요도 없이 산드라 블록은 <프로포즈>의 일등공신이나 다름없다 할만한 공헌도를 드러낸다. 과감한 슬랩스틱과 디테일한 제스처, 풍부한 표정을 통해 캐릭터의 감정변화를 설득시키는 산드라 블록은 매력적인 웃음을 밑천으로 로맨스의 자질을 구축한다. 상대역을 맡은 라이언 레이놀즈 역시 적절한 리액션으로 산드라 블록을 보좌하며 빼어난 앙상블을 이룬다. 두 남녀 캐릭터의 아기자기한 신경전은 돌발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이뤄진 <프로포즈>에서 단단한 이음새 역할을 하는 동시에 탁월한 웃음을 발생시키는 코미디의 속성에 어울린다. 암묵적 합의 속에서 혼인 빙자 사기 연극을 펼치는 두 남녀의 주변부에 자리한 다양한 조연들은 저마다 제 역할에 걸맞은 코미디적 긴장감을 발생시키며 웃음을 숙성시킨다. 마치 대각선에서 마주보듯 근접할 수 없을 것마냥 서로를 배척하던 캐릭터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사연을 공유하며 반목을 거듭하던 가운데 좀처럼 알 수 없었던 상대의 속내를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전통적인 장르적 관습 안에서 묘사되는 캐릭터의 심정적 변화가 관계를 재구성하고 영화의 온도를 변모시킨다. 지속적인 활약을 펼쳐는 발군의 코미디 안에서 관성적으로 무르익어가는 로맨스는 적당한 설득력을 획득한다. <프로포즈>가 최소한 제 역할을 하는 로맨틱코미디라 말할 수 있는 건 그 덕분이다. 뛰어난 장악력보단 능숙한 순발력이 인상적이다. 특히 장르적 공식에 기대어 안이하게 진전되는 스토리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배우들의 열연은 <프로포즈>를 위한 특별한 수식어나 다름없다. 마흔을 넘어선 산드라 블록의 앙증맞은 슬랩스틱과 이를 보좌하는 라이언 레이놀즈의 든든한 지원은 어느 누구라도 분명 매력적이라 할만한 것이다.
2009년 9월 7일 월요일 | 글_민용준 기자 ( kharismania@movi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