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립(flipped)
: 뒤집히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열중하다.
스토리가 남달리 탄탄하게 느껴지는 영화를 만나면 버릇처럼 찾아보게 된다. 원작으로 하는 소설이 있는지 없는지. 영화 <플립>의 경우, 동일한 제목의 원작 소설이 있었다. 웬들린 밴 드라닌의 작품으로 국내에는 <두근두근 첫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영화에서 브라이스와 줄리의 시점으로 전개되듯이, 소설에서도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한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천진하고 분방한 성격의 줄리는 확실히 자기만의 색깔이 또렷하다. 남이 뭐라고 하든, 자기의 생각이 먼저다. 그리고 그 생각을 강단 있게 밀어붙이는 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브라이스는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어린아이답다.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면 자기를 바꾼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체면을 생각한다.
플립(flipped)은 ‘뒤집다’ 혹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열중하다’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딱히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or책을 다 읽은 후에는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국내 출판에서 제멋대로 바뀐 제목이 새삼 원망스러워질 정도다. 청소년 도서에 로맨스를 다뤘기 때문이라고는 이해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다. 한 작품에서 제목이 가지는 의미는 작품 전체의 이미지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기에.
<플립>의 주인공은 둘이다. 브라이스와 줄리.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시선이 아니기 때문에 관객은 제3자라는 신과 같은 위치에서 두 사람의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 둘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는 ‘차이’다. 브라이스와 줄리는 비슷하거나 닮은 점이 없다. 성격도,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도, 집안환경까지도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충돌은 여기에서 생긴다.
극중 브라이스는 줄리를 부담스러워한다. 이건 이성 관계에서 큰 문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마음을 결코 사랑이 아니다. 주는 쪽도, 받는 쪽에게도 플러스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브라이스는 줄리를 ‘옛날부터 자기를 스토킹해온 스토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브라이스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사실이다. 줄리는 마냥 브라이스를 따라다니고, 엮이고 싶지 않은 일에 엮이게 한다. 브라이스가 다른 여자아이와 사귀는 척을 해야 할 정도로 떼어내고 싶은 존재다.
하지만 줄리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판도는 완전히 ‘뒤집힌다.’ 브라이스를 향한 줄리의 마음은 순수한 애정 그 자체다. 확실히 줄리는 보통의 틴에이저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 다르다는 것이 결코 나쁜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줄리는 보기 드물게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한 면을 간직한 소녀다. 그것을 알아챈 바람이 바로 브라이스의 외할아버지다. 그는 브라이스에게 줄리에 대해 묻고, 줄리의 정원 가꾸기를 도와주며 줄리네와 소통한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 손자와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브라이스가 올바른 시선으로 줄리를 바라보게 도와주는 잣대가 된다.
브라이스와 줄리의 차이는 곧 그들 가족의 차이다. 그 부모의 그 자식이라는 말은 지나친 일반화로 보이지만, <플립>에서는 딱 어울리는 말이다. 브라이스네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하다. 부유하고 상식적이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사회적인 성공 기준에 맞추어 살아간다. 학교에서 인기 많고 잘생긴 브라이스처럼 말이다.
반면 줄리네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다.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가진 부모님도 아니고, 정신지체 외삼촌이 있기 때문에 수입의 대부분을 그쪽에 투자한다. 줄리의 두 오빠는 성적은 좋지만 음악에 빠져 밴드를 결성했다. 브라이스의 아버지는 그들을 ‘한심한 놈들’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줄리네 가족의 가치관만큼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겉으로 가난해 보여서 무시했던 가족이, 알고 보니 자기네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행복하고 건강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브라이스의 아버지는 더 그들을 미워했던 게 아니었을까.
브라이스와 줄리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두 아이의 순수한 시선이 때론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고,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놀라운 깨달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상대방을 사회적 기준으로 재지 않는 순수한 사랑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판타지다. 이건 단순히 조건이 맞아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극중, 일부가 아닌 전체를 보라는 의미심장한 대사가 나온다. 겉모습이나 그 사람이 가진 경제적인 능력은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일부만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을 이루는 데 전부가 되어버린 요즘 세상이 안타깝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줄리와 브라이스의 경우,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서로를 알아갔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마음과 시각이 때때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인간관계란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연인관계뿐이 아니다. 친구사이도 몇 년, 몇 십년의 시간이 흐르면 쉽게 내치거나 떼어낼 수 없는 각별한 사이로 발전하지 않던가. 어떻게 보면 SF영화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순수함을 잃어버린 요즘 세상에서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음으로 서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나. 세상이 발전하고 살기 좋아질수록 인간관계의 단절은 커진다. 하지만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서정적인 분위기와 따뜻한 색감의 화면, 뜻 깊은 이야기와 대사들은 그 척박한 마음에 단비가 되어 내린다. 이것이 여전히 사람들이 힐링무비를 찾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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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MINGKI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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