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리덕스
왕가위

-대가 김용을 향한 왕가위의 오마주
동사서독은 무협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 봤을 김용의 무협 소설 영웅문 3부중 1부격에 속하는 사조영웅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인물의 모티브만 땄을 뿐, 그 내용과 의미는 전혀 다르다. 그러니까 김용의 쌈빡하고 터프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닌 왕가위 식의 인물의 특성을 중점으로 한 슬픈 로맨스 이야기로 바뀐 것이다.
왕가위. 중국 감독을 말할 때 왕가위를 빼 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아비정전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투게더 화얀연화 등 독특한 촬영 기법을 사용한 연출법으로 당대 센세이셔널 하게 등장한 매력적인 감독이다. 연출법만이 그의 강점이라면 스내치를 만든 가이리치감독처럼 독특한 색감의 감독만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왕가위의 영화는 표면이 주는 겉멋이 왜 필요한지 깊은 이야기로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흩날리는 화면과 어지러움 증을 유발할 것 같은 흔들리는 장면들은, 인물의 내면상태와 상처 그리고 어떤 상징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동사서독에서도 모영연과 구양봉의 대화 장면에서 흔들리는 새장 같은 것이 자꾸 나오고, 갑자기 물결이 치듯 화면이 떨리고 명암을 깊게 줘 인물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데 이것은 이 둘의 내면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모영연은 자신을 이중의 인물로 그리고 있다. 그것은 구양봉에게 똑바로 자신의 정체를 밝혀 사랑을 인정받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구양봉도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거절당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가 온전히 한 첫 사랑인 자애인과의 이별도 두려움에 도망을 친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런 인물들의 내면이 독창적인 색과 이미지로 표현이 되고 있다.

동사서독은 왕가위 감독이 가장 고심을 하고 열정적으로 만든 영화라고 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홍콩에 잠시 머물 때 만든 영화가 중경삼림이라고 할 정도로, 이 영화에 열을 기울였다고 한다. 결국 그가 그렇게 신경을 썼던 것은 김용의 무협 소설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소설들을 읽어 본 독자들을 잘 알 것이다. 김용은 어떤 작가 보다 인물을 잘 그릴 줄 아는 작가이다. 소설에 나오는 많은 인물과 군상들, 모두 착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동정을 심어 주기도 한다.
아둔하지만 착한 곽정을 채우기 위해 영악하고 이기적인 황용을 옆에 두어 균형을 맞추어 주었다. 동서남북의 4대 고수들은 모두가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선한 쪽이 둘 있다면 (북괴, 남제) 악한 쪽이 또 둘 있다. (동사 서독) 이렇듯 김용의 무협에는 인물들의 균형이 적절히 분배되어 있다. 이것에 왕가위 감독 또한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왕가위 감독이 매력을 느낀 인물은 악인 중에 악인인 구양복과 황약사였다.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은 서독 구양봉이 얼마나 얄밉고 이기적인 캐릭터인지 잘 알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공을 위해 무고한 사람도 죽이는 짓을 서슴지 않고 무공만이 아닌 야비한 짓도 감행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강하지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인물, 얄미워 나오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인물. 하지만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2부를 완성시키게 되는 주요 인물이기도 하다.
왕가위는 그런 구양봉에게 이유를 주었다. 그가 왜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 수 밖에 없었는지 그는 왜 그렇게 악하게만 살게 되었는지. 감독은 영화에서 그에게 아픈 과거를 주었고 그 과거로 인해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는 구양봉의 과오를 또 주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그 과오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이기적으로 살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연민까지 주었다.
- 거절을 당하지 않는 방법은 내가 먼저 거절을 하는 것이다.
너무도 유명해서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지는 대사지만, 이 대사만으로도 김용 소설에 나오는 서독 구양봉이 왜 이기적인 악인이 되었는지 충분히 설명이 된다. 이렇듯 영화 동사서독은 김용의 소설을 매우 사랑했던 왕가위의 오마주이며, 더 나아가서는 그 안에 악인으로 묘사되는 인물들을 향한 애틋한 변명이기도 한 영화다.

- 어긋나는 사랑들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은 아련하다. 슬프고 애처롭고 동정이 가기도 한다. 그 인물이 어떤 일을 하든 마찬가지다. 동사서독에 나오는 황약사나 구양봉은 요즘 말로 하자면 살인 청부 업자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직업을 우리는 이상하게도 이해를 한다. 시대상이 그랬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가진 내면적 슬픔이 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내면은 곪아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상해있기도 하며, 자신이 상처를 줘 후회함에 아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그 내면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저 안으로 푹푹 고아놓고 자신의 직업적 일로 의미 없는 누군가에게 쏟아 낼 뿐이다. 그것이 이들이 무협을 연마하는 이유이며 싸우는 모태가 되기도 한다. 왕가위 감독은 어쩌면 사랑의 시련을 많이 당해 본 감독이 아닐까 싶다. 그의 영화에서는 온전히 이뤄지는 사랑이 거의 없다. 모두 어긋나는 사랑이다. 예전 작에서도 그랬지만 동사서독의 관계성을 따져 봐도 그렇다.
먼저 주인공인 동사 서독의 관계다. 그 둘은 자애인이라는 한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 구양봉은 함께 한 사랑이고, 황약사는 일방적인 사랑이다. 하지만 둘 다 사랑을 결국 못 이룬다. 구양봉은 또 다시 거절을 당해 큰 상처를 받을까봐 사랑을 잃게 되고, 황약사는 그런 구양봉을 멀리서 한번 씩 찾아와 소식을 듣는 그녀를 몰래 짝사랑한다. 황약사의 경우, 사랑이 이뤄지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양봉은 두려워 기회를 놓친 것이다. 마지막 그녀의 결혼식 전날, 구양봉은 겨우 용기를 내어 그녀와 떠나자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구양봉의 용기 없음에 진저리가 난 상태였고, 또 구양봉에게 복수하기 위해 결혼을 감행한다. 그렇지만 복수는 없다. 용기를 내지 못한 구양봉은 사랑을 잃었으며,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과 이뤄지지 못한 자애인은 행복을 얻지 못했다. 결국 자애인은 몇 년 뒤, 구양봉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다 병에 걸려 죽게 된다. 그로 인해 황약사라는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긴다. 그녀의 지켜보기 사랑에 매력을 느낀 황약사는 그만,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모영연의 경우도 그렇다. 그녀는 술김에 말한 구양봉의 고백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구양봉은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 술김의 고백조차 기억 못한다. 그에 상처를 받은 그녀는 구양봉을 죽일까 자신이 죽어 버릴까, 갈팡질팡하다가 그의 곁을 영영 떠난다. 그녀는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일, 무공연마에 몰두한다. 그리고 훗날 무림을 제패하게 되는 절대고수인 독고구패가 되어 버린다. 한 여자가 받은 상처는 이렇게 뿌리가 깊게 박혀, 한 시대를 흔들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구양봉을 찾아오는 다른 검객들이 상처를 등에 지고 있는데, 모두 각기 어긋난 사랑의 슬픔을 지고 있었다.
단 하나, 어긋나지 않은 자가 있는데. 바로 나중에 개봉파의 방주가 될 북괴 홍칠공이다. 그는 자신을 따라 위험한 중원에 온 부인을 구박하다가 결국 부인과 함께 떠나기로 다짐하게 된다. 위에 설명했듯, 이런 어긋남들 속에서 우리는 인물들의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고 공감하게 된다.
- 구성의 방식
살인 청부를 알선해 주는 구양봉의 거처를 찾아오는 인물들을 묘사하면서, 구양봉 자신의 상처를 밝혀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구조는 한 인물이 어떤 건물에 거주하며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이 찾아와 여러 에피소드들을 이야기 해주는 형식인데, 그럼으로써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간의 연관성이 점점 밝혀지는 방식이다. 카페나 호텔 등을 이용한 이야기가 많으며 특히, 일본 영화들이 이런 구성을 자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의 특징은, 주인공은 특정 장소를 떠나거나 인물들이 하나로 모이면서 끝나는 형태를 자주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동사서독에도 마지막 구양봉이 자신의 거처를 떠나게 된다.
- 이 영화의 한 컷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 많아 한 컷만 뽑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 있는 장면 보다는 시각이 아름다운, 너무 미술적인 미장센이 돋보이는 몇 장면을 뽑아 보았다.
* 영원히 늙지 않게 된, 장국영이 매우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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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sung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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