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포 스모킹
제이슨 라이트먼
- 확실한 색깔, 제이슨 라이트먼
제이슨 라이트먼은 유쾌한 오락 영화들로 꽤 유명한 이반 라이트먼의 아들이다. 이반 라이트먼은 ‘고스트 바스트’로 스타덤에 오른 후 ‘트윈스’, ‘유치원에 간 사나이’ 등의 한국에서도 많은 흥행을 했던 영화의 감독이다. 영화 제목을 읽었다면 단번에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미국에선 최근 2세, 주니어 감독들의 기류가 많이 포착되는데- 대부의 아버지 프란시스 코폴라의 딸 소피아 코폴라, 독창적 예술영화의 거장 데이빗 린치의 딸 제니퍼 린치, 사랑의 행로를 만들어 낸 존 카사베츠의 딸 조 사카베츠와 아들 닉 카사베츠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시작 단계거나 평론과 대중의 관심을 아버지만큼 끌어올리지 못했다. 반면 제이슨 라이트먼은 대중과 평론가들의 시선을 잡는데 성공했으며 현재 헐리웃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독특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 중 하나로 평가된다. 또 이미 아버지의 아우라를 훨씬 벗어났으며, 오히려 이반이 제이슨의 아빠라고? 라고 묻는 사람이 더 많을 지경이다.
‘땡큐 포 스모킹’과 ‘주노’를 통해 제이슨 라이트먼트라는 이름을 미국과 유럽 등지에 알렸다면 그의 대표작 ‘업 인디 에어’는 그가 이제 세계적인 명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해준 영화이기도 하다. 제이슨의 영화는 특징이 있는데 인물들이 매우 말빨이 세고, 캐릭터가 확실하며 유머가 있다. 그 유머는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코엔과 우디앨런을 반쯤 섞어놓은 것 같은 블랙유머다. 게다가 시각적으로 왠지 낯이 익은 감성 있는 80년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진한 파스텔의 색감을 자주 차용하는데, 내용 자체는 해학적이고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그 사이의 어긋남 같은 게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케이스다. 하지만 누구가 할 수 있는 스타일은 결코 아니다.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옷들을 제법 맛깔나게 입는 센스라고나 할까, 그건 제이슨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게다가 그의 영화에는 유독 비행장면이 많이 나온다. 인 디 에어는 대놓고 비행 영화를 만들었으며 땡큐 포 스모킹에도 은근히 비행 장면의 디테일이 꽤 나온 다는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는 비행기나 공항에 대한 기분 좋은 경험이 있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그의 영화 ‘땡큐 포 스모킹’은 그의 스타일과 행보가 어떻게 될지 가장 잘 드러나는 초기영화이다. 특히, 툭툭 던지는 로비스트의 쿨한 대화법은 정말 시원하고 인상적이다. 충분히 설득을 할 수 있는 로비스트가 맞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똑똑한 대사들,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중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 보겠다.
아들과 아빠의 대화 중 하나.
- (숙제를 하며) 아빠, 미국이 왜 가장 훌륭한 나라인가요?
- 끝없이 항소가 가능하기 때문이지. (아이 적는다.) 조이, 정말 내 말을 적는 건 아니겠지?
- 글짓기 주제가 뭐지?
- 왜 미국이 최고의 국가인가 쓰는 거요.
- 그건 구문론적 오류가 있구나. 아빠가 이야기 해보마. 먼저 미국이 세계최고의 국가가 맞는가?
둘째, 최고의 국가란 어떤 것인가? 범죄율? 빈곤률? 문맹률?
사실 미국은 최고의 국가가 아냐. 오히려 대부분 국가보다 덜 떨어진 곳이지. 그러니.
- 휴, 아빠 그래도 숙제잖아요.
- 좋아, 어쨌든 미국이 진짜 최고의 나라라 해도 우린 증명할 방법이 없어.
멍청한 문제지. 그럼 대신 미국이 잘 하는 것을 쓰도록 하는 건 어때?
- 뭔데요.
- 흠. 이런 게 있지. 무역 관세를 없애 이윤을 획득하는 거.
미국의 일자리를 3세계 국가로 보내는 거. 아니면 죄수 사형률이 세계 최강이라는 것들 말이야.
- 담배의 역할
우리가 아는 담배의 역할은 해롭다다. 몸을 망가지게 하며 암을 유발시키고 좋지 못한 향을 몸에 배기게 한다. 하지만 영화 속 닉 네이러는 이런 사람들의 일반적 상식을 바꿔야 살 수 있는 사람이다. 또 닉을 영입한 빅 타바코(이름 자체도 묘하게 우스움) 담배 회사의 사람들도 그 해로운 담배를 사람들이 사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즉, 일반적으론 해롭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 해로운 것이 생을 가능케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고 담배 영역에만 속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시선을 더 크게 돌릴 필요가 있다. 담배 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해당된다. 누군가가 살기 위해선 누군가를 해쳐야 한다. 그리고 그 해치기 위한 방편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며, 가장 좋은 방법을 쓰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게임이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이기심이다. 아무리 연민과 동정이 유별난 사람이라도 가장 사랑하는 건 자기 스스로다. 자기애만큼 높은 것도 뛰어넘을 사랑도 없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담배를 통해, 다른 역할을 하는 사람들, 그들이 살기 위해 인간을 헤쳐야 하는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아이러니한 삶의 순간, 닉은 이기기 위해 싸우고 살기 위해 설득한다. 그러기 위해 사용되는 소스는 설득이다. 협상이 아니다. 그저 설득!
논리만 통하면 된다고 말하는 닉은 그 복잡하게 펼친 자신의 논리가 생각보다 어처구니없고 합당하지 않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설득하려는 흡연자체가 얼마나 해악한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통계를 내봐도 담배만큼 사망자가 많이 생기는 것도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해악 따윈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해치는 건 이제 너무 당연한 사회적 이치가 아닌가. 그 이율배반적 모습에 영화를 보는 우리는 닉을 비판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욕만 할 순 없는 처지다. 충분히 이해 가능하고 우리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닉이 하는 말 중 하나를 인용해서 써보자면, 이런 식이다.
- 왜 이런 일을 하죠?
- 그냥 세상에 저당잡혀 사는 거죠
저당 잡혀 사는 삶. 부조리하고 불균등한 삶을 잘 살기 위해선 저당 잡힌 내 능력을 어떤 일에든지 쏟아 부으며 사는 그런 삶. 하지만 결국 그 이율배반적 모습을 아주 쉽게 기자에게 들키며 닉 역시 나락에 빠지게 된다. 그러자 닉을 망가뜨린 여기자가 이런 말로 대변한다.
- 당신,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요!
- 왜 이래요, 저도 제 저당은 해결해야죠.
우리는 결국 저당 잡힌 삶 속에 먹고 먹히는 그런 생을 받아드려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인가.
- 구성의 방식
제목부터 풍자가 가득한 똑똑한 이 영화는 마치 페이크 다큐를 보는 것처럼 시작 되었다가 닉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삶이 조밀하게 비춰지면서 다큐가 독창적인 이야기로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풍자적 요소의 구성은 인물의 캐릭터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 감독은 담배 협상가라는 이질적이고 악역 같은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결국 관객들로 하여금 이 영화는 그들이 변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전술을 사용했다. 그것은 우리가 닉이 결코 담배 협상가로 머물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보는 것인데, 어떻게 변하는지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구성방법이다. 로비스트 아빠가 담배에 대해 설득을 하며, 그의 캐릭터가 돋보이는 화법으로 시작된 영화는 일관 되게, 자신의 화법으로 이야기의 결말을 보여준다.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끝장나는 각본이 눈에 띄는 영화이다.
- 이 영화의 한 컷
한때 자신의 회사 카우보이 모델이었던 남자는 암에 걸려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태클을 건다. 그때 닉은 카우보이에게 직접 가서 돈을 전달하는데, 그 방법이 가히 압도적이다. 생각도 못한 기발함과 그 당당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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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앨런, 코엔 형제식의 코미디류를 좋아하시는 분
인 디 에어, 를 즐겁게 본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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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sung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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