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퍼펙트(Pitch Perfect)>
큰 기대를 하고 본 작품은 아니었다. 우선 필자가 아카펠라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흔히 캠퍼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저 그런 연애 시뮬레이션의 경우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춘 남녀가 만나 이런저런 난관을 거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전개. 너무 지겹지 않은가? 이제는 장르를 불구하고 등장인물의 ‘타입’까지 생겨날 정도다. 로맨스 영화에서 단순히 ‘로맨스’만으로는 호평을 얻기 힘들다. 그 이상으로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피치 퍼펙트>는 대학 캠퍼스라는 배경에 ‘아카펠라 동아리’라는 음악적 요소를 추가하여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주인공 베카는 뮤지션을 꿈꾸는 아웃사이더.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좀처럼 친구도 사귀지 않는다. 베카의 흥밋거리는 오로지 음악뿐이다. 그러던 중, 베카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클로이를 통해 여성 아카펠라 동아리 ‘벨라’의 오디션을 보게 된다.
지난해 열린 대회 결승전에서 고배의 쓴잔을 마신 ‘벨라’는 올해야말로 우승을 차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매년 상을 휩쓰는 남성 아카펠라 그룹 ‘트러블 메이커’를 이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베테랑들로 구성된 ‘트러블 메이커’에 비해 ‘벨라’신입생들은 미숙하다. 승승장구하는 ‘트러블 메이커’와 맞서려면 기존과는 다른 획기적인 콘셉트가 필요하다. 그러나 팀의 리더 오브리는 클래식을 고집하는 상황.
‘벨라’의 신입생들은 ‘어떻게 저런 애들이 아카펠라를 하지?’싶을 정도로 엉성하다. 아카펠라는 몇몇이 실력 있다고 해서 완성되는 게 아니다. 그저 그런 실력이라도 조화가 잘 된다면 그건 훌륭한 아카펠라가 된다. 하지만 ‘벨라’의 신입생들은 각자의 개성이 너무 뚜렷하다. 한 사람이라도 튀기 시작하면 전체적인 흐름이 망가지는 아카펠라를 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 아카펠라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건 여성 보컬의 청아한 음색이 돋보이는 곡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가 빛을 발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편곡이다. 그 시도는 아주 멋지게 성공했다.
<피치 퍼펙트(Pitch Perfect)>에서 ‘Pitch’는 ‘음높이’라는 뜻이다. ‘Pitch Perfect’는 아카펠라에서 중요한 음정, 화음, 박자를 완벽하게 구현한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확실히 아카펠라에서는 음높이가 무척 중요했다. 여럿이 부르는 노래인 만큼 풍부해야 하고, 그 풍성함을 펼치기 위해서는 각자의 파트에 따르는 충실함이 있어야 했다. 그러자면 노래를 부르는 구성원들 사이의 단단한 믿음이 존재해야 한다. 다 같이 부르는 노래의 힘을 알고, 친구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만이 진짜 굉장한 아카펠라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전체적인 기-승-전-결을 따지면 흔한 내용이다. 오합지졸을 모아 피나는 노력 끝에 빛나는 결과를 이뤄내는 스토리를 찾아보자면 한도 끝도 없다. 관객에게 있어 앞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하지만 <피치 퍼펙트>가 그저 그런 흔한 영화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아카펠라 동아리라는 소재에서 끌어낼 수 있는 피날레를 효과적으로 추가한 덕분인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킬링타임의 대부분을 인물들이 성장하는 데 할애한다. 연습, 또 연습 그리고 갈등과 화해. 스토리 진행에 있어 꼭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제는 관객이 지루해 한다. 다음 장면에 무엇이 나올지 상상해버리기 때문이다. 그 지루함을 깰 수 있는 방법, 그것은 피날레다. 극중에는 남성 아카펠라 그룹 ‘트러블 메이커’도 있고, 아카펠라 그룹들이 모여 벌이는 축제 장면도 등장한다.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아는 노래가 나오면 괜히 반가운 기분이다. 또 비록 우승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공연 장면에서 볼 수 있는 안무와 음악들은 충분히 흥미롭다.
영화의 특성상, 아무래도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중요해진다. 연기와 노래, 공연에 필요한 퍼포먼스까지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주인공 베카로 등장한 ‘안나 켄드릭’은 이러한 우려를 꺾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극중 베카가 아카펠라 오디션에서 했던 노래는 일명 ‘컵송’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매까지 되었다. 안나 켄드릭이 얼마나 훌륭하게 주어진 배역을 소화했는지 보이는 것 같다.
사실 <피치 퍼펙트>는 드라마라기보다는 하이틴 영화에 더 가깝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물론 규모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등장인물의 ‘유형’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치 퍼펙트>의 주인공들은 보다 성숙하고 활기찬 매력을 보여준다. 필요하다면 과감히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는 결단력, 자기 잘못을 받아들이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변신한 ‘벨라’의 모습을 보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깨알같이 등장한 심사위원들의 대사가 딱 관객의 심정이리라. 그녀들은 정말 멋지고, 섹시하고, 완벽했다. 음악과 음악이 줄 수 있는 힘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다.
<하이 스쿨 뮤지컬>이나 <브링 잇 온>같은 하이틴 영화를 재미있게 봤던 사람이라면 <피치 퍼펙트>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글리>와도 비슷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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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
음악과 퍼포먼스를 좋아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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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mingki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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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화음이 하나가 되는 걸 지켜보는 건 언제나 즐겁다. <워터 보이즈>의 혈기 왕성한 소년들이 물속에서 동작을 맞추고 <스윙 걸즈>의 왈가닥 소녀들이 악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던 장면들을 떠올려보자. 쓰러져가는 탄광촌을 배경으로 춤을 추던 <훌라걸스>도 <풀 몬티>도 있다. 이 안전한 드라마의 계보를 <피치 퍼펙트> 또한 이어가려 한다. 다만 영화의 태도는 적당주의에 빠져있다. 승부를 놓고 열을 올리기보다는 즐기라는 아카펠라 무대 위의 법칙을 영화 또한 계승한 것 같다.핑크빛 대학 생활 따위는 꿈꾸지 않는 소녀 베카(안나 켄드릭)가 있다. 지루한 대학생활은 접고 LA에서 디제이로 성공하고 싶은 딸에게 아버지는 일갈한다. "그건 취미생활이지, 직업이 아니다." 일 년만 눈 딱 감고 지내면 군말 않고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겠다는 확답을 받고 베카는 무늬만 대학생에서 제대로 된 새내기로 거듭난다. 이유야 어떻든 아카펠라 동아리도 들었고 우연찮게 만난 소년 제시(스카이라 애스틴)와 친구도 연인도 아닌 시간을 보내며, 지역방송 라디오 인턴으로 꿈도 놓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등 떠밀려 들어간 아카펠라가 재미있어진다. 홀로 디제잉 편곡하는 게 제일 근사할 줄 알았는데, 함께 목소리 높여 화음을 쌓아 부르는 노래가 즐겁다. 드디어 지역 예선 당일, 이기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 베카는 사전에 없던 멜로디로 노래를 하면서 팀의 균형이 깨진다. 여성 아카펠라팀 벨라스는 전통을 중시하는 동아리다. 똑같은 선곡 패턴과 안무, 유니폼까지, Ace Of Base의 90년대 히트곡 ‘The Sign’만을 고집하는 벨라스의 무대에서 심사위원도 관객도 하품을 연발한다. 반면 같은 대학 남성팀 트러블 메이커는 승승장구한다. 벨라스는 지난해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전의를 다지지만 팀 구성도 쉽지 않다. 그래서 모인 면면부터 전통을 거스른다. 스튜어디스 유니폼이 어울렸던 금발 미녀 계보를 포기하고 다양한 군상들이 뭉쳤다. 개성 강한 오합지졸이 모여 하나의 화음을 쌓아가는 과정은 성장 드라마의 기본이다. 비록 시작은 난장판이었으나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온갖 총체적 상황들이 그대로 드라마가 되고,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묘미가 된다. 영화는 놀랍도록 엉망인 개인이 어떻게 성장해왔나는 슬쩍 넘어가고 오직 주인공의 심경에 집중하면서 성장의 재미를 놓친다. 세세한 디테일을 과감히 뛰어넘는 대신 무대를 위한 갈등을 배치하고 무대에서 해결한다.경연 대회 우승 트로피가 당장 인생의 유일한 목표인 청춘들에게 주름진 일상 따윈 없다. 꿈을 반대하는 부모 정도가 걸림돌이 될까. <피치 퍼펙트>는 뮤지컬이 아님에도 줄거리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분명 뮤지컬영화가 아니지만 주크박스 뮤지컬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음악을 위해 이야기를 이어붙인 듯한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치 <스텝업> 시리즈가 현란한 춤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가 존재했듯, <피치 퍼펙트> 또한 아카펠라팀의 성장을 위해 갈등이 삽입되는 식이다. 이 부분에서는 미드 ‘글리’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대학교 캠퍼스라는 공간, 동아리, 볼거리와 음악, 청춘이 묻어난다는 점에서 <브링 잇 온>의 소재를 아카펠라로 전환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유쾌하고 신나는 엔터테인먼트 <브링 잇 온>에는 미치지 못한다.안나 켄드릭은 뮤지컬 배우 출신답게 출연하는 영화마다 노래를 부르더니(<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제외) 결국 제대로 노래하는 영화를 만난다. 그는 <트와일라잇>에서 벨라의 친구로 얼굴을 알린 이후 <인 디 에어> <50/50> <엔드 오브 왓치> 등을 통해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할리우드 신성이다. <피치 퍼펙트>에서는 청춘영화 단골 캐릭터인 괴짜 구석이 있는 아웃사이더로 주역을 꿰찬다. 아직 소비되지 않은 신선한 이미지와 노래 실력으로 영화를 안전하게 이끌어간다. 감독 제이슨 무어는 ‘도슨의 청춘일기’ ‘원 트리 힐’ 등 TV 시리즈 출신다운 안정지향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아카펠라를 두고 록 콘서트 속 폭발하는 열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도 있겠지만, 딱 대학생 경연대회 수준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켈리 클락슨의 ‘Since U Been Gone'부터 브루노 마스의 'Just the Way You Are', 제시 제이의 'Price Tag' 등 싱얼롱이 가능한 익숙한 노래를 듣는데 의의를 둔다면 큰 불만은 없겠다. 적당히 즐겁고 유쾌하다.
2013년 3월 28일 목요일 | 글_양현주 ( zzack08@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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