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이상의 충격, 더 로드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감히 성서에 비견된다는 평가를 받았던 '코빈 맥카시' 작가 원작의 <더 로드>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 <더 로드>입니다. 원작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작품인 만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 우선 원작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원작자 '코밴 맥카시'는 미국의 소설가로 '윌리엄 포크너', '어니스트 해밍웨이' 등과 비견되는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의 원작 소설인 <더 로드>로 2007년도 퓰리처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얻기도 했죠. '코빈 맥카시' 작품에는 한가지 특징이 있는데, 바로 등장 인물에 대한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등장 인물의 '이름'을 등장시키는 대신 '남자','소년','여자','노인' 등의 호칭으로 인물에 대한 호칭을 대신하는데요, 이러한 특징과 함께 세기말 그 이후를 다루고 있는 전체적으로 매우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진행이 됩니다.
원작인 책의 표지
'남자'의 표정을 통해 작품의 암울한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듯 하다. 이러한 원작의 분위기를 영화에 그대로 옮기고자 했던 '존 힐코트' 감독은 장소 선정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요, CG를 최소화 하면서 작품의 황량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잘 나타내기 위해 촬영 당시 '태풍 카트리나'가 지나간 장소, 탄광 등 실제 폐허를 찾아 다니며 촬영을 했다고 하네요영화 중간에 나오는 육지로 떠밀려온 배들도 실제 카트리나의 피해 모습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 카트리나 피해 지역에서 촬영한 장면
이러한 감독의 정성과 함게 '가이 피어슨', '샤를리즈 테론', '로버트 듀발' 등 연기파 배우들이 함께 열연하면서 영화 제작 당시 기대감이 높았었는데요, <반지의 제왕> '아라곤'으로 유명한 '비곤 모렌슨'의 경우 <더 로드>의 '남자' 역을 소화하기 위해 무려 20kg이나 감량, 촬영에 임할 만큼 영화에 대한 애착이 컸다고 합니다. 이렇듯 원작의 분위기를 스크린에 최대한 옮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드린 작품, <더 로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주의해 주세요.
세기말,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세계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와 아들은 굶주림과 혹한을 피해 무조건 남쪽 바닷가로 길을 떠납니다. 카트에 실린 약간의 물과 기름, 그리고 식량을 빼앗기지 않으려 전전 긍긍하며 남쪽 바닷가를 향해 가는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진행되는 이 작품은 기존에 있던 세기말 영화 <2012>, <투무로우>, <딥 임팩트>등의 작품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의 세 작품들이 블록버스트 영화 다운 커다란 스케일, 영웅주의적 주인공의 모습들, 세기말 지구의 종말이 오는 모습과 그 속에서 인류의 사투를 보여준다면 <더 로드>는 '남자'의 대사를 통해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전달하는 것 외에 종말 이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무 차분하고 담담하게 진행이 되기 때문에 자칫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분위기와 함께 영화는 세기말, 즉 '종말'이라는 상황을 당신이 직면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과 함께 '사람답게'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살 VS 생존 어떠한 것이 더 옳은 판단인가
영화 속 생존자들은 크게 두가지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자살 또는 생존이죠. 오히려 영화에서는 '자살'을 즐거움, 또는 편안함이라고 표현을 하며 '생존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빗대어 표현하기도 합니다. '소년'의 어머니인 '여자'는 자살을 선택했지만, '아버지'인 '남자'는 생존을 선택, '여자'의 유언과도 같은 '남쪽 바다를 가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섭니다. 즉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사람답게' 죽는 것이 옳은 것인지, 식인을 하면서 즉 '사람다움'을 포기하면서 까지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할 수 있는데요. 특히 생존자 무리(식인 집단)를 피해 도망가던 중 아들 앞에서 살인을 저지른 '남자'가 한 다음의 대사는 이러한 주제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남자 : 우리는 반드시 '불'을 가지고 있어야 해.
소년 : 무슨 '불'이요?
남자 : 마음 속의 불씨
소년 : 우리는 좋은 사람들인가요?
남자 : 우리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야.
살인을 저지르기 전 '소년'에게 권총 자살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던 '남자'가 다시 살인을 저지른 뒤 '우리는 언제나 좋은사람'이며항상 '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아들을 가르치는 장면은 '사람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함과 동시에 '아버지'로써 자신의
'아이'가 건강하게,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나타난 장면으로, 결국 마음 속의 '불'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그것은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계속 여정을 다니던 중 우연히 발견한 집이 식인 집단들의 집임을 알게 되고 도와달라는 생존자들을 뿌리치고 아들과 함께 도망친 이후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남자'가 계속 아들에게 강조하던 '불씨'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소년 : 우리는 다른 사람 안먹을거죠?
남자 : 그럼
소년 : 아무리 배가 고파도요? 굶어 죽어가도요?
남자 : 지금 굶어죽어가고 있잖니
소년 : 우리는 좋은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불씨'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남자 : 맞아
즉 '불씨'는 '사람답게' 사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가치이자, 윗세대에서 아래세대로 전해져가는 일종의 '유산' 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남자'가 자신이 어린 시절 자랐던 집을 데리고 가는 모습 등에서도 이러한 유산이 전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세대간에 내려오는 기본적인 가치를 부성애라는 모습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데요, 누군가 숨겨놓은 지하 벙커에서 몸을 씻으며 제대로 된 음식을 함께 먹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명장면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명장면
'남쪽의 바닷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남자'는 결국 그곳에서 죽게 됩니다. 그리고 혼자 남은 '소년'은 '남자'가 자신에게 물러주었던 유산인 '불씨'를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다른 생존자 무리들이 '소년'에게 와서 함께 이동할 것을 제안했을 때 '소년'이 물어봤던 것은 '사람을 먹나요', 그리고 마음 속에 '불씨'가 있나요? 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마음 속에 불씨를 가지고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 이라는 것을 '남자'로 부터 물려받았고 다른 '생존자 무리'를 만났기 때문에 해피엔딩인 듯 하지만 마치 유토피아와 같던 '남쪽에 있는 바닷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새로 만난 '생존자 무리'가 과연 진심으로 '소년'을 보호해 줄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마음 속에 불씨가 있는가'에 대한 것을 확인하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나기 때문에 절로 가슴이 무거워지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원작 소설을 먼저 본 뒤 영화를 봐서인지 소설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무력감과 우울함, 어두운 분위기 등이 영화에서 충분히 표현된 것 같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영상으로 보는 것과 상상을 하며 보는 것의 차이가 커서이겠죠? 개인적으로 원작 소설을 보지 않으셨다면 영화를 먼저 보신 뒤 소설을 보는 것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소설 자체가 워낙 무겁기 때문에 중반부까지는 몰입하기에 좀 어려운 부분이 있었거든요.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몰입해서 보기 좋은 영화였지만 소설과 영화 모두 많은 화두를 던지며 끝나는 건 같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불을 운반하는 사람'에는 위에서 제가 언급했던 '사람답게' 외에 다른 많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불씨'에 대한 의미를 어떠한 것으로 하는 것인가에 따라 영화의 해석이 많이 달라질 수 있겠죠. 각자 자신만의 '불씨'의 의미를 가지고 영화를 즐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내가 가지고 있는 '불씨'는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이상 영화 <더 로드>였습니다.
 |
|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 |
|
| 글: 희나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
알 수 없는 이유로 순식간에 불타버린 세상. 잿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남자와 아이는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이동한다. 그들은 부서진 도로와 죽은 나무의 숲, 폐허가 된 휴양지를 통과하며 남쪽으로 향한다. 여정 도중 어둠과 추위뿐 아니라 종종 식인마가 된 다른 생존자들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이는 꼭 영화 탓만이 아니다. 존 힐코트 감독의 역량이 크게 부족해서도 비고 모텐슨의 연기내공이 얕아서도 아니다. (모텐슨은 언제나처럼 <더 로드>에서도 관객의 망막과 가슴에 깊이 새겨질만한 연기와 눈빛을 선보인다) 지상 최후의 풍경에 대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세공미가 모자랐던 것도 아니다. 회색빛의 망가진 도시 풍경이나 거대한 화염이 하늘까지 뒤덮는 광경은 여느 재난 블록버스터의 그것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영화는 소설이 묘사한 남자와 아이의 여정을 우직할 정도로 충실히 옮겨놓는다. 동선과 사건, 대사 한 마디까지도 소설과 고스란히 포개진다.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려 했다”는, 2007년 퓰리처상 수상작의 메가폰을 쥔 힐코트 감독의 포부는 빈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더 로드>는 소설이 품은 감동의 진폭을 그대로 옮겨오지 못한다. 애초에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는 영화화하기에 부적합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더 로드>는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 의 작가 코맥 매카시의 열 번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지구 멸망 이후를 그린 이 소설은 영화화하기 힘들다는 매카시의 소설들 중에서도 가장 난감한 소설 중 하나로 꼽혔다. 소설은 모든 파멸이 끝난 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남은 두 부자(父子)의 뒤를 쫓을 뿐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소설은 어둠 속에서 길을 걷는 남자와 아이의 단순한 행위를 반복해서 묘사한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저주받은 생을 이어가는 다른 생존자들에 의해 위기의 순간을 맞기도 하지만 매카시는 그들이 아니더라도 이미 죽음 앞에 놓인 부자의 삶을 극적으로 가공하지 않는다. 잔혹하게 훼손된 아기 시체와 식인종이 돼버린 사람들과 관련된 에피소드에 할애하는 지면은 극히 적다. 대재앙의 원인은 소설 마지막까지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추상적인 이야기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소설 <더 로드>는 초유의 재난에 대한 현실감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작품이다. 극도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할리우드 제작자들을 사로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영화 <더 로드>는 소설로부터 받은 그 감동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 하는 제작진의 고민과 노고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앞서 말한 대로 고지식할 정도로 부자의 행보를 원작 그대로 옮기려 한 점이나 CG에만 의존하지 않고 원작 속 세기말의 풍경과 가장 근접한 장소를 현실에서 찾아 담으려 한 점이 그렇다. 소설에서 짧게 나오는 몇 안 되는 사건을 확대해 서사를 만들고 감동의 원천을 부성애에서 찾으려한 것은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힐코트 감독과 제작진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영화 <더 로드>가 원작의 깊이에 도달할 수 없었던 가장 근원적인 요인은 간단하다. 스크린에 옮겨진 멸망의 언어가 매카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폭한 세계로 들어가기보다 한 발 물러서 관조하는 매카시 문체의 간결함과 시적 운율에는 그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냉소보다는 연민과 비통함이 묻어난다. 매카시 소설의 세계가 참혹한 만큼 서정성을 띄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매카시의 소설을 접하는 것은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공감각적인 체험이 된다. 자신만의 논리와 감각으로 보편적인 인류사를 끄집어내는 매카시의 언어는 아무리 진화한 테크놀로지로도 시각화할 수 없는 깊이와 진동을 담고 있다.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만약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가 없었다면 영화 <더 로드>는 올해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을 수 있는 수작이 됐을 지도 모른다. 멸망의 과정을 생략하며 기존의 이야기 구성을 뒤엎는 대담함, 특수효과를 덜어내면서 창조한 세기말의 실감나는 스펙터클 그리고 한 아버지와 아들의 개인사를 통해 전파하는 전체 인류사 등 영화는 볼거리와 주제의식, 감동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문체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매카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숙명처럼 범작에 머문다.
2010년 1월 5일 화요일 | 글_하정민 (inblue79@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