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주먹 (성난황소)
마틴 스콜세지
진짜 ‘인간’을 다루는 스콜세지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엔 ‘인간’이 들어있다. 인간이 없는 영화가 없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사실 영화가 영화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창조하는 그 인물과 사건들은 어느 정도 픽션이며 허구, 즉 꾸며낸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사실주(슈퍼 리얼리즘)의 영화들이나 누벨바그의 예술영화를 제외한다면 대다수 영화들의 인물들은 꽤나 비현실적이기 마련이다. 너무 악하거나, 너무 착하거나, 너무 씀씀이가 좋다거나 하는 식으로 표현되기 일쑤다. 이건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늘 의리가 있거나 사소한 도움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거나 쉽게 자신의 물건을 빌려주거나 하는 둥 현실과 괴리감이 있는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상업 영화의 장점은 인물을 포장해 우리가 갖지 못한 어떤 부분을 만족시켜 주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가 뛰어난 부분은, 이런 영화적 캐릭터조차도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과장이 없다. 착하기만 하지도 않다. 악인만도 아니다. 그렇다고 남을 위해 쉽게 뭔가를 승낙하지도 않고, 시기, 질투, 욕망, 어둠, 우울 등이 각 캐릭터 마다 잘 분배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우리는 늘 사랑하기만 하지 않는다. 창피해하기도 하고 지긋지긋하고 우습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전제가 늘 깔려있다. ‘택시 드라이버’에서 택시 운전사가 총을 든 이유는 그 이기적 인간들을 처단하기 위해서다. 반어적 제목 ‘좋은 친구들’은 친구인척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는 뒷골목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분노의 주먹’역시 마찬가지다. 라모타는 자신의 삶을 변명하지만 결국 그의 삶은 온전히 자신에게만 향하고 있다. 누구보다 이기적인 인물이라는 뜻이다. 특히 그가 그의 부인에게 하는 행동은 분노가 치밀 정도로 이기적이고 형편없다. 이렇듯 마튼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엔 우리가 기대하는 인간이 아닌 우리가 늘 보던 인간들이 존재한다. 스콜세지의 영화들이 불편함을 주는 이유기도 하고, 동시에 통쾌함을 주는 이유기도 하다.
황소가 성난 이유
사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주인공 라모타가 왜 그렇게 늘 흥분돼 있는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냥 캐릭터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 영화는 그저 라모타라는 인물의 캐릭터 성을 갖고 만든 영화만은 아니다. (물론 그게 일조하긴 했으나.) 영화 제목의 상징을 잘 알 수 있는 결정적 부분이 나온다. 영화 후반부에 은퇴한 라모타가 10대 매춘부를 고용한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의 독백이 나온다. 영화 전체를 포괄하는 주제이며 그가 스스로 자신을 정당화 시키는 내면의 울부짖음이다. 그 대사가 나오면 그의 비열해 보이고 폭력으로 짖게 물들었던, 용납하고 싶지 않은 그의 삶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 왜 다들 나에게만 그래! 난 짐승이 아냐. 왜 나를 짐승이라고 하냐고!
영화 내내 라모타를 보는 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화를 제대로 주체하지 못하며 늘 신경질적이고 폭력을 일삼는 그에게 사람들은 비꼬듯 ‘짐승’ ‘악마’ ‘괴물’ 등의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권투를 했던 링에서도 그는 괴물이나 짐승 등의 별칭으로 소개를 받는다. 사실, 그의 행적이 정상적이지만은 않다. 그는 실제 인물이었고 굉장히 다양한 쪽으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권투 챔피언, 매춘부 고용인, 폭력 전과 죄수 등. 우리는 때론 어쩔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을 본다. 쉽게 통제되지 못하고 항상 화를 내고 늘 분노하듯 중얼거리는 사람. 혹은 예민하기 짝이 없어 조금만 근처에 가도 불편하고 불쾌해 지는 그런 류의 인간들. 물론 정상적이어 보이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엄연히 말하면 그들은 조금 다르고 예민할 뿐인데, 우리는 어떤 틀, 그러니까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틀의 개념에 그들을 두고 틀리다고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난 황소의 주인공 라모타는 이와 비슷한 인물이다. 그건 어떤 과거의 불운한 환경이나 특별한 기억 등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떠나서라도 그냥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인간의 성격을 타인과 비교하며 누가 옳다, 그르다 할 만한 타당성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온순하며 조용한 사람들은 자신의 화를 참고 있거나 혹은 지각을 자주 하거나 게으를지도 모르고, 예민하고 화를 못 참는 사람은 신경질적이고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아주 사소하고 진중한 것들을 남들보다 더 잘 보는 눈이 있기도 하다. 후자 쪽 부류에는 예술가들이 많다면 전자는 카페 사장이 많을 수도 있다. 즉, 모든 인간이 다 온화하고 착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또 그래서는 세상이 돌아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회’라는 구성원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는 전자 쪽의 사람들을 비정상적 부류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잘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신병자 같은 표현을 쓴다는 건 뭔가 억울할 것 같다는 말이다. 빨간 색이 있다면 푸른색도 있고 검정이 있다면 흰 색도 있듯 대비대거나 비슷한 성향의 인간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래야만 삶이 돌아가고 그게 인생이다.
성난 황소의 주인공 라모타는 신경질적이고 의심이 많고 질투도 많다. 또 자신의 그런 성격을 못 이겨 폭력적기도 하다. 하지만 그를 비정상적으로만 보는 세상의 눈들, 그것들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과 질문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사회적으로 봤을 때, 그를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 있겠지만, 어쨌든 ‘예술’이라는 매체는 이런것들에 대해 문고 답하고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지 않는가. ‘성난황소’는 스콜세지라는 거장이 예민하고 질퍽거리는 삶을 사는 인간들을 위해 만든 특별한 영화가 아닐까.
구성의 방식
흔한 스포츠 드라마를 생각하면 크게 당황할 것이다. 특히 로키 류의 영화를 잔뜩 기대했다면 보다가 팝콘을 스크린을 향해 집어 던질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권투를 했던 라모타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그의 내면을 촘촘하게 파고 들어간 인생 드라마다. 그렇다고 성공 스토리나 비참한 최후를 맡는 권선징악도 아니다. 권투를 소재로 한 폭력과 예민한 삶의 관계, 그 질척거리고 지겨운 인생을 살아야 하는 삶의 아이러니. 물론, 마틴 스콜세지가 어떤 감독인지 안다면 대강 느낌이 올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의 권투 영화다.
구성 중 눈에 띄는 것은, 첫 장면은 그의 마지막 장면이 된 다는 것이다. 즉, 영화는 비참해진 현재 삶을 보며 자신의 빛나던 권투 선수 때를 회상하는 방식의 구성이다. 그런데 재밌게도 이 남자가 회상하는 그 빛나는 젊을 삶이란 우리가 보기엔 결코 빛나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니 이건 어떤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제이크 라모타’가 세기의 예술사에 영향을 준 사건들이 세 가지 있는데, 그것들을 나열해 보겠다. (마치, 나비효과 같은)
1. 마틴 스콜세지의 뮤즈 ; 지금 소개한 영화 ‘성난 황소’로 그의 존재가 부각 되었다. 그의 어떤 면이 스콜세지 감독을 끌리게 했는지 모르지만 여튼 이 영화의 흥행으로 그는 또 한번 주목을 받게 된다.
2. ‘사랑의 찬가’라는 명곡을 탄생하게 함 ; 프랑스 가수 에디뜨 삐아프의 애인이 ‘마르셀 세르당’ 이라는 미들급 챔피언 이었는데, 라모타에게 첫 패배를 당하고 설욕하기 위해 리벤지 매치를 하러 가는 도중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 후 슬픔을 이기지 못한 에디뜨는 반미치광이가 되어 오랫동안 집안 구석에서 나오지 않다가, 끝내 나오게 되는데 그때 만든 음악이 ‘사랑의 찬가’라고 한다.
3.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를 만든 라모타
피아졸라는 동네에서 촉망받는 싸움꾼이자 건달이었는데, 그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권투를 하려고 했다고 함. 하지만 어느날 작은 도장에서 이름도 없는 동갑내기 소년에게 KO완패를 당한 후 주먹의 꿈을 접기로 했다는데, 그 소년이 제이크 라모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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