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뻔 했던 또 하나의 실화
엽문3
해외 영화를 국내로 들여올 때 상업적인 욕심에서 제목을 잘못 붙이거나 일부러 이상하게 붙이는 경우가 있다. 기존 시리즈물의 인기를 틈타 묻어가려는 의도도 있고 아예 주제없이 엉망진창으로 붙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2000년 작 은 저예산 공포 SF 물의 수작으로서 지금도 상찬받는 작품이자 <리딕>시리즈의 태동을 알린 명품 영화이다.
그런데 국내 제목은 <에일리언> 시리즈에 묻어가려는 수입사의 의도인지 <에이리언2020>으로 붙여져 <에일리언>시리즈의 아류작으로 인식되었다. 그렇게 개봉 당시에는 짝퉁 영화로 떠돌다가 세월이 지나 나중에야 인정받게 된 경우이다. <에이리언2020>은 지금봐도 몰입도 최고의 재밌는 SF 영화이고 시리즈의 최신작이라 할 수 있는 3편 <리딕>은 2013년 12월에 개봉되었으니 <에일리언2020>은 <리딕>을 즐기기 위해서 꼭 봐야 할 필수 코스이다. 영화 제목에 대한 불만으로 위에 <리딕>을 하나 짚어 말했지만 이런 경우가 상당수 있다. 시리즈에 편승해서 넘기는 경우는 영화 팬들에게 무례를 주는 일이니 원작의 제명을 올바로 붙이거나 공들여 한국어 제목으로 붙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영화 <엽문3>도 원제목은 엽문전전(前传)인데 <엽문3>으로 붙인 것은 단지 엽문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라는, 시리즈를 훼손한 과실이다. 실제 <엽문>시리즈는 처음부터 견자단이 맡아왔고, 역시 견자단이 주인공으로 <엽문2>가 나왔다. 이제 그 다음편인 <엽문3>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이 영화 <엽문전전(前传)>이 아류작으로 보여지는 것은 제목을 잘 못 붙인 오류가 크다. 아직 제작중인지, 아니면 개봉 예정이 잡혀있지 않은지 모르겠지만 견자단의 <엽문3>이 출시된다면 아마도 포털 영화 DB를 다시 손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제목을 잘 못 붙이면 혼선이 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이 영화<엽문전전(前传)>은 자체로 훌륭하고 좋은 스토리와 감각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캐릭터 설정이긴 하지만 엽문의 프리퀄, 또는 크로스오버로 생각해도 좋을만큼 완성도 면에서 출중하다.

또한 이 영화의 매력은 젊은 엽문의 영국 유학기, 연애, 그리고 장래 소망을 들여다보는 청년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인데 일본 제국의 중국 침략과 같은 시대상과 더불어 엽문의 의협심과 애국심이 어떻게 발전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영화 속에서 영국 유학을 떠났다가 영춘권의 고장 불산으로 돌아온 엽문은 장래가 총망한 젊은이로 성장하여 영춘권을 널리 알리고 대중화하도록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올바른 자세와 맑은 눈빛, 중국 무술에 대한 자부심에서 엽문의 삶은 올바른 지도자의 자세로 압축된다. 의를 살리고 불의를 처단하는 무술인으로서의 참된 삶의 태동기를 영화에서는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아시아 대륙에 대한 침략은 어린 아이들을 배로 실어와 스파이로 투입하는 등의 철저하고 장기간에 걸친 야욕을 보여서 중국은 점차로 기울어져가는 형국이었다. 엽문이 '영춘권을 영화로도 만들고 싶다'는 대사는 진정 영화로 이어져, 영춘권과 배우들의 노력에 의해 이렇게 엽문 그 자신의 일대기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죽어서도 그 의욕과 미래 소망은 성취되었으니 의미가 깊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은 동아시아를 흔들고 중국 소도시인 불산에까지 미치서 중국 문화를 잠식하고 경제권까지 침탈하는 강탈을 이어간다. 결국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침략자들의 계략으로 엽문은 옥에 갇히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엽문은 혼인 상대를 만나게 되어 가정을 이루는 인생의 변화를 겪게 된다. 견자단의 <엽문> 시리즈에 나오는 정숙한 부인은 바로 여기 <엽문전전(前传)>에서 그 인연을 알아볼 수 있다.
여기까지 보게 되는 이 영화의 기간은 청년 엽문의 중요한 성장기이자 엽문이 도장을 열기 전의 일로서 견자단의 <엽문>에 비견하여 왜 이 영화가 자체로 중요한 한 대목을 가지게 되는지 위에 미리 말한 바를 잘 알 수 있다. 스승의 죽음과 영국 유학, 도장 파괴자들의 침입, 일본 제국의 침략 등 역사적 반열에 들어서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춘권에서 높은 발차기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알 수 있는데, 견자단의 영춘권을 보면 상체의 두 팔만을 이용한 빠른 무술이 대부분이고 화려한 공중 발차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답답해 보이기까지 한 이 절제된 무술 권법은 그러나 빠르고 타격감이 강하며 <엽문1>의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10:1 의 대결구도에서 1인 1타의 수준 높은 공격력을 보인다. (견자단의 <살파랑>, <도화선> 등의 예전 현대 액션물을 보면 날라차기를 비롯하여 높은 뒤돌려차기, 180도 뒷차기 등 다양한 발차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상체를 이용한 빠르고 정확한 권법은 영춘권의 철학이자 권법수 라는 것이 이 영화에서 밝혀진다. 엽문의 실제 장남인 엽준이 분한 엽문의 두번째 스승 양벽이 어떻게 엽문에게 영춘권의 낮은 자세 권법과 높은 발차기의 두가지 버전을 합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대목에서 엽문이 정통 영춘권의 대사로 등극하는 과정을 알려준다. 이 컨버전 무술 시범을 익힌 엽문이 정통 영춘권 도수에서 사이비로 취급받는 장면은 엽문이 영춘권을 어떻게 진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자 급소가 높은 곳에 있을 때(목, 눈, 관자놀이) 공격 방향을 자유자재로 심어줄 수 있는 중요한 일합 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나 화려한 발차기는 멋지고 우아하지만 빈틈이 노출되기 쉽고 속도에서 낮은 자세 권법에 밀린다. 그런 뜻에서 영춘권의 두손 두팔 권법은 빠르고 강렬하며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경우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수하다는 것이다. 사제로 나오는 원표의 우직한 수련 자세는 영춘권의 정통성에 대해서 이 영화 자체가 고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홍금보를 사부로 두고 사제의 입장에서 두 눈을 가리고 합을 겨루는 원표의 늙은 모습은 어딘지 안스럽지만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는 홍금보, 원표라는 8-90년대 액션 스타가 반가운 마음이 크다.)
짝퉁 엽문으로 알고 이제야 슬쩍 보게 된 영화이지만 홍금보, 원표, 번소황까지, 게다가 최근에 <미스터고>에서 나온 어린 모습의 서교 까지 보게 되어 어디선가 많이 보아온 배우들의 대거 등장에 캐릭터를 만나는 재미도 적지 않다. 이 영화가 이렇게 기존 것과 비슷비슷해보이기도 하지만 정통성면에서 뒤지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각각 엽문에서 사부, 의형제, 제자 등등으로 분화하여 계속 참여한 패밀리라는 점이다. 견자단의 <엽문3>에서는 어떤 패밀리가 등장할 기 기대되는 대목이다.
영화는 일본 침략자들의 무리를 그대로 둔 채로 엽문의 일대기 중 한 시절을 짚어주고 있지만 엽문 시리즈의 한편을 장식하는 중요한 영화로서 재밌게 보고 엽문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견자단 안나온다고 뭐라하지 말고 엽문 시리즈의 한 축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게다가 위에 말한 엽문의 실제 아들인 1924년 생 엽준의 영춘권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의외의 선물이다. 24년생이면 2013년 올해 만 89세이다. 90을 바라보는 고수의 실제 무술품과 발차기, 권법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성룡의 예전 무협영화들에서 나오는 스승처럼 정신력과 육체적 무술을 함께 주는 스승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견자단의 엽문3 편도 어서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