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투기
INGtoogi: The Battle of Surpluses, 2013
평범하지 않은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비범한 이상한 영화
대학을 나와야만 인정받는 세상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의 소수 공감대 이야기가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인 흥행성적을 올리고, 세 주인공은 잉여에서 일약 주목받는 스타덤에 오르게 만든 <잉투기>. 영화를 시청하는 내내 불편한 웃음이 있는 동적인 영화를 지향하면서 정적인 순간들을 많이 보여주는 평소에 보지 못하던 영화였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고, 그들이 살아가려면 부조리한 세상에서 안일하게 적응해온체 살아가던 그들이 발버둥치면서 사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솔직히 저는 영화를 보면서 한번도 웃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웃긴 장면으로서 부여한 장면으로 보여지지만 그것 마저도 안타깝고 쓰라려 보였습니다. 누군가는 방대한 꿈을꾸고, 위대한 재능을 타고나고, 태생적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한 듯이 받아온 사람들의 성장드라마가 아닌 반대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큰 스토리의 전개를 살펴보기보다는 세 인물들의 감정 변화의 과정과 그들에게 일어나는 갈등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가고 성장하는 지를 보여주기위한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사람들에게 말도 잘 못붙이고 사회생활의 결여된 현대사회의 전형적인 인터넷 폐인인 일명 칡콩팥-태식, 남들은 당연한 듯이 받아온 사랑을 받지 못한체 자라고 본심은 관심을 바라고 사랑을 원하지만 겉으로는 강한척하고 낮에는 격투기, 밤에는 먹방 VJ를 하는 영자,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한 능력을 가졌지만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공허한 삶의 꿈을 쫓는 듯한 개인적으로 필자와 많이 닮은 듯한 공감을 느꼈던 쭈니쭈니-희준.
민폐, 식충, 찐따, 무기력, 겁쟁이, 오타쿠 - 칡콩팥(태식)
영화의 내용을 이끌어가는 남자 주인공을 몇 개의 단어로 정의하자면 위에 쓴 글정도로 나열할 수 있을겁니다. 극단적으로 영화에서 찌질한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보면서 참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듭니다. 인터넷 상에서만 유명세를 타고 파괴의 신으로 불리우면서 쎈척, 강한척을 하면서 현실을 도피하는 인물입니다.
그렇게 의미없고 실제 자신에게 없는 모습을 가상으로 만들어내고 삶을 무기력하게 살던 도중에 실생활에서 게임 아이템을 팔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강하지 않은 자신에게 실재로 강한 상대가 '현피'를 당하게됩니다. 그리고 태식은 유일하게 세상에서 잉여라고 느끼지않고 인정해주던 인터넷상에서 '쓰레기', '잉여' 취급을 받고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등을 돌려 그를 비난합니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순간은 여러 순간과 상황들이 있겠지만 크게 본다면 어쩌면 자신에게 민감한 문제를 누군가가 건드렸을때 터지고 화라는 감정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누구보다도 태식은 자기자신이 잉여라는; 세상에 필요없는 존재이고 쓰레기라는 사실을 알고있지만 인정하지는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자존심이고 자존감이고 생존력이 였던 인터넷상의 자아를 타인의 의해서 깨지게 되었고, 태식은 정말로 밑바닥을 치고 세상 밖으로 본의 아니게 나오게 됩니다.
왕따, 킥복싱 소녀, 먹방 vj, - 영자
영화 상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서포터 역할을 하는 캐릭터인 영자입니다. 이 아이 또한 현대사회의 다른 모습으로서 존재하는 하나의 평범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해보이는 연약한 고등학생을 그려내고있습니다.태식은 인터넷상의 이름인 '젖존슨' 한테 현피를 당하게되고, 밑바닥을 친 후에 부들부들 떨면서 화라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체 그 사람을 죽이겠다면서 무작정 칼을 들고 서성입니다.
그 때 새로운 재미를 찾게된 영자는 그에게 연락을 해서 젖존슨의 행방을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잉투기의 큰 스토리라인은 이 때부터 가속도를 붙게됩니다. 소외받고 남들과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은 하자가 많은 그들이 서로 만나는 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상 현실인 인터넷상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영자는 태생부터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쿨하게 무시한체 살아온 강한 갑옷을 입은 햄스터 같은 인간입니다. 킥복싱 아마추어 선수이고 깡도 누구보다 쎄서 주위에 친구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갑옷을 입었다고 해도 그녀는 햄스터같은 약한 면을 가지고있습니다. 어쩌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있는 사랑이라는 부분의 게이지를 채운체 살아가야 하는데 그녀는 그 게이지가 충족할 만큼 채워본적이 없어서 그런게 있는지 조차 몰라 보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의 게이지를 채우기 위해서 인지 밤마다 자연스럽게 핑크색 가발을 쓰고 아프리카 TV에서 치킨 먹방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구걸합니다. 영상속의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듯이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애처롭게 보였고 지금도 아프리카 TV를 하는 많은 분들이 약간은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허세, 망상, 무시, 하대, 결국에는 같은 부류, 잉여아닌 척 하는 잉여 - 쭈니쭈니(희준)
위에 적은 단어들은 영화를 보고난 후에 희준을 생각하면서 드는 단어들입니다. '젖존슨'에게 달려드는 태식을 도와주는 두번째 서포터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희준은 잘생기기도 했고, 여자도 잘꼬시기도 하면서 조금만 노력하면 남들 만큼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체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딱 그정도 만큼만 노력하고 남들을 무시하고 그들보다 자신은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또 다른 잉여입니다. '젖존슨'에게 맞고있는 태식을 보고도 모른체 하고 도와주지 않은것에 대한 미안함에 태식을 도와주지만 사실 그 또한 특별히 할 일은 없습니다. 사실 필자로서 세 청년중 이 희준이라는 인물이 가장 불편하고 한심하고 보기가 불편했습니다.
그 이유를 곱씹어보니 그는 대한민국 그저그런 대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남자들 또는 잉여들과 많이 흡사합니다. 결국 젖존슨을 이기기위해서는 <잉투기>(잉여들의 격투기)를 참여해서 젖존슨을 찾을 것이 아니라 그를 불러드릴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희준과 태식은 격투기를 배우게되는데 희준은 태식보다 더욱 격투기에 흥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체육관 관장이 회비를 끌어내기 위해서 사탕발린 말로 격투기에 소질있어 보인다는 말 한마디 때문입니다. 이렇게 칭찬, 관심, 사랑,들이 필요한 세 청년들의 이야기를 짜임새있고 저 예산으로도 많은 의미를 송곳같이 찌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잉여롭게 만든 것은 사회이고 가정이고 실속 챙기기 바쁜 어른들
세 청년이 가상 현실에서 나와서 젖존슨이라는 공공의 적을 향해서 본의 아니게 돌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시 의미없고 잉여로운 자들의 허공의 외침이라는 것을 차츰 그들 스스로 깨달아 가기 시작합니다. 태식의 엄마는 아들을 항상 창피해하고 자신의 준 사랑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인물입니다.
태식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떠나지 말라고 온 자존심을 다해서 외치지만 뿌리쳐 버립니다. 영화상에서는 엄마의 비정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 나이 먹도록 태식은 엄마의 굴레에서 밥도 잘 차려먹지도 못하고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포기해 버린것이든 이제는 다른 식의 교육법을 쓰려는 엄마의 마음이든 성장한 자식에게 용돈을 쥐어주고 밥을 차려주고 생선을 발라주는 행동은 절대로 자식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분명 태식은 이 이후에 살기 위해 살아갈 것이고 더 나은 자신으로 발전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자 또한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태식과 희준이 관심을 보였을 때 거부하는 행동과 사랑의 게이지를 조절 할 수 있는 능력을 본의 아니게 배우게 되고, 자기 자신이든 사회이든 자기 방식으로 복수를 하고 해소를 해가는 모습이 멋져 보입니다.
옳은지 그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잉여롭고 도태되어 있다는 생각을 상식적인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서 나아가려는 시도와 모습이 중요한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잉여라고 생각하지 않은 정신 승리를 거둔다면 말입니다.
희준은 영화 끝까지 어떤것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이 항상 무시해오고 데리고 다녀야지만 자신이 돋보이는 장치인 태식을 추종합니다. 희준은 어쩌면 무엇인가 하나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무수히 많은 젊은 이들의 정신을 대변합니다.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그를 속인 가증스러운 어른들이 밉습니다. 해온 공부가 있고, 집안의 기대가 있는데 어느것 하나 이룬것은 없고 하나의 집중은 안되니 자신 보다 높은 존재를 곁에 두기보다 자신보다 낮은 존재를 옆에 두고 있는겁니다.
그랬던 태식이 젖존슨이라는 필사의 적을 쫓는 모습에서 어쩌면 희준은 더욱 불타올랐을지 모릅니다. 젖존슨 또한 원대한 꿈을 꾸고 살아가는 한 청년에서 사회에 불같은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애먼 사람에게 화가 돌아간 경우입니다. 결국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경쟁사회에서 도태된 젊은 이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상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과 반대로 경쟁력을 갖추려면 경쟁을 통해서만 생긴다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경쟁이 싫다고 말하고 옆으로 삐져나온다면 패자의 핑계거리로 밖에 들리지 않고 결국에 나에게 남은 것은 써야만 하는 시간과 억눌러야하는 기대감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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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불편한 진실들을 유쾌하게 맞서는 잉여들을 보고싶으신 분
삶이 무료한 잉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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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원종현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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