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니 (Honey, 2010)
세미 카플라노글루

- 시적 영화
영화를 보는 내내 하품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웬만큼 지루한 예술 영화도 한 두 번의 하품으로 두 시간을 거뜬히 보낼 수 있었는데, 이 영화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눈이 자꾸 감기고 몸을 뒤척이며 슬그머니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믿겨지지 않는 신체적 변화를 체험했다. 발가벗은 것처럼 온 몸에 살이 돋아 올랐고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해 번갈아 뒤치락거리고 있었다. 그 기분은 영화를 보고 난 며칠 후까지도 이어졌다. 영화를 본지 꽤 됐지만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영화의 첫 장면과 중간, 마지막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좋다! 훌륭한 영화란 이런 것이다.
시는 이미지의 문학이다. 스토리텔링 자체가 없지는 않으나 그것과 가장 무관해지고 싶은 서사 예술이 바로 시다. 시는 틀을 탈피하고 이야기가 아닌 그림을 독자에게 전달해주고 싶어 한다. 눈을 감을 때 보이는 상상 속 이미지라던가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는 어떤 전류 같은 첫 경험의 느낌을 주고 싶어 한다.
소설과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는 현대에 시적인 영화들의 수요가 많이 준 것은 사실이다. 영화는 취향의 장르라지만 자본이 우선시 되는 현대의 흐름에선 마니아적 취향은 뒷전으로 물러나는 세태는 좀 아쉽다. 어쨌거나 소설 같은 서사 풍부한 영화들 속에서 이 빛나는 영화는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편으로 기억될 듯하다.
그렇다고 영화가 구성의 틀이 없는 건 아니다. 영화는 철저하게 계산된 이야기의 구성을 통해 시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자연의 경관 이라던지 바람소리, 땅을 밟는 소리와 멀리에 점처럼 보이는 인물들의 움직임들. 과장 하나 없이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해서 일상을 비춰준다. 그것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적인 미덕이다.
참고로 터키 영화는 두 번째다. (내 기억이 많다면..) 예전에 봤던 우작이 있었고 이 영화가 두 번째 영화다. 많은 것을 보지 못해 잘은 모르겠지만 터키 감독들은 자연과 일상을 매우 객관적으로 잘 찍는 듯하다. 그리고 의외였던 부분은 한국과 정서가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보여주는 방식이 징그러울 정도로 건조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감성적이고 신파적인 면이 특성을 이루는 것과 반대로 우작과 허니는 답답할 정도로 건조하고 담담했다. 아니지, 한국에 들어온 영화들이 그런 것만 들어 온 것일까. 여튼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의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성장
성장은 갑작스럽다. 누군가 다가와 너 성장하고 있으니 알아 둬 라고 귀띔해주지도 않으며 통계를 낼 수 있는 시기적 패턴이 있지도 않다. 누군가에게는 5살 유년시절에 찾아오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30살이 넘어서야 찾아오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의미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종류가 많다. 늘 새로운 성장들이 생성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쉽게 깨달음이라고 표현한다. 이건 1차적 성장, 즉 물리적 성장의 경우(키가 크거나 몸이 늙거나 등의)에도 역시 포함된다. 생각해보면 깨달음과 물리적 성장이 결코 다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키가 크거나 늙는 것은 자신이 겪지 못한 신체적 변화를 말한다. 그 속에서도 깊이는 다르지만 우리는 새로운 변화들을 인지하고 적응해 나가며 고통을 받기도 하며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이 속에서 우리는 몰랐던 것들을 깨달으며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한 마디로 성장은 깨닫는다라는 말의 가장 큰 범주에 속하는 단어로, 속된 표현으로 철 든다는 것을 가장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성장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장황하게 말을 풀어 놓은 것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핵심이 어떤 성장의 깨달음의 의미와 매우 밀접해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한 작품에 아이가 나오고 아빠가 죽는다. 성장의 플롯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특별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성장을 어떻게 독창적으로 표현했는지 알아보자. 먼저 도식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여섯 살 소년 유수프(아직 어리고 작은 물리적 신체) - 시간 – 아이가 자란다. (신체적 변화)
위의 간단한 도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육체적 성장의 순서다. 세상에 자라지 않는 아이는 없다. 어른이 되지 않는 인간은 피츠제럴드가 창조한 벤자민 버튼이 외에는 없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기에 영화에서는 육체적 성장을 미래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유수프가 지내는 하루를 담담하게 보여줌으로써 시간의 경과를 느끼게 해 줄 뿐이다. 당연한 진실을 일일이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꽤 지루하다. 이건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간의 특성과 닮아있다. 아이는 대부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20년이란 세월을 지내야 하고 그 시간은 짧은 것 같지만 생각보다 길고 지루하다. 이 도식은 유수프의 정신적 성장과 잘 맞물려 하나의 시 같은 메시지를 만들어 준다.
아빠에게 의지하는 유수프, 글을 잘 읽고 상(명찰)을 받고 싶은 유수프 – 아빠의 갑작스런 죽음 – 완전히 읽지도 못했는데 받아버린 상
영화 처음과 끝에는 학교의 장면이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그냥 지나치듯 보면 평범한 하루의 일과처럼 보이지만 이런 영화에서는 모든 컷들이 다 의미가 있다. 심지어 꿀을 따기 위해 무모하게 거대한 나무를 올랐던 아버지의 장면도 그저 강렬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아버지라는 인간의 성장 중 정점에 있는 단단하고 보호막 같은 존재를 가장 끔찍한 자연적 재해로 보여주고 있다. 그 의미는 결국 인간이 날 뛰어 봤자 인간일 뿐이라는 자연주의적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여간 이 작은 예처럼 영화의 장면엔 불필요한 소모가 없다.
다시 학교 이야기로 돌아가 유수프가 글을 읽고 명찰을 받는 것을 떠올려 보자. 이 장면은 총 세 컷 정도로 나뉘어져 있다. 첫 장면은 자신감 있는 유수프의 모습이다. 아이는 읽을 수는 없지만 문장들을 외워왔기 때문에 자신감이 넘친다. 그런데 선생은 유수프에게 아이가 외운 문장이 아닌 다른 문장을 시킨다. 아이는 당황하며 더듬는 목소리로 글자를 제대로 못 읽게 된다.
두 번째 장면은 상 받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유수프의 모습이 비춰진다. 또 상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교실 장면에서는 유수프가 드디어 명찰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 장면이 이상하다. 유수프는 처음에 나왔던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새로운 문장을 더듬었을 때처럼 아이는 더듬으며 한 문장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유수프에게 칭찬을 해주며 아이에게 상을 준다. 무슨 의미일까. 이 장면의 의미를 알려면 바로 전 장면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영화는 편집의 마술, 예술이다. 편집으로 감독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플롯을 편집으로 재창조 하는 것이다. 바로 전 장면에서 유수프는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은 어린 유수프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불행이었다. 갑작스럽고 실감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날 유수프는 생각도 못한 상을 받는다.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임에도 아이는 얼떨결에 상을 받게 된다. 이 얼떨결에라는 말이 중요하다.
우리는 성장의 과정을 느끼고 있지만 알지 못한다. 언제 찾아왔는지 어떻게 찾아 왔는지 그게 무엇인지 당시엔 알지 못한다. 다만, 시간이 경과해서 느낌을 알 뿐이다. 게다가 그 성장이 찾아오는 시기는 완전하지도 않다. 아빠에게만 의존해야할 미성숙한 어린 나이에 아빠의 부재가 찾아 온 것처럼, 완전히 글도 읽지 못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또 그 다음이 찾아오고 또 다시 다음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는 성장의 메시지를 차용하고 있지만, 결국 하고자 하는 깊은 이야기는 차별적이다. 성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서서히 느끼게 될 뿐이다.
큰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이 외에도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많고, 깊다. 이런 영화는 영화를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을 말하고 있지만, 영화는 우리도 영화 안에서 성장 하게 해준다.
- 구성의 방식
가장 큰 핵심 이야기를 놓고 그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하듯 보여준다. 하지만 그 일상들은 결코 큰 핵심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방식의 구성이 아닐까 싶다. 구성적으로 조금 특이한 방식은 시간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맨 앞에 위치했다는 것 정도다.
- 이 영화의 한 컷
아빠가 꿀을 따러 나무에 올라가는 첫 장면의 디텔인한 모습. 이런 영화에서도 첫 장면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 주고 있다. 가장 임펙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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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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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sung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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