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필름의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휴고 (HUGO)
보통 3D기법이라 하면 판타지적인 SF영화에서나 많이 쓰이는 줄 알았다. ‘가족 영화’는 보통 단조롭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감동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화려한 영상미보다는 스토리와 대사에 중점을 맞추는 게 전형적인 가족 영화의 승부수다. 그런데 <휴고>는 달랐다. 놀라운 그래픽과 롱 샷까지 선보인 촬영 스킬로 인해 프랑스 기차역의 모습을 생생하게 잘 담아냈다. 영화의 배경이 1900년대 프랑스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세련되고, 화려한 영상미를 발휘했다. 편집도 편집이거니와 앵글의 다채로움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토리보다 영상미에 더 집중하게 되기도 했다.
사실 <휴고>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는 현대의 화려한 CG기술과 영상미보다는 과거의 영화 제작 기법을 사랑한 감독이다. 그는 <휴고>에서 영화에는 역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하다. 촬영부터 편집까지, 그리고 사소한 효과까지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 표현하던 클래식 무비들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극중 휴고와 이사벨이 영화에 대한 책을 보며 옛날 흑백 영화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지금으로는 다소 조잡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 어색함 속에 센스가 엿보여 깜짝깜짝 놀란다. 현대에도 ‘리메이크’되거나 재 상영되는 오래된 영화의 가치가 새삼 느껴졌다.
그러나 <휴고>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우선은 산만한 스토리다.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킬링타임 속에서 관객에게 깊은 뜻을 전해주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하나의 큰 흐름을 깊게 파야지, 여러 사람들의 감정을 담아내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궁금증밖에 남기지 못한다. 적나라한 표현일수 있으나 영화 앞에서 관객은 무력하다. 철저히 화면이 보여주는 이야기를 따라간다. 화려하게 변화하는 화면 앞에서 깊은 생각을 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잡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영화는 바쁘다. 주어진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것만도 힘에 부친다. 관객을 이해시키고, 그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기에는 벅차다.
사실 처음에는 장난감 가게 주인 ‘조르주’에게 엄청난 비밀이 있는 줄 알았다. 도둑질을 했다고는 하나 어린 소년의 소중한 보물인 수첩을 불태워버릴 필요까지는 없었고, 손녀딸에게 흔한 극장 구경조차 시켜주지 않았다. 영화를 기피하고 거의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치를 떠는 걸 보아하니 분명 아픈 과거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리니 실망스러웠다. 원래 기대가 큰 만큼 실망했을 때 낙담은 더한 법이다. 결국 주인공인 휴고와 이자벨은 조연인 줄 알았던 조르주의 비밀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할 말을 잃었다.
까놓고 말하자. <휴고>는 판타지 가족영화라는 홍보문구에는 어울리지 않는 영화다. 물론 화려한 영상미는 여느 SF영화 못지않다. 그러나 판타지적인 요소는 부족하고, 스토리는 루즈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승전결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실망스러울 것이 분명하다. <휴고>는 휴고와 이자벨의 성장기보다는 조르주의 회고록에 더 가깝다. 그가 꿨던 꿈과 실패, 그리고 포기에 다다르기까지……처음부터 조르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휴고>가 처음 개봉했을 때, 관객들의 희비는 엇갈렸다. 홍보문구에 속아 뒤통수를 맞았다는 표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영화도 없을 것이다. 사실 포스터만 보면 <휴고>의 줄거리는 아버지를 잃은 소년 휴고가 어려움을 거쳐 로봇을 고치고, 그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찾아내고, 그를 도운 이자벨과 함께 룰루랄라 하는 전형적인 판타지 가족영화의 스토리가 예상된다. 그런데 앞서 표현했듯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이건 단순히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얘기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기대한 장르가 전혀 다른 것이다. 멋모르는 관객들은 루즈한 줄거리에 실망하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의도를 간파한 소수의 관객들로부터 무식하다는 몰매를 맞고 말았다. 광고의 왜곡이 불러온 참사였다.
<휴고>에서 돋보인 것은 오로지 화려한 영상미. 다음이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였다. 어린 나이지만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두 배우, 클로이 모레츠와 아사 버터필드는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생생한 눈빛과 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흔히 ‘발연기’로 실망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배우들을 생각하면, 이런 아역배우들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클로이 모레츠는 <렛 미 인>과 <킥 애스>, 아사 버터필드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최근 개봉한 <앤더스 게임>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아쉬운 점도 있는 반면 기대 이상으로 놀라웠던 장면도 있었고, 적어도 배우들의 연기에 실망하거나 눈이 지루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처음부터 많은 기대를 품지는 않아야 할 것 같다. 그저 보여주는 대로, 또 전혀 의외의 결말이 나오더라도 흔쾌히 받아들이면 괜찮겠다. 클로이 모레츠와 아사 버터필드의 팬이라면 한번 보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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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mingki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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