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온 편지
Du vent dans mes mollets, The Dandelions, 2012

제 17회 부산국제 영화제 초청작인 <나에게서 온 편지>는, 프랑스의 흥행 연극 <무릎을 스치는 바람>의 원작 소설을 읽은 감독 카린느 타르디유가 소설에 반해, 원작자와 함께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탄생하게 되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수줍은 소녀 라셸이 엉뚱발랄 소녀 발레리를 만나 우정을 쌓으며 성장하는 과정과, 권태롭게 살던 소녀들의 부모 또한 점차 변해가는 모습을 아기자기한 화면으로 유쾌하고 섬세하게 담아내었다. 각자의 실제 성격대로 연기하는 듯한 아역과 성인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또한 눈 여겨 볼만한 작은 수작이다.

라셸은 새로운 학기의 시작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에 책가방을 메고 자는 수줍고 걱정 많은 9살 소녀이다. 라셸의 엄마인 콜레트는 아무리 차가 안 다녀도 절대 빨간 불에는 신호등을 건너지 못하게 하고 딸이 좋아하는 누텔라도 사주지 않는 꽉 막힌 면모를 보여주며,
무뚝뚝한 아빠 미셸은 라셸이 반찬 투정이나 불만을 얘기 하면 “내가 수용소에 있었을 때에 비하면 그건 사치야”라고 말하며 입을 다물게 한다. 한편 같은 방을 쓰는 할머니는 얼마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딸의 집에 신세를 지고 있는데, 라셸은 이 할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매일 지켜보곤 한다.

위험한 일은 절대 시키려고 하지 않는 엄마와,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할머니 탓에 라셸은 아이 치고는 소극적이고 두려움이 많은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학기 첫날 우연히 만난 발레리는 라셸과는 영 딴판이다. 머리를 삐삐처럼 양갈래로 묶은 말괄량이 소녀 발레리는 체육시간엔 천장 밧줄에 매달려 이거 보라며 외치는가 하면, 담임 선생님 다니엘의 비밀을 알게 되자 그녀를 미행하자고 하고, 수업시간에 비속어를 사용해 교장실에 불려가기도 한다.
뭘 하든 거침이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발레리와 그 반대인 라셸은 라셸의 생일 파티를 계기로 서로의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같이 다니엘 선생님을 미행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그리고 발레리와 시간을 보내면 보낼 수록 라셸은 점차 어린 아이다운 웃음과 활발함을 찾아간다.

이 두 소녀의 사랑스러운 케미스트리는 위트있는 유머와 함께 영화 전반을 채우면서, 관객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로 기분 좋은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또한 어린 시절을 거치면서 누구나 겪어 봤음직한 성과 죽음에 관한 호기심, 첫 사랑의 설렘, 친구와의 즐거웠던 한 때 등 다양한 감정과 추억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향수에 젖게 한다. 이런 빛나는 어린 시절은 아이의 귀여운 상상력과 순수함 가득한 시점, 저해상도 필름 카메라로 찍은 듯한 미장센으로 나타나면서 쉽게 잊혀지지 않을 잔상을 남긴다.

물론 영화는 아이들의 이야기만 담고 있지는 않다. 라셸과 발레리의 부모님들을 통해서는 여리고 서툰 어른들의 모습과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인지에 대한 고민 또한 전개된다. 아빠 미셸은 어린 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 시절을 겪고 가족 중에서 홀로 살아 남았는데, 그 탓에 라셸만 보면 그 시절 얘기를 하면서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라고 말한다.
한편 콜레트는 본인이 어린 시절 자신의 엄마가 자기에게 무관심하고 남자들만 만나고 다녔다는 사실을 원망하고 있다. 그렇기에 딸의 행동을 과하게 간섭하기도 하고, 심심하다는 라셸의 말에 복에 겨웠다며 자기 엄마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겉보기엔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면에는 여전히 치유 받지 못한 상처를 안고 무서워하고 원망하며 홀로 쭈그려 앉은 아이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어 수용소 시절은 끝났지만 마음 속에서는 매일 같이 그 시절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어른’으로서 멀쩡히 사회 생활을 하더라도 여전히 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한 아픔과 억울함 등은 ‘겉보기에만 어른’들을 괴롭히면서 스스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많은 부모들은 영화 속 라셸의 부모처럼, 본인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자식 탓이 아닌데도 자기 어렸을 때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자녀의 행복을 제한하는가 하면 자녀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바람직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럼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이에 대한 답은 영화 속에서 꽤 명확하게 나타난다.
‘행복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부모가 자신의 상처부터 치유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한다. 자신이 힘든 시절을 겪었다고 해서 아이도 똑같이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자신의 바램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고 아이가 원하는 것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게 그 답이다.

<나에게서 온 편지>는 먼지 속에서 뒹굴던 낡은 앨범을 아주 오랜만에 펼쳐 보여주며 입가엔 미소를, 마음엔 그리움을 넘실거리게 하는 듯한 영화이다. 깜찍한 소녀들의 조건 없는 우정과 성장 기록, 그 주변 가족들의 소소한 행복과 슬픔을 담은 이 영화는 어린 아이가 그린 수채화 같이 순수한 느낌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마음 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자기 안의 어린아이와 다시 만나 아이처럼 맑게 웃거나 울어보고, 어린 시절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주고, 좋은 부모가 어떤 부모인지 배우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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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의 독특한 상상력과 유머, 아기자기한 연출을 좋아하는 사람
어린 시절의 자신과 추억들을 떠올려보고 싶은 사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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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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