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나기 위해 인간이 되었습니다, 하루
뛰어난 작화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제작사에서 만든 타이틀로 기대를 모은 작품 <하루>. 기대만큼 예쁜 작화에 먼저 눈길이 가고, 6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허술하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로봇이라는 소재는 지금껏 수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장르로 다루어졌다. 로봇VS인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SF부터 로봇이 인간을 치유한다는 내용의 감동 스토리까지 셀 수 없이 많다.
<하루>에 등장하는 로봇 'Q1'은 후자에 가깝다. 때는 2030년 근 미래 교토,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상용화된 시기다. 불행한 사고로 연인 하루를 잃은 쿠루미는 예전의 밝은 모습을 잃어버린 채 다락방에 틀어박혀 살아간다. 그런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Q1’은 하루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을 로봇이 치료해준다는 조금 낯선 방법이다. 일종의 테라피일까? ‘Q1’은 쿠루미를 찾아간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쿠루미는 좀처럼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루’가 죽기 전 쿠루미는 밝고 상냥한 소녀였다. 집안 곳곳에 놓인 액자와 요양소 노인들의 얘기를 조합해보면 확실히 그렇다. ‘Q1’은 쿠루미의 집에 드나들며 하루에 대해서 알아간다. 그러다 다 맞추어지지 않은 루빅큐브를 발견한다. 이것이 쿠루미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계기가 된다. 쿠루미는 큐브에 자기만의 소원을 적어놓은 것이다. 그녀의 소박한 생활만큼 소소한 소원들이다. ‘Q1’은 쿠루미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인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별로 비싸보이지도 않는 장식품을 왜 애지중지하는지, 추억이 담긴 물건을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영화를 보는 내내 어리숙하고 귀여운 Q1의 모습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하루’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Q1은 당황한다. 쿠루미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이 ‘하루’였다는 사실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쿠루미는 그에게 추억이 담긴 소중한 단추를 달아주며 '이것이 하루의 심장'이라고 말해준다. 화해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연인 중 하나가 사라진 후에야, 겨우. 빨갛게 빛나는 심장 같은 단추는 하루와 쿠루미에게 있어 갈등이자 화해의 매개체다.
사랑에는 언제나 갈등이 따른다. 살아생전의 ‘하루’와 가까이 지냈던 친구 ‘류’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여름축제를 맞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하루와 쿠루미는 뜻밖의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일종의 ‘반전’이다. 그와 동시에 지나치게 인간적이었던 Q1의 모습을 납득할 수 있다. 의문이 한 번에 풀리면서 쓰라린 통증이 몰려온다. 누가 누구를 치료하고, 치료받았는지.
쿠루미의 소원 1.하루와 요리하기.
극중 하루는 불행한 어린 시절 때문에 물질욕이 많은 인물로 묘사된다. ‘돈이 있을 땐 모두가 친절해’라고 말하던 그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쿠루미는 하루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낭비만 하지 않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질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쿠루미의 소원은 소박하고, 정말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이룰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소소한 소원이 이루어지기 더 힘든 법이다.
쿠루미의 소원 2.기린 키우기.
첫 번째와는 달리 비현실적이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아닌 기린을 키우고 싶다니……하지만 이 소원에는 조금 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극중 Q1은 ‘기린’을 흔히 생각하는 진짜 기린으로 인식하고 살아있는 기린 대신 모형을 쿠루미에게 가져다준다. 하지만 쿠루미가 생각한 ‘기린’은 전설 속 사영수(용, 거북, 봉황, 기린)의 한 종류가 아닐까 한다. 기린은 상서롭고 뛰어난 동물로써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알려져 있다. 하늘과 땅. 하루와 쿠루미를 갈라놓은 불행한 사고가 비행기 때문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꽤 의미심장하다.
쿠루미의 소원 3.하루와 여름축제 가기.
축제는 어느 나라, 시대를 막론하고 즐거운 날이다. 쿠루미는 하루와 함께 축제에 감으로서 갈등과 오해를 풀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를 위해 유카타를 만드는 정성, 수줍어하는 모습, 마지막까지 하루를 생각했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하루>는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드문드문 보여주는 과거에 대한 복선이나, 처음 볼 땐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의미심장한 대사들이 꽉 조여진 매듭 같다. 일단은 하루와 쿠루미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나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아픈 사회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스토리의 초점이 러브스토리에 맞춰져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하루>의 서평을 훑어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반전이 있다는 사실쯤은 알 것이다. 하지만 그 반전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는 편이 좋다. 관객의 충격과 전율을 노리는 반전은 사실 공포, 스릴러 영화에나 어울린다. 로맨스 영화에서의 반전은 어디까지나 등장인물의 감정을 바탕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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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mingki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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