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놈들과 싸워라,
다크 아워 (Darkest Hour)
1. 전형적인 대결 구도, 전형적인 주인공 설정
SF영화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작품은 아니다. 참신하다는 얘기는 못 해주겠다. 하지만 SF영화 특성상 기본적인 긴장감은 깔고 들어갈 수 있다. 초반에는 괴물의 존재가 궁금해 상당히 집중하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곧 루즈해지고, 메인 주인공들보다 개성 있는 조연들이 속속 등장해 어지러웠다. 구성 자체가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어울리는 것 같다. 평범하고 무력한 주인공들이 유능한 조연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해간다는 느낌이었다. 이 과정은 상당히 길고 자세하게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는데, 10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안에서 보여주기는 어려우니……만족보다는 아쉬움을 많이 남긴다.
2. 괴물이라는 소재 자체는 괜찮다
<다크 아워>에서 딱 한 가지는 좋았다.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실은 알고 보면 끔찍한 존재라는 것이다. 괴물이 처음 등장한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밤하늘에서 하늘하늘 떨어지는 발광물체는 빛나는 꽃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심했다. 발광물체 주변에 몰려 구경하고, 섣불리 다가갔다.
그러나 그것은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사람의 손끝이 닿는 순간 아름다웠던 발광물체는 본성을 드러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다. 사실 어떤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다. 괴물이 사람을 ‘처치’하는 과정의 CG장면이 조악해서 나중에는 무덤덤할 정도였으니. 정말 처음만 신기했다. 처음만 놀라웠다. 그 긴장감을 적절히 조율했으면 좋았을 텐데, 한 가지 패턴을 너무 고수했다.
3. 어중간한 러브라인과 억지 같은 동지애
개인적인 관점일지는 모르겠다. 생존자들 사이에 있는 연대감은 초반부터 조금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클럽에서 만난 남녀가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켜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유대감이 생기긴 하나 처음부터 큰 갈등 없이 한길을 같이 온 것이 조금 의아하다. 극중 스카일러는 사건 전부터 벤, 션과 적대관계였으니 제쳐두기로 하자. 앤이 잠시나마 ‘저 사람들을 믿을 수 있어?’라고 언급하기는 했지만 곧 나탈리에게 설득 당한다. 이 장면을 좀 더 길게 보여주거나 벤, 션에게 다른 대사를 주었다면 보다 자연스러웠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나라마다 인연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다르니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동료가 된 사람들 사이의 연대감이 허술하면, 영화 자체의 구성이 어중간해진다. 과거에 인연이 있던 사이였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다던가, 클럽에서 만나기 전 다른 곳에서라도 안면이 있었다던가 하는 작은 에피소드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4. 정말 딱 거기까지, 뒤의 이야기가 굳이 궁금하지 않다
솔직히 얘기하면, 액션씬도 그렇게 훌륭하지 않다. 4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 치고는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처음 제작부터 3D를 엄두하고 만든 것치고는 그저 그렇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크 아워>의 외계생명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 시각적으로 긴장감을 더할 수 없는 설정인 것이다. 물론 간혹 보이는 발광물체, 거기서 뻗어 나오는 전깃줄 같은 요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SF영화는 CG기술의 발달과 함께 무한히 성장해 왔다. 관객은 당장 눈앞으로 달려드는 괴물에도 무덤덤할 정도다. 긴장감을 주고 싶었다면 괴물의 존재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상황을 보다 간절하고 위태롭게 살렸어야 했다.
사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인간이 무력하게 당했던 것에 비해 괴물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다크 아워>의 괴물은 전기에 반응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발 앞에 전구를 깔아놓으면 충분히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자기기에 민감하다. 극중 벤과 션이 괴물과 맞닥뜨린 시점에서 경찰차 밑에 숨는 장면이 나온다. 그 정도의 기지만 있어도 충분히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괴물은 인간이 유리 뒤에 숨으면 감지하지 못한다. 과연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까? 아무리 기습적으로 당했어도? 물론 이것만으로 괴물을 처치할 수 있는 대항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살아남을 수는 있다. 구태여 허둥지둥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사람은 급박한 상황에서는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다.
5. SF재난영화에 기대해 보아야 할 점
사실 SF영화 시장은 거의 레드오션 수준이다. 이제 어지간한 괴물은 다 나왔다. 괴물에 대항하는 주인공 스타일도 판에 박혔다. 외모와 나이와 국적이 다양해봤자 기본적인 설정이 비슷하면 전부 같은 덩어리로 보인다. <다크 아워>에서는 그것을 가차 없는 살생으로 무마해보려는 듯 했으나, 역효과였다. 잠시 흠칫했을 뿐 곧 잊혀졌다. 주연처럼 표현되었지만 얼마나 개성이 없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어느 영화에서든지 주연급 캐릭터를 하차시키면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 캐릭터에 애착을 가진 관객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토리를 위한 희생이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필요하다면 살생도 피하지 않는 냉정한 감독이라는 인정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어중간한 상황에서 순삭(순식간에 삭제되는)당하는 느낌이 들면 관객은 허탈하다. 허탈하다 못해 분노까지 느낀다. 관객은 재난영화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희망은 기대한다.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용기, 거기에서 삶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에서라도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둘 중에 하나만 해라. ‘괴물’을 메인으로 내세워 공포감을 조성할 거라면 처음부터 ‘인간’을 강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무력한 모습으로, 철저하게 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관객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 반대라면 ‘인간’쪽 생존자를 능력자로 구성해라. 어벤저스급 영웅으로 설정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 방면에 유능한 과학자, 개발자, 상황을 능동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로 일행을 꾸려라. 그 사이에서 적당히 감정을 조절하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