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룩클린 브라더스
(The Brooklyn Brothers Beat the Best, 2012)
★★★ 좋은 '음악 영화', 좋은 '영화 음악'이란 이런 것!
'세상을 뒤흔들리라
.'
알렉스(라이언 오넌 분)는 자신의 기타 케이스에 이 말을 적으며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를 부정하고, 그의 음악을 외면했던 주변에선 알렉스의 포부에 줄을 그었고, 그 밑에 '찐따'라는 글씨를 적어 넣고는 그를 조롱했다. 알렉스가 주변으로부터 놀림을 받았던 이유는 별 게 아니다. 왕따나 괴짜 부류에게 습관적으로 갖다 붙이는 그 이유. '남들과 달라서, 평범하지 않아서'.
텅 빈 화장실의 마지막 칸,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이내 긴장이 풀렸는지 스르르 바닥으로 내려오는 알렉스의 두 다리는 영 힘이 없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장면에서 알렉스는 변기에 앉은 채로 이별 편지를 부여잡고 애써 눈물을 삼키고 있다. 첫 등장부터 실연남이 된 알렉스. 이어 공연이 시작되고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몸담은 밴드가 해체된다. 파트너는 알렉스와 자신의 음악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밴드를 해체하자고 한다. 실연당한 것도 모자라 올해만 세 번째 밴드 해체다.
알렉스는 울적한 기분을 노래로 달래 보지만 불행은 여기서 멈추질 않는다. 다음 날 알렉스는 직장에 지각해 동료와 실랑이를 벌이고 결국 해고를 당한다. 일주일에 단 20분 공연을 하고 싶어 하기 싫은 부동산 매매 일을 3년 동안 해왔는데, 해고는 단 하루 만에 칼같이 이뤄졌다. 실연, 밴드 해체, 해고. 모든 것이 엉망인 상황. 그 와중에 짐(마이클 웨스턴 분)이라는 작자가 나타나서는 알렉스에게 함께 밴드를 하자고 제안한다. 잠깐의 의견대립 끝에 결국 2주간의 밴드 투어를 떠나기로 한 둘. 괴짜 밴드 '브룩클린 브라더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영화 <브룩클린 브라더스>는 '괴짜'라는 주변의 평가를 듣고 자란 두 '괴물 뮤지션'의 마지막 음악 모험을 다룬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빤하지만 영화 속 음악은 심오하며 심상찮다. '브룩클린 브라더스'의 음악에 한 번 귀를 기울인 순간, 그들의 노래에 매료될 정도다. 알렉스의 희한한 가사와 기타 선율, 아동용 악기를 뚱땅거리며 만든 짐의 비트와 화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들만의 음악은 관객의 눈을 스르르 감기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그만큼 영화는 시각적인 부분보다 청각적인 부분에 기대고 있다. 카메라의 앵글은 전반적으로 매우 단조로운 반면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어느 하나를 빼놓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곡조와 가사의 구성을 보인다.
그 중 이들의 음악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이들이 처음 합주를 맞춰 보는 장면이다. 우여곡절 끝에 밴드 투어를 하기로 결정한 두 괴짜 뮤지션은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자동차를 타고, 그 안에서 공연에 쓸 노래를 만든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이 이들의 노래를 수놓을 오선지가 되고, 그 위로 알렉스의 부드러운 기타 선율이 흐른다. 즉흥적으로 내뱉어지는 가사에 멜로디를 실은 알렉스의 노래는 짐의 요상한 비트와 함께 어우러지며 그들만의 음악으로 재탄생된다.
알렉스와 짐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과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이루지 못할 꿈을 꾸기보다 적당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며 그 결과로 얻은 부(富)와 포기했거나 유보한 꿈을 등가로 교환해 매뉴얼 같은 삶을 살아간다면, 이들은 정반대의 삶을 산다. 주린 배를 채울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한 채, 남은 에너지는 온전히 자신의 꿈에 쏟아 붓는 것이다. 전자의 최우선 가치가 '안정'이라면 후자의 최우선 가치는 '자유'다. 그렇게 '브룩클린 브라더스'는 자유를 좇았다. 꿈을 좇았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의 중량감을 서사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점은 못내 아쉽다. 우선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간과하기 힘든 허점들이 노출된다. 캐릭터 설정에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주인공 알렉스에게 '괴짜'란 딱지와 크게 어울리지 않는 외양과 상황이 부여되었다는 점이다.
알렉스를 찬찬히 살펴보자. 그는 훈훈한 외모를 갖췄다. 행색이 남루하여 꾀죄죄하고 가난해 보이기는 하지만 '괴짜'라는 단어를 연상할 정도는 아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그의 외모와 옷차림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 그래서 영화가 내린 긴급 처방은 알렉스에게 우스꽝스러운 사슴 인형 옷을 입히고, 기타 케이스에 '괴짜'라고 적는 것이었다.
그래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영화는 알렉스와 알렉스를 차 버린 전 애인의 연결 고리를 잊을만하면 꺼내 알렉스를 울리는 데 사용한다. 울컥하는 알렉스에게 '찌질'하고 군색한 남자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이다. 여기에 알렉스의 과거와 그가 작사한 노랫말도 그의 '괴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사용된다.
이렇게 공들인 설정으로 알렉스는 완벽한 괴짜가 되었을까? 아쉽게도 그 결과는 실패다. 이런 작위적인 설정들은 알렉스를 '진짜' 괴짜로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가장 괴짜처럼 보였던 지점은 어린 시절 친구들이 자신의 기타 케이스에 적어 놓은 '괴짜'라는 글씨를 현재까지 지우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영화 초반부, 단 세 번 공연 해놓고 서로가 지향하는 음악이 다르다는 핑계로 알렉스를 버린 파트너는 알렉스에게 자전적인 노래를 하라고 충고한다. 알렉스의 가사가 파트너가 듣기에는 이상하고 해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렉스의 노랫말을 곱씹어보면 모든 노래가 알렉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통해 알렉스가 자신의 기타 케이스에 적힌 '괴짜'라는 글씨를 지우지 않은 이유를 추론해볼 수 있다. 알렉스에게 친구들의 조롱과 함께 했던 과거의 기억이란 떠올리기조차 싫은 악몽과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과거를 마냥 부정하고 부인하며 살아갈 수도 없는 셈. 그래서 알렉스는 자신의 뼈아픈 과거를 음악적 영감의 소재로 사용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했던 것처럼 보인다.
서사가 영화의 메시지 전달에 기여하지 못하는 또 다른 지점은 이들이 맞닥뜨린 시련의 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알렉스가 맞닥뜨린 시련의 키워드는 밴드 해체, 실연, 해고이며, 짐이 맞닥뜨린 시련의 키워드는 불운하고 불행한 가정사와 밴드 해체이다.
여기에 두 주인공이 관계하는 인물들 간의 소소한 갈등과 위기의 상황들이 이들의 여정 위에 놓이지만, 거의 대부분이 해프닝 수준에 그친다. 그리고 이 상황들은 쭉쭉 뻗어나가는 이야기의 진행을 멈춰 세울 만큼의 파괴력은 갖지 못한다. 한 마디로 극 전개의 '밀고 당기기'가 없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애초에 이들에게 주어진 갖가지 시련들이 꿈과 자유를 갈망하는 음악 모험에 불을 지필 만큼 유난스럽거나 파격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그들이 겪는 시련의 종류와 크기가 누구나 한번쯤 겪는 홍역처럼 아주 일상적인 삶의 편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는 이야기보다 정서에 기대는 영화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의 헐거움이 영화 전체의 감상을 방해할 만큼 큰 흠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들이 자신의 여정을 좀처럼 진척시키지 못하고 망설이는 순간들과 어떤 위기들도 큰 어려움 없이 극복하는 순간들은 이들에 동화된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 여지가 있어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그 사이사이를 따뜻한 음악들이 채우고 있지만, 취향이 다른 관객에게는 이 음악마저 자장가로 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음악 영화를 찾는 관객에게 영화 <브룩클린 브라더스>는 훌륭한 선택이다. 아마 당신이 이 영화를 선택한다면 영화 안의 노래를 듣자마자 음반 매장을 달려가거나 인터넷 음원 사이트의 OST 카테고리를 뒤적이지 않을까 싶다. 노래를 한 번 더 듣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은 기분이 드는 좋은 음악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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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분
편안한 분위기의 영화를 찾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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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JK SOUL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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