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그라드: 최후의 전투
Stalingrad , 1993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잔인한 전투는 2차 대전 중에서 독-소 전쟁이다. 그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인데 배경이 되는 도시의 이름이 당시 지도자 스탈린의 이름을 딴 도시이고 규모도 상당히 큰 데다 독일군이 대규모로 패배하여 전황이 기우는 사건이어서 드라마적인 요소가 많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미 2001년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이 전투를 소재로 ‘에너미 앳 더 게이트’라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대규모 전투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저격수끼리 대결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고 소련군의 입장에서 만들어졌기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서구 국가에서는 드물게 헐리우드 스타일로 만든 동부전선 소재의 영화였지만 깊이 생각하는 영화이기보다는 오락영화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전에 스탈린그라드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스탈린그라드 : 최후의 전투’이다.

영화 초반에 눈에 띄는 것은 황량한 러시아의 들판이었다. 초반의 이탈리아의 따사로운 햇살에서 어두침침한 러시아의 하늘은 이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아닐 수 없다. 자신만만한 독일군이었지만 러시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의 운명을 관객들이 처음부터 알 수 있도록 이 장면을 넣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상상 속의 전투와는 다르게 엄청난 참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상병은 속출하고 포로들을 학대하는 모습에서 주인공과 부대원은 놀라지만 이들도 곧 저들이 놀라는 장면으로 들어가 전투를 벌이고 저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 과정을 그린 것이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이 영화는 '특전 U보트'와 함께 독일인의 입장에서 2차 대전을 다룬 영화이다. 특히 독일인에게 뼈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동부전선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것에 큰 의의를 가진다. '스탈린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에서 수많은 무기와 장병들이 쏟아져 건물, 공장 하나를 빼앗는 전투를 벌이지만 수없이 많은 무의미한 죽음이 계속되면서 벌어지는 상황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장병들의 심리가 탁월하게 묘사되었다.
영화 내내 흐르는 어두운 분위기는 자칫 이 영화를 계속 감상하기 힘들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 상황을 관객이 직면하도록 하는 것이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진정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가장 많이 나온 장면 중 하나는 부상병에 관한 것이다. 스탈린그라드에 도착하여 전투에 투입되었을 때 부상을 당한 독일군을 보여주었는데 영화 중간에도 부상병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연기하는 장면은 정말 탁월하다. '내 군화를 찾아달라'는 대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은데 전투에서 다리를 잃어버린 사람의 상실감을 잘 연출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 속에서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이처럼 살아있는 지옥의 풍경이었다. 영화에서도 그럴듯한 포장 하나 없이 이러한 장면을 그대로 잘 살린다. 그리하여 전쟁이 얼마나 잔인하며 특히나 의미 없는 전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가를 이 영화에서는 하나도 숨기지 않고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역사 속의 독일군 장군들도 히틀러의 무의미한 후퇴금지 명령 때문에 꼼짝없이 포위되어 항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장군들 또한 전투 현장에서 생사를 오가는 장병을 무의미하게 소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일반적인 독일군 이미지와는 다르게 무능한 수뇌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비극은 적군뿐만 아니라 아군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깨닫게 해준다.
화려한 군복을 입은 독일군의 평소 인상과는 다르게 이 영화에서는 민간인에게 엉뚱한 죄목을 씌워서 학살하거나 여군을 성 노예로 만드는 등 추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일군이 러시아에서 저지른 범죄를 스스로 고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 덕분에 러시아에서 개봉했을 때 오히려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이 겪는 내면의 갈등도 탁월하게 그렸는데 '특전 U보트'에서도 조난당하던 선원을 외면하는 승무원이 괴로워하는 장면이 있는데 민간인을 처형하려 하면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 것은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것은 침략당하는 사람은 물론 침략하는 국가의 구성원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침략군의 깃발 아래 전투에 임하지만, 침략을 실행하는 지도자의 장기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영화에서는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히틀러의 무의미한 도시 사수명령은 실패로 끝나고 독일군은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항복하고 만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독일군이 처절하게 몰락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치닫는데 주인공 또한 이 냉정한 흐름에서 이기지 못하고 만다는 것이 영화의 진실성을 더하는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독일의 자기반성과 동시에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줌으로써 반전 영화의 성격을 띄고 있다. 전쟁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망상에 사로잡혀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그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는 것을 영화의 비극적인 줄거리와 결말을 통해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참혹함도 간접 체험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만큼 뼈저리게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어떤 것인지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알 수 있었으며 여느 기록영화 못지않게 전투의 참상을 사실에 가깝게 담아낸 훌륭한 영화라고 감히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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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서영갑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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