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
- 우디알렌의 방식
우디알렌은 인물들에게 자비가 없다. 알렌은 정확하고 날카롭게 자신의 영화 속 인물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쿡 찍어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인물을 결코 감성적으로 보는 법이 없다. 이기심, 욕망, 허세 등 인간의 천성적 본능만이 알렌이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는 대상일 뿐이다. 신파나 동정, 진실과 영혼 같은 건 그가 흥미를 끌 수 있는 주제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더욱 사실적이고 유쾌하면서 씁쓸하다.
블루 재스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는 재스민, 최상위층에서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진 여자의 심정을 과장 없이 보여주고 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우아한 미를 잃지 않은 케이트 블란쳇이 재스민 역을 맡고 있는데 연기가 꽤나 좋다. 아무런 설명도 없어도 그녀가 취하고 있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 관객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녀는 스스로 부끄러울 수 있고 창피하며 본능적이기 까지 한 재스민의 역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연기하고 있다. 그건 노련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알렌의 완벽한 각본 때문이기도 하다.
우디알렌 감독은 결코 즉흥적인 쪽지 대본이나 상황을 만들지 않는 감독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구성한 이야기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시나리오로 만든 뒤 작업을 시행한다. 또한 모든 배우들에게 완전한 대본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획대로 필요한 배우들에게 대본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여하튼 알렌의 치밀한 사전작업은 영화에 임하는 배우들에게는 훨씬 더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영화의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역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영화 같은 경우엔 재스민과 진저 외에는 완성된 대본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나머지 인물들에겐 그들이 맡은 파트만 대본을 주었다고 한다. 이는 그들이 내용을 숙지하지 않고 호기심을 갖고 연기에 동참하며, 직조되거나 만들어진 연기가 아닌 자연스럽고 그 상황에 맞춘 연기를 위한 알렌의 철저한 계산법이었다고 한다. 이런 치밀하고 계획된 그의 연출법이, 배우들을 더 즐겁게 만들어 주고 흥미롭고 완벽한 영화를 만들어 주는 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 같다.
- 블루문
재스민은 허영덩어리 여자다. 하지만 그녀가 허영에 가득 차게 된 건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녀는 허영을 충분히 즐겨보았기 때문이다. 현재 재스민에게는 그게 허세나 허영으로 보일지라도 한때 그녀에게 그건 당연한 권리였다.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가진 남편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원하는 것은 모든지 가질 수 있는 상류층 여자였던 것이다. 이 상류층 여자가 당시엔 생각도 하지 못한 가장 최악의 상황까지 오게 된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의, 그것도 자신이 저지른 찰나의 실수로 그 모든 행운을 뻥 차 버리게 되었으니.
음악 ‘블루문’이 나오는 순간은 늘 그녀가 전 남편이 할과 했던 그 ‘한 때’를 기억할 때이다. 확고한 상류층에 속했던 그녀의 모습, 무엇이든 원하면 다 가질 수 있었던 당시를 떠올리며 그녀는 블루문을 그리워하고는 한다. 블루문은 그녀가 한때 가질 수 있었던 부, 하지만 현재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그것을 상징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그녀가 다시 블루문에 도달 할 것 같은 장면들이 펼쳐진다. 정치가를 꿈꾸는 재벌 드와이트를 만났을 때이다. 드와이트가 엔틱 가게에 들어가 매우 비싸고 고급스러운 망원경을 사오면서 재스민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달도 볼 수 있는 망원경이에요. 달 본 적 있나요?'
망원경은 드와이트의 또 다른 상징이자, 재스민에게 또 다시 블루문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암시 같은 것이다. 즉, 더 생각해 보면 블루문 이라는 것은 부로 가득했던 과거의 재스민의 환희의 순간을 상징하는,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징한다는 말이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재스민이 블루문이 나올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할, 그 이를 처음 만났을 때 블루문이 흘러 나왔어요. 정말 아름답죠.'
영화의 구조 속에는 더 복잡한 허영이 나온다. 그건 의외로 재스민의 동생 진저의 허영이다. 그녀는 얼핏보기에 서민적이고 허영과는 전혀 거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녀 역시 재스민의 운 좋고 우월한 유전자를 질투하며 나름대로의 허영을 그린다. 재스민과 함께 파티에 갔을 때 그녀는 그녀의 현재 상황에 비교했을 때 좀 더 나은 남자와 춤을 추게 된다. 알이라는 사운드 엔지니어다. 칠리라는 애인이 있지만 진저가 보기엔 칠리보단 알이 훨씬 나아 보인다. (물론 재스민의 입장에서는 둘 다 비슷하게 보이겠지만.)
결국 그녀는 알과 쉽게 사랑에 빠지고 그와의 미래를 그리게 된다. 또한 칠리를 매몰차게 차버리며 형편없는 남자라고까지 말한다. 그럼에도 재스민과 진저는 큰 차이가 있다. 진저는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발 붙여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이지만 (알과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렇듯) 재스민은 아니다. 그녀는 결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끊임없이 블루문의 세계를 그리워하기만 한다. 이건 영화 속에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건 비단 '부'의 허영만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상황에서의 허세, 허영. 우리는 모두 살면서 자신만의 블루문을 가지고 있고, 그리워하고 있다. 그게 부이든,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든. 중요한 건 그 블루문을 계속 그리워하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인정하고 현실에 발 붙이고 살아갈 궁리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 구성의 방식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대조법으로 영화를 구성하고 있다. 공간으로 치자면 과거 재스민이 상류층 시절 살던 부촌과 현재 동생 진저의 집으로 오게 된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의 모습이 비교되듯 나오면서 재스민의 상황을 대조해 보여주고 있다.
시간으로 치면 화려하고 부했던 과거의 재스민과 불명예스러운 일로 빈털터리가 되어 동생 집에 머물게 된 초라한 재스민을 보여주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인물에서도 대조법이 눈에 띈다. 고풍스럽고 화려한 재스민과 서민적이고 풍요롭지 못한 진저의 비교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특히 둘이 관계하고 있는 애인들과의 모습들을 교차시켜 보여 주면서 확연하고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 이 영화의 한 컷
재스민의 동생 진저가 칠리를 자신의 일터에서 쫒겨내는 장면. 재스민과 다를 것이라 생각했던 진저 역시 비슷한 속물근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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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알렌을 알고, 좋아하는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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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sung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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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누적되는 연륜으로 세상과 인생에 대한 그만의 명민한 시각을 더욱 깊이 있고 더욱 다채롭게 그려낸다. <블루 재스민>에서 우디 앨런은 그동안 이어오던 해학과 재치 대신 진한 드라마를 택한다. 그리고 그는 이 선택으로 마르지 않는 이야기와 원숙한 연출 솜씨를 과시한다. 타인의 조력과 화려한 거짓에 근거한 삶, 그리고 이를 인정할 배짱도 포기할 용기도 없는 그녀의 자존심. 영화는 한 여자의 추락으로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존재의 위기, 그리고 삶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자전적 이야기로 영화계 정상에 오른 우디 앨런. 그런 그가 전하는 자기기만과 기반의 흔들림에 대한 이야기. 그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굳이 말할 필요 없어 보인다.
2013년 9월 20일 금요일 | 글_최지나 기자 (payphonelov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