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
好雨時節, A Good Rain Knows, 2009
‘좋은 비의 시절’로 직역될 수 있는 제목 <호우시절>의 출발지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성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첫 구절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다. ‘좋은 비는 내릴 때를 알고 있어 봄에 만물을 소생케 한다’라는 의미에서 따온 영화 제목과 걸맞게 영화속의 중간중간 중요한 시점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청명하고 맑은 대나무에 스치는 빗소리가 아련하게 옛사랑을 추억하게 하는 영화의 장면들은 우리를 오래된 기억으로 이끌어낸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스토리. 유학시절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졌던 두 사람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가 우연한 기회에 재회하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이 영화지만, 이런 단순한 스토리 외에 깊은 감정들이 비와 함께 버무러져서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닌게 된다. 누군가에겐 따뜻한 첫 사랑을, 누군가에겐 즐겁고 아련한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속에서 잔잔하게 그려지는 중국의 배경과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잎 소리가 잘 어우러진다.
여기 사천에는 네가지 유명한게 있어요
사천 미인, 팬더, 술 그리고 사천 요리
건설 중장비회사 팀장인 박동하(정우성)는 중국 청두로 출장을 온다. 마중나온 지사장(김상호)의 안내로 관광을 하게 된 동하는 그 곳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는 메이(고원원)를 만난다. 동하와 메이는 미국 유학시절 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사이였다.
동하와 메이는 그날 밤 만날 약속을 하고, 유학시절 함께했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동하가 기억하는 과거와 메이가 기억하는 과거는 많이 달랐다. 동하는 유학시절 메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줬다고 기억하지만, 메이는 자신이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고 했고, 동하는 메이와 사귀었다고 생각하지만 메이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영화의 이런 스토리는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본적이 있거나 혹은 꿈꿔보는 로맨스일 것이다. 그때는 사랑인줄 모르고 헤어졌지만, 시간이 흐른 후 가끔 그 사람이 생각나거나 그리워지던 그때, 혹은 생각조차 안했던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난 그 때 느끼는 감정들은 관객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용히 이어지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중국 청두의 맑고 아름다운 광경 또한 국내 관객들에게 새로운 설레임을 주는 것 같다.
좋아, 그럼 키스해봐
네 말대로 입술이 기억하고 있다면
또 하는 건 어렵지 않잖아, 안 그래?
동하는 오랜만의 메이와의 만남에 설레여한다. 둘은 다시 만나게 되고, 밤거리를 거닐며 데이트를 즐긴다. 동하는 메이와의 만남에서 예전에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만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동하 자신이 꿈꿨던 미래와도 만나게 된다. 동하와 메이가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서로에 대해 생각이 났지만 둘은 함께 있으면서 과거에 공유했던 시간들을 천천히 되돌아보게 된다. 이것은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예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처음엔 사진을 찍은 그 순간만을 기억하지만, 오래 보면 볼 수록 사진을 찍었던 그 시절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감시자들>에서 악역으로 나온 정우성도 좋아하지만 <내 머리속의 지우개>에서 거칠지만 로맨틱한 정우성의 모습도 좋아한다. 이 영화 <호우시절>의 정우성은 후자에 가까운 캐릭터로 덜 거친고 좀 더 로맨틱한 남자이다. 여자 주인공 메이역의 고원원은 1997년 장양 감독의 에 출연하며 영화에 데뷔했다. 최고의 모델이자 영화배우로서 앞으로 중국영화를 이끌어갈 커다란 재목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리고 한국 영화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깨끗하고 맑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의 스토리에 좀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처음부터 널 사랑했단 걸
지금이라도 증명한다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동하와 메이는 미국 유학시절 친구였기 때문에 다시 만난 둘은 영어를 통해 대화한다. 우리는 연애 문제에 있어서 의사소통의 문제를 가장 많이 꼽는다. 비록 같은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뭔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 들 때가 있고, 다른 언어로 서툴게 이야기 해도 통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호우시절>에서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도 서로의 눈빛, 말투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석규-심은하(8월의 크리스마스), 이영애-유지태(봄날은 간다), 배용준-손예진(외출), 임수정-황정민(행복). 허진호 감독은 이때까지 여러 스타들을 커플로 캐스팅해 많은 로맨스 영화를 만들어왔다. 새로 시작하는 연인, 오래된 연인, 불륜 등 다양한 스토리에서 녹아다는 허진호 감독의 로맨스 이야기는 대부분 좋지 않게 끝맺음 되어왔다. 과연 <호우시절>의 연인 동하와 메이의 사랑도 이들처럼 끝이 날까? 아니면 둘의 사랑은 봄비를 맞고 결실을 맺게 될까?
동하,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봄이오니 꽃이 피는 걸까?
영화 제목이 두보의 시에서 따온 <호우시절>인 만큼 영화는 전반에 두보와 관련된 것들을 그려낸다. 우선 여자 주인공인 메이가 일하는 곳은 '두보초당'으로 중국 쓰촨성 청두 외곽에 있는 초가집과 거대한 규모의 정원, 부속 건물들로 구성되어있다. 두보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유명한 시인으로 두보초당에 4년동안 머물면서 <춘야희우> 등 여러편의 유명한 시를 지었다고 한다. 또한 두보초당에는 두보의 석상을 비롯해 각 시대별, 나라별 두보에 관한 서적 자료와 유물 등이 소장되어 있다.
<춘야희우春夜喜雨> 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봄이 되니 내리네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소리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江船火燭明(강선화촉명) 강위에 뜬 배는 불빛만 비치네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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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고 아련한 옛사랑을 추억하고 싶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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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현아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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