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처음 만나는 남자마다 “운명을 믿으세요?”라고 다소 백치미 넘치는 질문을 할 것 같은 24세의 몽상가 로라의 꿈에서 시작한다. 로라는 꿈속에서 숲 속을 헤매다 천사가 손짓으로 가리키고 있는 어떤 왕자님 복장을 한 남자를 만나는데, 이 남자에게 안겨 두려움 없이 하늘을 날면서 황홀한 감정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영화 속에서 꿈이란 흔히 이성적 사고가 잠자고 있을 때 슬그머니 깨어나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숨겨진 욕망의 발현인데, 로라는 그 꿈처럼 동화 속 왕자님과 첫눈에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를 원하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처럼 이유도 모른채 누군가에게 갑작스레 빠져들며, 몸과 마음이 둥실둥실 들뜨고 그 사람과 함께하면 뭐든지 가능할 것만 같은 열띤 감정. 남자건 여자건 한번쯤 이런 강렬한 사랑에 빠지는 로망을 꿈꾸곤 할 것이다. 로라는 이런 감정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면서 이혼녀이자 무명배우인 고모 마리안느(영화 감독인 아네스 자우이)에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로라는 어느 파티에서 음악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작곡가 지망생인 산드로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로라는 자기의 꿈속에서 본 것과 똑같이 천사상이 가리키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산드로가 바로 그 꿈 같은 사랑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산드로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급히 파티를 나서고, 급한 나머지 신발 한 짝을 흘린다. 서로 엇갈리던 시간을 지나 산드로와 로라는 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후로 급속도로 친해지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산드로와 만나게 된 과정에서 일어난 우연의 연속이 로라로 하여금 산드로를 운명의 연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로라의 이러한 생각대로라면, 어떠한 우연의 연속도 운명이 되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로라는 나중엔 바람둥이 맥심과 자꾸 마주치는 우연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맥심에게 한눈을 팔게 되고,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여겼던 산드로와의 관계에 회의를 갖게 된다. 사실 우연은 작은 확률이긴 해도 말 그대로 별 인과 관계없이 산발적으로 일어난 일일 뿐이지 그게 겹친다고 운명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나 사랑이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불가항력의 운명인지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삶을 수 백 번 반복해도 같은 일이 생기고 같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지를 봐야 한다. 즉 우리는 어떤 일이나 사랑이 운명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단 한번만 지금의 ‘나’로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게다가 로라는 ‘우연의 연속이 인도한 운명적인 것 같은 사랑’과 그것이 주는 달콤한 감정에 빠진 것이지 산드로라는 사람 그 자체를 제대로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우연이 자꾸 겹치면 운명이라고 믿는 것을 뭐라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사랑하게 된 사람을 제대로 보고 그의 꿈과 불안을 함께하며 감정을 나누고 깊은 이해를 구축해가는 진짜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은 문제일 수 있다.
로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연의 연속을 운명으로 생각하라는 것도, 어떤 사랑이 우연인지, 운명인지 따지라는 것도 아니다. 내 곁에 다가온 한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면 그 사람을 제대로 보며 깊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현실주의자에게 찾아온 죽음
한편 프랑스 영화답게 또 다른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며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가게 된다. 산드로의 아버지 피에르는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는 자기 여자친구인 엘레노어의 어린 아이들에게도 인간은 죽으면 그냥 썩어 해골이 될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하드보일드 현실주의자이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타인과 감정을 나누는데 익숙하지 않은 폐쇄적인 비밀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도 자기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점쟁이에게서 자신이 죽을 날짜를 들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그 날짜를 헤어진 부인에게 물어본다. 이 후에는 그 날짜에 온 정신을 사로잡혀 괴로워하게 된다.
피에르는 미신을 믿은 적이 없는 자신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미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믿는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그 절대 진리가 자신을 비켜가지 않는다는 것을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새삼스럽고도 강렬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현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죽음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언젠가 아버지처럼 관 속에 아무것도 없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누워서 썩어 들어가다가 결국엔 해골만 달랑 남게 될 거라는 그 적나라한 죽음의 공포감에 짓눌리게 된다.

꿈 속 왕자님을 쫓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로라가 몽상 때문에 현실에서 소중한 것을 놓치는 캐릭터라면, 피에르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탓에 삶이나 인간관계, 사후세계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바가 없고 그 때문에 자기 혼자 괴로워하다 여자친구를 떠나 보내는 서로 반대되는 캐릭터이다. 결국 영화는 중용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혼자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고독과 죽음이 존재하는 현실에는 약간의, 그러나 지나치지 않은 몽상, 기대감, 믿음과 내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법이라고.
홀로 관속에서 썩어가는 죽음의 공포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려해온 피에르를 바꾸어 놓는다. 그는 점쟁이가 말한 죽을 날이 되자 아들을 찾아가 할아버지 유산을 받으라며 포옹을 하기도 하고, 헤어진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전화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또 여자친구의 아이들이 공연하는 극장에 찾아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람은 혼자서는 행복해지기도 생과 사의 갈림길 속에서 덮쳐오는 공포와 불안을 이겨내기도 힘들다. 우리는 피에르처럼 ‘난 괜찮아’라고 외치곤 하지만 소중한 누군가의 존재감과 애정의 위력을 과소평가하지는 말자. 죽을 날이 오기 전에 그 위력과 소중함을 인정하고 마음을 열어 애정을 나누어야 할 테니.

영화, 동화를 만나다
영화의 특이한 점은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각종 동화책이 모티브가 되어 여러 장면에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는 시작에서 끝까지 하나의 그림 동화를 펼쳐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장면이 넘어 갈 때는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그림에서 실제 화면으로 전환되는 식이다. 또 영화 곳곳에서 누구나 한번쯤 접했을 동화의 향연이 펼쳐지니 이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를 들어 로라와 산드로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산드로가 신발을 떨어뜨리는 것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상징하고, 산드로를 짝사랑하는 클레망스가 백조가 떠있는 호숫가를 바라보는 장면은 백조의 호수, 로라의 엄마가 로라의 젊음을 질투하며 사과를 내미는 장면은 백설공주, 로라가 맥심을 처음 만나는 장면은 빨간 두건 동화를 생각나게 한다. 영화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이야기는 복잡스레 얽혀있지만 동화를 모티브로 피어나는 이러한 장면들이 다행히도 영화를 좀 더 가볍고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한편 모든 동화가 아름답기만 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니다. 동화 속에는 인간의 질투, 욕망, 배신과 복수 등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감정들과 배드엔딩들도 많다. 꿈에서 본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했답니다’는 식의 아름다운 동화 속 해피엔딩을 기다리는 로라만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다른 인물들은 그런 운명적인 만남을 마냥 기다리지 않고,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내 곁에서 함께하면서 계속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애정을 주고 있었던 사람들에게서 결국 사랑을 발견한다.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나에게 둘도 없을,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할 운명 ‘같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닐까.

Under the rainbow
어딘가에 나에게 딱 맞는 멋진 백마탄 왕자님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서로 애정과 이해를 주고 받고 이것을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사랑이 탄생한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무지개 너머 어딘가)’에서의 멋진 일들을 꿈꾸지만 막상 그 곳에서 온갖 역경을 겪고 나니 사실 소중한 것은 모두 ‘Under the rainbow’, 무지개 아래 자신이 살던 곳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한 ‘Under the rainbow’는 <오즈의 마법사>에서의 교훈을 다시 상기하게 한다. 저 먼 동화의 나라 어딘가에 운명의 사랑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내 곁에 운명 같이 멋진 사랑의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