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한숨
Elephant sighs , 2012

<코끼리의 한숨>은 High Point University의 교수겸 극작가인 에드 심슨이 10년전에 썼던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저예산 인디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내용 면에서는 인생을 살아가는 누구나 겪는 상실과 아픔, 우정에 대해 다루고 있어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주 유명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업>, <엘프> 등 다양한 필모그라피로 유명한 에드워드 에스너가 등장인물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리오 역으로 중심을 잡아준다. 또한 어느 동네 어귀에서 하룻동안 일어난 일을 담고 있지만 인물들의 감정이나 갈등이 롤러코스터처럼 변하는 재미에 지루함 없이 어느새 몰입하며 보게 된다.
제목인 <코끼리의 한숨>은 등장인물들이 함께 모이게 된 이유를 알려준다. 영화 속에서 리오는 코끼리들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한숨 소리를 내고, 그 소리는 멀리 있는 다른 코끼리에게도 전해져 서로를 모이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즉 이 제목은 인간들도 서로의 아픔을 위안하면서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모임의 한가운데, 당혹스런 남자
새로 산 집 앞에서 무기력한 얼굴로 앉아 있는 주인공 조엘 빅스비.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새로 이 도시로 이사온 그는, 시내에 있는 사무실로 출퇴근 하는 변호사이다. 어느 날 사무실에 출근 한 뒤 근처 식당에 들러서 커피를 사다가, 우연히 리오라는 노인과 마주치게 된다. 이때 리오는 그에게 자신이 속한 친목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엘은 나중에 이들이 자주 모이는 곳인 커뮤니티 센터에 들르게 된다. 사업을 위해 인맥을 쌓을 겸 잠시 들르려고 했던 그의 예상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부인을 지고지순 돌보는 딩크와, 얼마 전 직업을 잃고 이혼까지 당한 닉, 목사를 그만두고 보험 세일즈 맨으로 직업을 바꾼 페리와 얽히면서 보기 좋게 깨지고 만다.
그들은 얼마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친구 월터를 그리워하면서 그와의 추억거리를 처음 보는 조엘에게 쏟아내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이야기를 꺼내며 조엘을 잡아둔다. 그런데 별 친구도 없고 모임에도 나가본 일이 없는 조엘은 이 모든 상황이 낯설고 의아하기만 하다.

조엘의 이 당혹감은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 되는데, 관객들도 도대체 이 모임이 어떤 목적이나 구심점을 토대로 형성된 것인지 알 길이 없고, 불과 몇 분전까지 생판 남이었던 조엘에게 마치 그들의 절친을 대하듯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냥 가만히 이야기를 들은 것 뿐인데 경청을 잘한다며 조엘을 좋은 친구라고 추켜 세우는 모임의 멤버들 때문이다.
여기서 끝나면 좋았겠지만, 딩크는 페리가 요새 힘들어 하니 도와주라며 조엘에게 보험을 권유하고, 페리는 조엘과 둘이 남게 되자 자신이 목사를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닉은 조엘이 변호를 맡고있는 Mr. 드럼이 나에게 돈을 뜯어 내려고 한다며 역정을 낸다. 얼마 후에 도착한 리오는 다같이 둘러앉아 카드를 치자고 하며 일어서려는 조엘을 또다시 잡으며 이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조엘이 더 깊이 그들과 연관되도록 만든다.

좋은 친구를 얻는 방법
이렇게 계속되는 이들의 뻔뻔스러움에 어느새 당혹감은 조금씩 사라지고, 조엘이 카드 놀이 테이블에 참여해서 자기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관객들도 이들에게 익숙해지게 된다. 닉 말고는 다들 꽤나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인데도 모임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조엘을 금새 친구처럼 대해주는 그들의 포용력에 놀라워하면서 말이다.
어렸을 때 누군가와 친구가 된 계기를 생각해보면 그냥 어느 날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갑작스레 가까워지곤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군가를 만날 때면 의심과 편견이 먼저 고개를 들고, 조건과 이해타산을 따지게 되니 아는 사람은 많더라도 새롭게 사귄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딩크, 페리, 닉은 별 이유도 없이 거의 무조건 적으로 조엘을 친구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무리에 끼워준다. 모두가 인생에 어려움과 고민을 지니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공통점만으로 말이다.
사실 아는 사람들 만으로 채우기엔 만만치 않은 것이 인생이다. 목적도 조건도 없이 모여서 그저 인생이란 힘겨운 여정을 함께 이겨낼 아는 사람이상의 누군가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편견과 조건을 내려놓고, 자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안심하고 드러내며, 상대방이 힘들어 할 때는 설교가 아닌 위로와 공감을 잊지 않고, 때로는 싸우지만 그래도 훌훌 털고 다시 화해할 수 있는 친구가. 리오 패거리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친구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려준다. 또 이런 좋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들처럼 열린 마음으로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다가가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연약한 서로를 위한 버팀목
한편 카드놀이를 하다가 뛰쳐나간 닉은 자신을 고소한 드럼산업에 돌멩이를 던지며 절망한다. 이 모습을 본 리오는 조엘이 변호사니까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데, 이 때문에 조엘이 닉을 고소한 드럼산업의 변호사라는 게 드러나고, 덕분에 닉은 조엘을 죽일 듯이 쫓아간다. 닉은 조엘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지만, 그가 위협에 과민반응한다는 걸 알고 위협을 계속하여 조엘 스스로 자신을 다치게 만든다. 닉은 실컷 조엘을 괴롭힌 뒤 자리를 떠나고, 리오는 닉과 친했던 페리에게 닉을 도와주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페리는 다들 문제를 안고 살아가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페리가 이야기하듯,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제와 불안, 아픔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 벅차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타인을 돕기에 자신은 너무 약하며 무기력하고 남의 문제를 도울 시간이 있으면 내 문제나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안고도 남을 도와줄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나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어려움으로 서로 공감하면서 각자의 아픔을 덜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아주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도움을 주어야만 아픔이 덜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곁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그러니 내가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거나 내 문제를 해결하기도 바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아파하는 누군가의 곁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혼자서 꿋꿋이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 한 건 아니지만, 우리 모두 연약한 사람들인 만큼 사람 인(人) 한자의 모양처럼 서로 버팀목이 되어 기대면서 살아간다면 폭풍우 같던 인생도 금새 순풍으로 바뀔 것이다. 월터의 무덤에서 닉은 이혼 후 아내가 가족사진에서 자신을 지워버렸다며 슬퍼한다. 조엘은 자신을 다치게한 닉에게 다가가 변호사답게, 가족사진은 공동재산이므로 이것을 변형시키기 전의 원본을 받을 수 있다며 위로한다. 그만의 위로법에 닉도 수긍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연약한 서로에게 전하는 공감과 위로는 이렇게 원수같던 사이도 변화시키며 서로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코끼리의 한숨
이 모든 소동 뒤에 조엘은 모임을 그냥 떠나버리려고 하는데 그전에 리오에게 왜 나를 모임에 초대했냐고 묻는다. 리오는 이야기꾼답게 얼마전 봤다는 코끼리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코끼리들은 외롭거나 마음이 아플 때 인간들에게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한숨을 쉬는데, 다른 코끼리들은 몇 백 킬로미터 밖에서도 이 소리를 알아듣고 모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리오는 조엘을 초대한 적은 없고, 그냥 월터랑 친구들 이야기를 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즉 월터를 잃고 아파하는 리오의 들리지 않는 한숨에 조엘이 반응해서 모임에 오게 되었거나, 리오가 어딘지 괴로워 보이는 조엘의 한숨을 느끼고 친구들 이야기를 해서 조엘이 어쩌다 모임에 오게 된 셈이다. 어느 쪽이건 조엘이나 리오는 삶이 주는 아픔이란 공통 분모에 반응해 함께 서로를 달래기 위해 모이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단체활동은 맞지 않는다며 떠나려던 조엘은, 결국 다시 돌아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어렸을 때 말 더듬는 행동 때문에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서 지금도 위협을 느끼면 과민반응을 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모든걸 버리고 떠나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자기 안에 있었던 고독과 괴로움을 털어 놓는다. 닉, 리오, 딩크, 페리는 가만히 듣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면서 조엘을 다독거려주게 된다.

끊임없이 이 모임과 구성원들에 대해 의아해하고, 불신하고, 거부하던 조엘도, 드디어 이 모임이 판단이나 편견 없이 그저 서로 옆에 있어주면서 지지대가 되어주는 것이며, 인생에는 이런 친구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이 먼저 다가와준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내보이고, 그들의 문제에 공감하고 나름대로 위로를 전하려고 노력하면서 이제는 그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영화는 평범한 어느 소도시의 하루를 담고 있지만, 이렇게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상실의 아픔이 조금씩 치유되고 갈등이 화해로 나아가며, 닫혀있던 주인공의 마음의 물꼬가 트이는 과정이 들어있는 등 감정의 진폭이 커 지루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던지는 대사는 우리 모두가 살면서 겪는 상실감과 무기력함, 아픔과 불안을 떠올리게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다. 또 이런 어려움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물론 마음을 닫고 홀로 괴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감정을 털어놓거나 상대방의 고뇌를 들어주면서 위안받을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덜 불행하며 마음속 상처도 더욱 빨리 낫곤 한다. 코끼리의 한숨이 수 백 km 밖에서도 들리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고통과 기쁨을 나누어야 삶에 불행은 덜어내고 행복을 더해갈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인생의 어려움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반복되기에, 이렇게 누군가와 서로 기대며 아픔을 치유할 수 있어야 삶이란 여정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살다가 누군가의 한숨 소리를 듣는다면, 다가가서 그 소리에 귀 기울여주면 어떨까. 그것은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인생을 함께 헤쳐나갈 소중한 친구를 선물해줄 것이다.
 |
|
 |
우정에 대해 다룬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
연극각본을 토대로 한 탄탄한 짜임새있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
외로움과 상처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 |
|
|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