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 트로이
이 영화는 꽤 유명한 원작이 있다. 원작 제목도 영화 제목과 같다. ‘뚱보가 세상을 지배한다’다. ‘k.L고잉’ 이라는 마치 비행기 네임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작가가 쓴 청소년 소설이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항공사에서도 일을 한 경력이 있다.) 완득이 이후로 청소년 소설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는데, 그 흐름을 타서 한국에서 출간이 된 책이기도 하다.
미국 도서협회에서 선정한 꽤 알려진 작품이며 여전히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는 도서다. 여튼 나는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것을 보니,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측은 든다. 원작 이야기를 한 것은 그만큼 이야기의 구성이 탄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볍게 만들어진 성장 영화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의도적 구성은 생각보다 탄탄하다. 앞서 이야기한 제목과 결부를 시킨다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후로는 조금 디테일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들은 참고해 주세요.)
첫 장면은 매우 파격적이다. 버스 정류장에 있던 뚱보 트로이가 갑자기 느닷없이 도로로 뛰어들어 달려오는 버스에 쾅, 부딪친다. 그리고 매우 비현실적으로 핏물이 사방에 튀긴다. 마치 토마토 축제의 일부를 연상시키는 장면인데, 이런 장면들에서 감독의 독특한 개성이 느껴진다. 물론 그것이 좋다, 나쁘다는 호불호가 갈릴 것이겠지만.
하여간 이 장면은 현실이 아닌 트로이의 내면이다. 이 후로도 트로이의 내면은 꾸준히 등장한다. 모든 여자를 성적으로만 생각하는 음흉한 상상들과 자신의 몸을 함부로 해하고 싶은 끔찍한 장면들이 화면에 펼쳐진다. 물론 그것들은 그저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 첫 장면이 꽤 흥미롭다. 그 상상은 곧 실천으로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겨우 용기를 낸 ‘첫 자살 실천’이 마커스라는 퇴학당한 양아치 녀석 때문에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가장 의미 있다. 마지막 장면과 정확하게 대비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목을 통한 작가의 의도를 말해주기 위한 복선이기 때문이다. 또 마커스의 행동은 트로이가 원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영화 말미에는 이 상황이 완전 반대가 된다. 마약에 찌든 마커스를 트로이가 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마커스가 원한 게 아니었다. 그저 마커스 자신이 트로이를 구했듯 트로이가 역으로 마커스를 구하게 되는 것이다.
의미적으로 다가간다면 그건 ‘구원’이다. 무슨 말이냐면, 마커스는 어떻게 보면 트로이가 갈망하고 있는 내면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내면의 거울을 결국 자신 스스로가 구한 것이다. 타인을 구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건 결국 스스로의 구원인 것이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완전히 대비되는 마커스라는 인물의 심리와 트로이의 심리를 자꾸 비쳐주면서 진행된다.
억압을 표출하는 자유로운 영혼 마커스와 아버지에게 통제 당하는 트로이(영화에서 아버지는 트로이가 ‘엄마를 잃은 슬픔’ 때문에 힘든 것이라고 나오지만, 그건 아비의 오해 같다. 트로이가 살찐 건 가정의 불행이나 자신의 환경이 아닌 스스로의 문제라는 것을 감독은 이야기 하고 있는 듯싶다. 아빠가 ‘엄마’ 이야기를 꺼낼 때, 별 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는 트로이를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는 결국 스스로 봉합하고, 그 과정에서 그 방법을 나름대로 찾는다. 이게 영화의 핵심이며 제목 ‘뚱보가 세상을 지배한다’의 의도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힐링’이나 ‘성장’영화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꽤 좋은 연출과 화법으로써 그 이상을 이야기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도구나 소품(이 영화에선 ‘록’음악)으로 청소년기의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가벼운 이야기 전개는 아니라고 본다.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성장은 결국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뚱보가 아닐지라도 누구에게나 같은 아픔은 존재한다, 결국 그것을 이겨내느냐 못 이겨내느냐는 ‘내면이 어떤 것을 지배하는 가에 따른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을 확인시켜 주듯, 영화에서도 이런 대사가 두 번이나 나오지 않는가. “네가 원하면 있어!” ‘월 플라워’ 이후로 가장 의미 있고 생생하게 본 청소년기를 다룬 좋은 영화였다.
구성의 방식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트로이의 심리변화를 따라간다. 그가 겪는 학교생활을 비롯해 집안 환경, 트로이의 과거 등을 토대로 이야기가 현재형으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영화에서 트로이만큼 중요한 마커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트로이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마커스의 삶에 트로이가 조금씩 침투하면서 둘의 삶이 대조적으로 비춰진다. 그러다 어느 정도 갔을 때, 이 두 삶의 곡선이 차차 겹쳐진다. 그리고 트로이의 내면이 점점 기복을 타게 되고, 누군가의 삶처럼 그에게도 뚱보가 아닌 평범한 삶을 살 결심을 하게 되는 사건이 펼쳐지게 된다.
이 영화의 한 컷
트로이가 분노하며 자신의 자작 제목인 ‘분노한 뚱보’라는 곡의 드럼 리프를 연주하기 시작할 때. 내면을 시원하게 드러내는 ‘록’이라는 음악 장르와 그의 현실이 잘 맞물려, 공감대가 형성되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