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그리고 나의 커밍아웃
Les garcons et Guillaume, a table! , Me, Myself and Mum , 2013

영화의 제목인 <엄마와 나 그리고 나의 커밍아웃>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엄마의 사랑에 목마른 여성스러운 소년 기욤과 그 엄마의 관계, 그리고 그의 반전 있는 커밍아웃을 다룬다. 기욤 갈리엔은 자전적 성격의 이 영화에서 주연, 각본, 감독을 맡고 있으며 자기자신과 엄마역, 상상 속의 대공비 등 1인 다역을 완벽하게 연기 해냈다.
2008년 기욤 갈리엔이 프랑스에서 선보여 흥행한 1인 연극을 토대로 하는 이 영화는 연극 무대에서 기욤이 자신의 이야기를 독백하거나 회상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실제 연극배우이자 코미디언으로서의 커리어 때문인지 그의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표현과 뻔뻔스럽고 민망하지만 결코 오버하지는 않은 유쾌한 유머들이 영화 내내 큰 재미를 주기도 한다. 부모로부터의 애정 결핍과 기대감이 자녀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익살스럽게 풀어낸 작품으로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프랑스의 아카데미라고 불리는 세자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작품상 등 4개 부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사랑 받고 싶었던 소년, 소녀가 되다
부유하며 억압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기욤은, 딸을 원했던 엄마의 사랑을 받고자 그녀의 목소리, 말투, 몸짓을 따라 하며 마치 진짜 여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집안에 자녀가 단 하나 뿐이라면 몰라도 형제자매들이 줄줄이 딸려있는 집이라면 그 형제자매들은 알게 모르게 부모의 애정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에 몸담게 되고, 주인공 기욤도 (방법은 다소 기이하지만)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영화의 프랑스 원제는 기욤의 엄마가 영화 속에서 밥 먹으라며 자식들을 부를 때 하던 대사인 “남자들이랑 기욤, 밥먹어!”이다. 이는 기욤의 엄마가 남성적인 나머지 아들들과 기욤을 구분지어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이 동경하는 엄마에게 차별적인 사랑을 받고 싶었던 기욤의 노력을 알려준다. 기욤은 자신이 여자 같으면 같을수록 엄마를 기쁘게 하고 형제들보다 더 사랑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스페인으로 떠난 여행에서 여자가 추는 춤을 추다가 비웃음을 당해도 “엄마가 좋아할 거야”라며 기뻐한다. 또 할머니나 아빠의 등 뒤에서 엄마를 흉내 내어 말한 뒤에 그들이 자신을 엄마라고 착각하면 기분 좋아하기도 한다.

엄마의 사랑을 얻기 위한 이런 각종 노력은 다행히(?) 결실을 맺어 기욤 스스로는 자신을 ‘여자’라고 인식하고, 대다수의 가족들은 그를 ‘호모섹슈얼’이라 생각한다. 기욤의 아버지는 어떻게든 그를 바꿔보려고 기욤을 기숙사제 남학교에 보내지만, 따돌림에 적응 하지 못하고 영국의 남녀 공학 학교로 다시 전학가게 된다.
자신을 호모라며 손가락질 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영국의 학교 분위기 속에서 그는 ‘제레미’라는 한 남자아이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런데 이성애자인 제레미가 다른 여자아이와 진한 스킨십을 하는 것을 보고는 실연을 당한 여자아이처럼 실의에 빠지고 만다.

이 모습을 본 엄마는 괜찮다며 위로를 하다가 기욤이 남자를 좋아하는 호모섹슈얼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에 기욤은 충격을 받는다. 사실 기욤은 엄마에게 사랑 받으려는 노력이 지나친 나머지 자신의 속 알맹이가 여성이라고 인식해왔고, 자신은 남자가 아니므로 남자를 좋아해도 동성애자는 아니다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단정적인 말에 ‘자신이 여자가 아니라면 남자이고, 그럼 나는 남자로서 남자를 좋아하는 건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각종 모험을 하게 된다.

기욤의 경우처럼 부모란 자식에게 다른 어떤 존재보다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곤 한다. 특히 감정표현이 적은 무뚝뚝한 부모 밑에서 사랑 받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 없이 자라왔다면, 사랑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경우 그것에 더욱 절박하게 매달리게 된다. 기욤이 딸을 원했던 엄마의 소망을 이뤄주며 사랑받고자 자기의 정체성까지 바꾼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서까지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자식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애초에 자식을 그 자신으로서 사랑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정짓지 말자
가족들 중 누군가가 기욤에게 다가가 여성적인 그의 행동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여자아이가 되지 않아도 사랑 받을 수 있다고 따스한 말 한마디 건냈더라면 상황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가족은 양방향의 대화를 좀처럼 나누지 않는다. 아빠는 기욤을 못마땅해 하며 어떻게든 사내답게 바꾸려고 하고, 엄마나 할머니는 기욤이 무슨 얘기를 해도 듣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그가 어째서 여성스럽게 행동하는지 그 본질적인 이유를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기욤은 동경하는 엄마와 닮고 싶거나 사랑하는 엄마가 원했던 딸이 되어주고 싶어서, 또는 형제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차별화하기 위해, 또는 심미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탐구심 때문에 여자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기욤은 남자애인데 여자같이 굴면서 남자를 좋아하니 ‘호모섹슈얼’이라고 단정짓고는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는다.
눈 앞에 있는 사람 그 자체를 깊이 이해해 보려는 노력 없이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표면적인 판단만이 옳다고 생각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그 사람에게 자신의 판단을 따르게끔 강요하게 된다. 가족들의 ‘넌 호모섹슈얼이야’라는 말에 기욤이 ‘아 나는 남자면서 남자를 좋아하는 호모구나’라고 생각하고 한참을 방황하는 것처럼. 영화는 가족 사이건 사랑하는 연인 사이건 간에 때로는 그 사람에 대한 내 머릿속의 관념이나 판단, 기대감을 지우고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부모도 인간이다
기욤은 엄마에게 버림받거나 엄마를 실망시킬 것을 두려워해왔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말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한다. 이렇게 말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는 과정을 통해서 기욤은 엄마의 기대를 실망 시키는 두려움을 넘어서고,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서 사랑 받고자 한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엄마를 만나 ‘나는 이성애자다’라는 반전 있는 커밍아웃을 하는 장면에서, 기욤은 엄마 또한 기욤이 다른 여자를 사랑할까 두려워 아들이 호모섹슈얼이라는 것에 안심하고 그런 기대를 밀어 붙였다는 점을 깨닫는다. 동경하던 멋진 엄마도 그저 아들의 사랑이 떠나갈까 두려워하는 한 명의 여자일 뿐이다. 부모에게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부모의 기대감에 자기 정체성까지 바꾸면서 살아온 것에 대한 원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기욤과 그 엄마가 보여주듯 부모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완벽한 인간이 아니고 약점과 두려움을 가진 평범한 인간임을 이해한다면 화해로 나아가는 길이 보이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그의 1인 연극은 막을 내리고, 어둠 속 관객들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한다. 거기에는 기욤 엄마의 얼굴도 드러나는데, 그녀의 얼굴은 영화 내내 보았던 ‘기욤 갈리엔’이 여자로 분장한 얼굴이 아닌 다른 배우의 얼굴이다. 이것은 기욤이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엄마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을 겪으며,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 하려던 과거를 버리고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찾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영화 속에서 엄마에게 사랑 받고자 남성을 좋아하는 이성애자 여성이 되었다가, 엄마의 ‘넌 호모섹슈얼이다’라는 말 때문에 자신을 남성을 좋아하는 동성애자 남성이라고 여겼다가, 자기 안의 두려움을 극복한 뒤에야 마침내 자신이 여성을 좋아하는 이성애자 남성임을 제대로 알게 된다.
이제 그는 “여자애들이랑 기욤, 밥먹어!”라는 말이 너무나 좋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서 인정받고 이해 받고 사랑 받는 기쁨을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자전적이어서 더 놀라운 이 영화의 스토리는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지도, 부모나 주변의 기대나 판단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지도 말자고 말한다. 그리고 사랑 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은 누구나 갖고 있으나 종국에는 서로 이해 받고 사랑 받는 관계 속에 있게 될 테니, 그 두려움을 떨쳐내고 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연극 무대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영화의 구성 덕분에 이런 교훈은 마음에 더 와닿는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주변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원해서든 아니든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지만, 어떤 배역을 연기할때 보다도 그저 자기자신이 될 때 가장 자유롭고 여유롭고 충만한 기분으로 무대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