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 천하의 시작
英雄, Hero, 2002
거대한 대륙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통일을 위해서 고단한 전쟁과 끝없는 살육이 펼쳐지던 시대이다. 7명의 왕이 각각 자기만의 기세로 중국 대륙을 통일하기 위해서 대군을 이끌고 좌로 우로 중국 대륙을 난세로 몰던 시대. 그 중에서 진나라의 영정 왕은 자신의 왕궁에 적군이 들어오지 못하게 외부 금지령을 내고 자신을 해하려는 무림의 세 자객을 잡으려 현상금을 내걸고 수십만 대군을 응집시킨다.
거대한 땅을 가진 중국의 기개가 엿보이는 커다란 궁궐. 자객이 들어온다면 말 그대로 뼈도 추리지 못하게 살육당할 것이 뻔한 군사을 운영하며 영정은 통일이라는 욕망을 실현하고자 차근차근 준비를 하는데 한 지방의 장수(이연걸)의 알현을 받고서 점차 자신에게 가깝게 오라는 지시를 내린다.
어떻게 적수들을 처단했는지 이야기를 해주는 무명의 이야기에 이끌려 100보씩 앞으로 전진하게 하여 점차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 영화의 배경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무명의 이야기는 점차 흥미진진해지고 그것이 자신에게 향하는 칼날이라는 것을 영정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호기롭게 얼굴을 마주할 정도로 가깝게 다가와 이야기를 진척시킨 무명과 영정의 관계에는 수많은 화살과 칼과 백성들의 목숨이 흩어지고 모아지고 다시 피를 흘리게 된다. 과연 무명은 영정을 죽일 수 있을 것인가. 홀연 궁궐에 들어와 점차 왕의 심장까지 파고드는 무명의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주인공이 이연걸이기 때문에 그가 죽지는 않을 거이라는 기대를 했던 관객은 마지막 장면인 수십만발의 화살이 일시에 하늘로 쏟아 올랐다가 오직 1인을 향해서 몰아쳐 들어오는 장면에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화살들이 화면 가깝게 다가올 때 이 무예 대가 무명이 어떻게 피할지, 혹은 어떤 무술로 화살들을 또 막아낼지 내심 기대했을 것이다.
영화 중반에 우박처럼 쏟아지는 화살비를 오직 한 칼로 막아내는 무예를 보아왔던 터라 이 정도의 방어는 당연히 해낼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대로 온몸으로 받아내고 마치 화살 옷처럼 촘촘하게 화살이 온몸에 박혀진 모습은 충격이었고 꽤나 깊은 침묵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왜 영웅 무명은 영정을 죽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쯤에서 영화의 제목 <영웅>은 그럼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역사적 의문과 고민까지 이 영화는 쉽지 않은 질문을 들이민다. 한편의 역사 액션 영화로서도 손색없지만 역사적 사실에 허구성을 더해서 상상을 버무린 영화의 스토리는 진정한 영웅의 탄생과 영웅을 생각하는 후세의 개념, 영웅에 대한 역사의 자세에 대해서 영화 개봉 10년간 많은 이야기와 평론과 스토리 분석을 하게 했던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궁금한 사항은 바로 이것. 대체 왜, 영정 왕을 죽이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면 거의 결론이 맺어졌는데, 무명의 의도는 이미 이루어졌으니 통일을 이루도록 놔두는 것이 바로 올바른 자세라는 것. 즉, 무명이 해야했던 일은 영정을 마주하면서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 <역린>에서 정조를 죽이려고 들어온 상택은 결국 정조를 지키는 것으로 변절아닌 변절을 했고 정조는 그런 상택의 이야기를 다 듣지도 않은 상태에서 왜 마음을 바꿨는지(왜 자신을 죽이는 일을 버리고 지키는 입장으로 돌아섰는지) 묻는다. 이 때 뺨을 타고 주르륵 흐르는 상택의 눈물은 정조가 자신이 충심을 알아준 것에 대한 벅찬 감정이자 할 일을 다했다는 결말에 대한 인정일 것이다. 죽어도 지키고자 했던 보은은 그렇게 결의를 배반하고 자신에 대해서 포기할 줄 알게 하는 힘이 있다.
무명은 그렇게 자신의 임무에 대해서,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해서 그 시작과 끝을 명쾌하게 꿰뚫었기에 쏟아지는 화살비를 피하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영화속 이연걸과 견자단의 대결에서 서로 눈을 감고 허상의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영웅>의 백미이자 이연걸과 견자단의 합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눈여겨볼만한 대결씬이다.
이연걸의 짧은 칼과 견자단의 긴 창이 떨어지는 장대비 속에서 일합을 겨눌 때 들리는 눈먼 할아버지의 현악기 소리는 액션의 타격감과 둔탁한 마찰음을 더욱 크고 리드미컬하게 들리게 하는 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빗물은 멈춰져 있고 인물만 살아 움직이는 정지동작 모션은 이 영화 이후로 많은 영화와 CF에서 따라한 기법이다. 액션 영화에서 액션의 한 장면 장면이 마치 고급 뮤직비디오처럼, 아니면 모션 캡춰처럼 사진이 재생되듯이 임팩트하게 보여지는 것은 이 영화가 최초일 것이다.
이런 기술과 화면이 10년 전에 나왔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영웅> 이후 10년간 영화 기술이 마치 발전이 하나도 안되었던 듯 멈춰진 것처럼 보여지는 착시 현상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은 날로 발전하여 세밀한 화면의 질감과 눈부신 색감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땀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수공예 영화의 힘은 바로 배우들의 위험한 액션과 스토리에 녹아드는 열연일 것이다.
요즘 가요를 듣다보면 90년대와 00년대의 서정과 감성을 못 따라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 점차 그림과 같은 색상의 화면은 날 것 그대로의 영화가 아니라 조리된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영웅>의 쏟아지는 화살들이 그런 의구심을 일순 날려주는 기폭제로 다시한번 재개봉 되어 볼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이연걸과 견자단이 현대극에서라도 다시한번 대결을 펼치는 영화가 나온다면 더 행복할 것 같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따라서 고화질 버전으로 일단 소장해두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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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협 액션 매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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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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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영상미와 미장센의 대가로 알려진 장예모 감독은 <영웅: 천하의 시작>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한층 업그레이드한다. 영정과 무명이 주고받는 이야기로 진행되는 액자 구조의 스토리텔링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인물들의 심리와 이야기의 주제에 따라 달라지는 청·적·녹·백·흑의 강렬하고 황홀한 색채의 향연은 보는 이를 압도할 만하다. 빗발치듯 화살을 쏘는 장면 등과 같은 대규모 액션 신은 여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규모와 웅장함을 자랑한다. 또 물 한 방울, 나뭇잎 한 장의 움직임까지 세심하게 표현한 연출과 더불어 배경 음악의 조화로움은 기대 이상이다. 스토리, 영상, 음악이라는 3박자를 훌륭하게 결합하여 영화적 완성도를 높이고, 대의를 위해 자신의 사사로운 복수를 포기하고 목숨까지 바치는 무명의 모습을 통해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렇듯 많은 장점을 가졌음에도 이 모든 장점을 희석시키는 결정적인 티끌은 감독이 너무 직설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함에 있다. 이것이 영정의 대사를 들으며 실소를 금치 못하는 이유다.
2014년 3월 14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 eyoung@movis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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