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桐島、部活やめるってよ, The Kirishima Thing, 2013
일본의 어느 고등학교 금요일 오후, 배구부 동아리의 에이스인 키리시마가 그만두었다는 소문이 학교 내에 퍼진다. 한갓 동아리 활동을 그만 둔 것이 무어 큰 일일까만, 키리시마는 교내 최고 미녀로 인정받는 리사의 남자친구로서 학내의 유명인이기에 그런 소문은 자체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진다.
이후 영화는 키리시마가 없는 학교의 풍경을 보여주며 그 한 학생이 없어진 것이 얼마나 위력적인 일인지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키리시마는 학교에서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계급제도의 맨 위 계급에 속하여 모든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를 중심으로 학교 생활의 구도가 정해졌던 것.
키리시마를 대신한 코이즈미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 하지만 키리시마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 가령 도시락을 먹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전차를 갈아타는 것 등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일본 영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일상의 관찰은 지루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 보통 이럴 때 키리시마는 그럼 왜, 어디로 사라졌는가,를 추적하는 것이 당연한 스토리가 아닌가.
하지만 영화는 키리시마를 내버려두고, 아니 찾을 생각을 안하고 그 주변의 학생들로 시선을 돌려 마치 잃어버렸던 배역을 찾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들의 감정선으로 들어가 키리시마를 뒤로한다.

키리시마는 어디에 있는가.
사실 영화는 키리시마가 왜, 어디로 갔는지 모를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부터 키리시마가 없어진 그 자리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비중심의 인물들로 채워넣는다. 그 인물들의 시점과 이야기가 바로 키리시마에 대한 이야기이자 키리시마를 보여주는 방법이기에 키리시마는 내내 영화 속에서 나오지 않아도 관객은 마치 키리시마가 교내 어디에선가 가깝게 있을 것이라는 착각마저 하게 한다.
키리시마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야구부의 키쿠치 히로키는 잘 나가는 키리시마를 보면서 스스로 위축되는 생활을 해왔지만 친구의 부재로 인해서 다른 측면의 분위기를 알게 된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단지 즐겁다는 이유만으로 열심히 영화를 만드는 료야의 경우 키쿠치 히로키에게는 절친 키리시마보다 더 큰 영향을 주게 되는 경우이다.
그런 히로키를 짝사랑하는 여학생 사와지마 아야. 친구 키리시마가 사라져서 심란해하는 히로키를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동아리 활동에 매진한다. 그리고 키리시마의 여자친구이자 배드민턴부의 히가시하라 카스미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여느때와 같이 지내며 흔들리지 않는다.
여기까지의 영화 상황에서보면 일본 학원물의 특성이었던 달달한 이야기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일본 학원 영화를 보면 뽀얀 화면 속에서 잘 생긴 남녀 주인공 학생들이 화사한 미소로 강둑을 같이 걷거나 꽃밭을 지나는 등의 모습으로 일상의 환상을 보여주거나 폭력과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리얼리티 학원 영화로 양분되는데 이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양편의 어느 선에도 발을 들여놓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리시마의 여자친구인 카스미를 좋아하는 영화부의 마에다 료야를 살펴보면 이제야 영화의 중심에 들어서게 됨을 알 수 있다. 즉, 20대의 사회인으로 들어서기 전, 10대 후반의 인생길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밀고 나가는 축과, 인생의 무료함을 느끼는 축의 간극을 료야를 통해 완성하는 부분이 바로 이 영화의 큰 축이다.
친구와 함께 만든 영화가 특별상도 받았고 열심히 즐겁게 하는 동아리 활동이지만 료야의 교내 위치는 계급으로 치자면 키리시마의 급이 아니다. 무시당하고 놀림도 당하면서 묵묵하게 좀비 영화를 찍는다. 좀비는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존재이니 학생들의 정서도 아니고 사회인의 위치도 아닌 어정쩡한 10대 후반의 인생을 말해주는 듯 하다.
료야가 영화를 만들고 열심히 땀흘리며 매진하는 이유는 그저 영화가 좋기 때문. 그저 이유없이 영화가 좋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이 다이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타인에게 있거나 선망의 대상을 쫓는 위치에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렇게 선망의 대상이자 학교 생활의 중심축이었던 키리시마가 없어지고 나자 모든 인생의 축이 허물어진 듯 갈팡질팡하는 학생들을 보라. 행복이 내면에 있지않고 밖에 두었던 인생들에게 차라리 비웃음을 당하고 인정받지 못할지언정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료하가 더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지 않는가. 결국 료야의 좀비영화는 결국 현실처럼 옥상에서 치고 박는 싸움으로 현실화되는 것으로 볼 때 10대 후반의 청춘들에게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울려퍼진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지나서 <여고괴담>까지 이어지는 한국 학원물은 현실에서 공포영화로 변모해왔다. 2014년 올해 여름에도 이어진 <분신사바>는 현실보다는 공포로 이어지고 여고생은 주문을 외우거나 귀신을 깨우는 어두운 생활로 접어들고 있다.
일본 학원 영화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달콤쌉쌀한 연애담이나 이지매와 학원폭력물이 다가 아니라는 듯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새로운 학원 이야기를 말하고자 함이 분명하다. 영화의 원작 소설가가 19살에 썼다는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스바루 신인상을 수상했고 나오키상까지 받게 되지만 작가는 전업작가로 생계를 꾸리지 않고 있다. 회사원으로서 평범하지 않은 작품을 써내는 작가 아사이 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고 있으니, 그가 십대 후반에 쓴 이 소설은 작가 본인의 삶과도 매칭이 되고 있다.
이 영화를 재밌게 보았다면 아사이 료의 장편소설 <누구>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학교를 떠나 취업을 위해 활동하는 졸업생들의 본격 사회 이야기를 재밌게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
|
 |
일본 청춘 영화 매니아 |
|
|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