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패신저
Last Passenger, 2013
얼마 전 필자는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 정동진행 밤기차에 몸을 실은 적이 있다. 주말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기차에는 승객이 별로 없었고……. 피곤함에 지쳐 잠시 잠에 빠졌다가 문득 부질없는 생각에 공포감을 느낀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부터 괜한 기대공포를 불러일으킨 하나의 생각! ‘혹시 이 기차가 멈추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생각이다! 실제 잠시 몸이 긴장할 정도로 바람 같은 공포감이 스쳐갔고 바로 오늘 소개할 이 영국 영화에서 그 사건이 일어난다.
이미 한국 관객에겐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매력적인 촌철 미소의 ‘이안’역으로 얼굴이 알려진 중년의 영국 배우 ‘더그레이 스캇’이 루이스라는 의사로 철없고 산만한 아들래미를 데리고 늦은 밤 영국에서 출발하여 그가 일하는 병원이 있는 타운으로 향하는 야간 기차(통근 기차)에 오른다. 늘 그렇듯이 스릴러를 표방한 액션영화에 단골 소재인 묘령의 여인이 나타나는 법,
2%부족하지만 매력적인 미소의 여인 일레인(카라 토인튼)을 만나게 된다.(그녀는 영국 드라마에서 미모로 유명한 헤나 토인튼과 자매다.) 영화 초반부는 아내를 잃은 남자와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남친과 헤어진 여인의 묘한 기류가 관객의 시선을 자극하고 그들이 서로에게 내지르는 대사에 약간의 닭살이 피어오른다.
영화는 이런 두 남녀의 앵글에 색깔이 다른 긴장관계를 끼워 넣는다. 비서 없이 기차에서 업무에 시달리는 강박관념의 사내 피터(데이빗 쇼필드)와 엘리트였지만 폴란드를 떠나 멀리 영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불만투성이의 사내 얀(이도 골드버그)의 대립이다. 그들의 대립은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에피소드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테러범이 나올 때까지 혹시 이 둘 중의 하나가 범인? 하는 묘한 미스터리와 반전의 복선을 까는 역할을 한다.
실제 열차가 지정된 역에 멈추지 않고, 사건의 주인공인 테러범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단지 목소리가 남겨진 그들에게 묻는다. ‘남은 승객은 몇 명이냐고?’ 남은 승객은 6명, 서양에서의 6이란 숫자의 의미가 다가오는 시점이다! <6>은 ‘불안정, 상실, 공백, 그리고 불운’의 숫자이다. 그리고 다음 설명에서 <6명>이 지닌 성격을 파악한다면 조금은 이 어설픈 감독의 의도가 드러난다.
루이스 : 아내를 잃고 철없는 아들을 데리고 조금은 버거운 일과 전쟁처럼 사는 의사며 늘 일과 아들 사이에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일레인 : 런던에서 친구들과 위로 파트를 하고 돌아가는 길인만큼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여인이다.
얀 : 엔지니어링을 전공할 만큼 뛰어난 수재였지만 먹고살기 위해 런던으로 와서 지하철 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꿈을 잃은 청년이다.
피터 : 업무의 조력자가 사라져서 이동 중인 기차에서도 일에 파묻힌 전형적인 사업가이다. 그런데 그는 아들과의 불신과 단절관계에 있다. 그래서 그가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얀에게 그의 아들의 이미지를 투사하고 있다.
할머니 : [위크엔드 인 파리]의 린제이 던컨이 조연한 이 할머니는 왠지 소외와 단절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지만 자상한 할머니로 나온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아들 : 모성애를 상실하여 주위가 온통 산만하다. 매력적인 부친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나름대로 비중 있는 역할인데 그렇게 애가 없었나? 할 정도의 캐스팅의 실수인 듯하다.
하여간 상실과 소외의 군상들이 남겨진 이 야간열차는 결코 멈추지 않고 죽음의 길로 질주한다. 그들이 결국 어떤 결론에 종착하는 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다소 지루한 전개였지만 나름대로 감독은 스릴러 액션물의 전형적인 구성 속에서 승객들의 사투를 엮어간다. 제한된 공간이지만 영화는 질주하는 죽음의 기차 안에서의 승객들이 어떻게 예정된 죽음을 앞두고 자신과 주변을 추스르는지를 보여준다. 이미 기차를 소재로 한 액션물과 같은 소재를 다른 수많은 수작의 영화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에는 이 영화로만 알려진 <오미드 누신>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실제로 그의 첫 장편영화로 판단되는 이 영화는 2013년 영국 독립(저예산)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미 볼거리와 CG의 화려함에 압도되어 버린 우리의 시
선이 이런 저예산 영화를 폄하하는 경향으로 볼 때, 그리고 앞에서 서술한 감독의 의도로서 본다면 주제가 부각되는 탁월한 점이 이 영화의 평가에 도움이 된 모양이다.
뭐 볼만한 영화 없나? 할 때, 쇼파옆에 양파링이나 프링클스 끼고 가볍게 볼만한 영화로서 추천하며, 배우들의 연기와 나름대로 영화가 주는 시사점을 찾아간다면 항간에 떠도는 인터넷 평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