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もらとりあむタマ子, Tamako in Moratorium, 2013
모라토리움[Moratorium] : 국가 부도, 지불 유예.
사카이 다마코는 도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혼자 사는 아버지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물론 고향으로 오기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옹색한 생활을 하다가 오게 된다. 정식 회사에 입사하지 못하고 대학 졸업자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설정 자체에 다마코의 인생을 재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후의 일에 대한 배경이 설명된다.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직업을 구해서 사회 생활을 해야할텐데 다마코는 고향에 돌아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말그대로 그저 논다.
헐렁한 트레이닝을 입은채 늦게까지 잠을 자고, 낮잠도 자고, 만화를 보고, TV를 보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밥을 먹는다. 다마코는 23살의 인생까지 달려왔지만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유예를 선언한 것이다. 직장을 갖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하는 일련의 20대 후반부터의 인생에 대해서, 그 정해진 질서에 대해서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정지시키고 멈춰선 것이다.

당당하게 인생의 시간에 대해서 그렇게 맞설 수 있다는 것은 용기가 있거나 혹은 무모한 인생 낭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는 다마코의 이런 노는 일상을 보여주느라 기승전결이 없다. 주인공 다마코가 하는 일이 없는데 영화가 보여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저 같이 잠자고 함께 하품을 하며 옆에 앉아 만화를 보는 느낌으로 천천히 천천히 흘러간다.
이런 다마코를 지켜보는 아버지. 딸의 인생 유예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지만 함께 마주앉아 식사를 하며 여느 집안과 같이 TV 뉴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의견에 대해서 주고 받는다. 아버지와의 겸상이 다마코는 불편할 것 같으면서도 밥은 맛있게 우걱우걱 잘도 먹는다. 밥도 잘 안먹는다면 인생 자체가 의미가 없겠지만 밥을 잘 먹는 다마코는 인생이 잠시 유예되었을 뿐, 가야할 길은 정해진 것처럼 식성이 좋다.

다마코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가고 계절도 변화하는데 이 좋은 식성을 따라가는 듯 가을에 꽁치 같은 생선이 봄에는 양배추롤과 같은 야채 식단, 여름이 오자 소바와 같은 일본 음식이 다마코의 인생 유예와 달리 푸짐하게 보여진다. 음식에서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현명한 감독의 선택이다.
이렇게 누워있거나 청소를 하거나 TV를 보는 다마코에게 아버지가 시계를 선물로 주는 건 다마코에겐 그리 좋은 의미가 아닐 것이다. 시계란 지금 시각을 정확히 알려주고 앞으로의 시간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는 기계이니, 시간을 등진 다마코에게 시계란 어서 일어나 일을 해라는 독촉과 같은 잔소리와 마찬가지이니, 다마코는 당연히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한다.
한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한 단락을 드러내 관찰하는 일, 그것도 그 단락이 찬란한 영광의 시절이 아니라 후퇴되고 멈춰진 정지의 시간이라면 그 인생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정도는 그리 좋게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을 판단하고 예단할 수 있는 권한이 다른 사람에게 있을까? 그 사람이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지방 마을에서 혼자 가게를 운영하면서 이혼한 중년남자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보자. 이혼한 아내는 역시 도쿄에서 살고 있고 다마코의 언니 역시 결혼하여 도쿄에서 살고 있다. 딸을 혼인 시켰고 둘째딸도 도쿄의 대학까지 졸업을 시킨, 부족함 없어 보이는 이 아버지에게 다만 이혼이라는 삶의 흔적은 아무렇지도 않게 치유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에게도 다시 사랑이 찾아왔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연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식당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이들의 모습은 여느 부부와 다를바없고 게다가 그들은 다마코의 이야기를 하며 자식 이야기에 열중인 부부의 모습에 더도 덜도 아니다. 이혼이 곧 삶의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삶에로의 기회인 것인냥 아버지는 행복해 보인다.
역시 다마코도 지금 자신의 모습에 어쩌면 당당하고 이 무료한 일생 생활 속에서 행복을 찾았을지도 모르는 일. 다마코의 똘마니(?) 같은 역할을 하는 히토시가 계절이 바뀌어 좀더 소년이 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마코의 청춘도 역시 멈춘 상태가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성장통의 역사를 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다마코가 피터팬 증후군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면 히토시와의 관계에서는 다시 아버지의 역할처럼 변화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마코와 히토시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은 한숏으로 길고 느리고 천천히 보여주는 것은 다마코의 이어질 인생에 대해서 더 큰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주인공 사카이 다마코를 연기한 배우는 일본 아이돌 톱스타 마에다 아쓰코. 일본의 최정상급 아이돌 가수인 마에다 아쓰코는 이쁘지 않도록 보이게 한 노력이 보인다. 다마코가 대학을 다녔던 도쿄뿐만 아니라 요즘 우리나라에서 지역적으로 가까워 여행을 많이 가는 후쿠오카에만 가도 어디에나 마에다 아쓰코의 사진을 볼 수 있다. 23살이라는 꽃 같은 청춘의 여성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아도 될까 걱정이 절로 드는 모습을 유려한 연기로 펼친 마에다 아쓰코는 다마코에 완전히 빠져든 듯 원래 다마코와 비슷한 성격이 아닌지 감정이입이 될 정도이다.
정말 아버지다운 아버지 역을 한 칸 스온처럼 잉여청춘다운 잉여인생을 보여준 마에다 아쓰코의 매력을 다시 볼 수 있는 영화가 기다려진다.
지금 혹시 자신의 인생이 멈춰져 있거나, 남보다 뒤쳐져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이 영화를 대낮에 한번 보길 권한다. 다보고 난 저녁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조급하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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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청춘에 대해서 위로가 필요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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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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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취업의 의욕 없이 고향집에 틀어박힌 백조 다마코의 일상을 다룬다. 대책 없이 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니트족의 일상을 보여주면서도 영화는 시종일관 따뜻하고 훈훈한 시선을 유지한다. 소소한 사건 속에 묻어나는 감정의 디테일과 생활감 넘치는 화면들은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며, 계절의 변화에 따라 성장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 홀로 성장하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다마코의 모습이 이루는 대비는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모라토리움기’를 겪는 청춘의 단편을 귀엽게 그려내면서도 정작 그 ‘모라토리움기’의 원인과 결말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결국 아버지와 관객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일 년을 보낸 다마코는 변한 것 없이 사계절의 끝을 맞이한다.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제의 방점을 찍지 못하고 에두른 결말은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014년 9월 4일 목요일 | 글_김현철 기자 (bbunc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