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털어라
The Maiden Heist, 2009
몇 년을 매일같이
로저는 박물관에서 몇 십 년을 근무해 온 베테랑 경비원이다. 그에게는 남달리 애착하는 작품이 한 점 있는데, 그 그림에 관해서라면 큐레이터보다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가질 수는 없지만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행복하다. 하지만 박물관의 그림들이 멀리 떨어진 덴마크로 팔려가면서, 그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그림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다.
슬픔에 빠져 있던 로저는 비슷한 처지의 경비원 찰스를 발견한다. 그 또한 사랑하는 작품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지만 이미 결정된 일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 두 사람은 고민 끝에 최후의 결정을 내린다. 내 것이 아니라면 가지면 된다. 바로 박물관의 그림들을 훔치자는 계획이었다.
두 사람에게 또 한 명의 동료 조지가 등장한다. 그가 원하는 건 그림들과 함께 팔려가는 조각 작품이다. 평범한 경비원이었던 세 사람이 과연 어떻게 원하는 작품을 훔칠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된다.
비슷한 듯 다른 사람들
로저와 찰스, 조지는 언뜻 비슷하면서도 차이점이 있다. 로저에게는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아내 로즈가 있다. 로즈는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며 손님들이 준 팁을 모아 로저와 함께 플로리다로 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로저는 박물관에서 좀 더 일하고 싶고, 은퇴를 생각하라는 아내의 권유가 부담스럽다.
반면 찰스는 아직까지도 독신으로 살고 있는 노인이다. 그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며 외로움을 달래고, 뜻밖에 상당한 미술 실력을 가졌다. 찰스가 직접 그려서 벽에 붙여놓은 그림들을 보며 로저는 감탄한다. 무엇보다 그는 손재주가 뛰어나다. 박물관의 단면을 그대로 재현한 모형도를 보며, 세 사람은 본격적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조지는 조금 남다른 성벽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결혼을 했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지만 그는 완벽한 남성성을 동경한다. 그래서 멋진 남성의 조각상을 바라보며 가지고 싶어 한다. 로저나 찰스는 본의 아니게 조지의 성벽을 알아채지만, 그를 경멸하기보다는 동료로 끌어들여서 든든한 아군을 얻는다.
박물관을 털어라
유명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은 은행과 더불어 범죄의 표적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의 예술 작품들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범인들에게 제격이다. 그래서 실제 박물관은 어느 기관보다 경비가 철저하고, 폐관 시에는 철저히 보안 요소를 가동함으로서 범죄에 대비한다. 야간 근무하는 경비원들도 cctv를 통해 박물관 내부를 살핀다.
고도로 훈련된 베테랑이 아니고서야, 평범한 일반인이 작품을 훔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박물관을 털어라>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모든 작품이 포장되어 덴마크로 팔려가는 ‘틈’이 있다는 것과, 범죄를 구상하는 세 사람이 오랫동안 박물관에서 근무한 경비원이라는 사실이다.
The lonely Maiden
극중 로저가 사랑하는 그림의 작명이다. 그는 이 그림 하나만을 삼십 년 동안 사랑해 왔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몽환적인 눈빛의 소녀는 단번에 로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작품을 훼손할까봐 가까이 다가오는 일조차도 부담스러워한다. 그 정도의 애정이라면, 정말 크나큰 범죄를 결심한 이유도 이해가 간다.
세 사람은 작품들을 덴마크로 이송하는 날 자원봉사자로 참가한다. 포장이나 운반 도중에 자기들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모든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 법. 순간순간 등장하는 아찔한 장면들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새 이 귀여운 할아버지들(?)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노장들의 연기 투혼
<박물관을 털어라>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점이 아닐까 한다. 짤막짤막한 대사에서도 생생한 감정이 묻어나오고, 눈빛 연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무심코 지나가는 제스처 하나도 놓치지 않을 만큼 몰입할 수 있다. 배우들이 공중을 날아다니고, 총격전이 벌어지고, 화려한 추격 장면은 없지만,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억지 코미디가 아니라는 점이 만족스럽다. 대개 코미디 영화는 특정 세대나 집단이 아니면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요소를 극대화하여 웃음을 끌어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박물관을 털어라>에서는 무심코 던지는 대사 한 줄, 스쳐가는 배우들의 표정을 통해 웃을 수 있다. 관객으로서 한 번 생각할 여유를 주는 배려가 있다. 강렬한 자극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추천하고픈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