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Frank, 2014
샤워할 때 조차 가면을 벗지 않는 괴짜 뮤지션 캐릭터(프랭크)로 호기심은 잔뜩 자극한 다음 진짜 음악으로 단숨에 마음을 빼앗는다. 얼굴 없이도 열연할 수 있다는 걸 마이클 패스밴더는 똑똑히 증명한다. -나원정<맥스무비>기자
'프랭크'의 탈에 비친 각자의 욕망을 되돌아보는 사이 상대를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다소 식상한 결말마저 비범하게 바꿔버리는, 탈 다위론 가려지지 않을 마이클 패스벤더의 존재감. -송경원<시네21>기자
영화 관련 잡지나 기사들은 영화를 판단할 때 냉정하다. 물론 대중성을 우선시 두며 평가하는 기자들도 있지만, 다수의 기자나 평론가들은 대중성을 포함한 다른 외적인 다양한 방면으로 영화를 평가하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혹은 단순하게 재밌게 보았던 영화들도 전문가라 불리우는 그 들의 평가를 보면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반면 그토록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영화가 전문가들에 의해 극찬을 받거나 영화제에서 수상하게 되는 경우를 보며 내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구나 혹은 나의 영화적 지식과 수준이 많이 낮구나를 괴상하게 머리를 퉁치고 가는 경우도 흔하다. 이 영화를 보고 평가한 대부분의 그들은 짜기로 소문난 평점을 후하게 주었다. 후하다는 표현이 옳지 않을 수 있지만 다시 말해 영화를 보고 난 모든 사람들에게 혹평은 받지 않은 훌륭한 영화 한편이다. 그래서 소개하고 싶어졌다.
영화 <프랭크>, 2014년 가을에 개봉한 드라마 영화이다. 원래 본래의 이야기를 자서전 정도로 각색하려 했으나 픽셔널 영화로 진화한 것이다. 80년대에 처음 등장한 가면 프랭크는 언제나 명랑하며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며 비현실적으로 공상적인, 엄청난 긍정적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다. 영화의 시작은 음악가가 되고 싶은 존(돔널 글리슨)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시시하고 지루한 삶에 직장에만 쳐박혀 그의 음악적 창의성을 찾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 극에서는 음악가가 되고 싶은 열망 가득한 주인공이지만 그의 작사 실력마저 평범하기 그지 없다. 뻔한 인물 묘사이지만 존의 칙칙한 삶과 존재를 보여주면서 현대인들, 그와 비슷하게 재미없는 삶에 갇혀버린 일반적이며 가장 평범한 우리네 사람들과 공감하기를 원한다.
또한 영화는 이 시점에서 존이 각본작가 존 론슨이라는 것을 확립하면서 이 캐릭터가 론슨 나레이터 역을 맡을 것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존은 뜻밖의 행운을 거머쥔다. 프랭크의 키보드 연주자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려고 하는 바람에 존은 프랭크의 발음하기 조차 어려운 밴드 '소론프르브스'에 가입하게 된다. 이 밴드, 특히 프랭크는, 그들의 이름 처럼 특이하나 존은 그들에게 매혹되어 영구 멤버가 되기로 결심한다.
새로운 앨범을 만들어 내기 위해 존은 아일랜드로 끌려나게 되는데 외딴 숲 속의 별장에 도착하면서 그는 프랭크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알고보니 이 밴드의 모든 멤버들이 서로 다른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것, 존을 보자마자부터 호전적으로 혐오하는 테레민 연주자 클라라(매기 질렌할). 존이 화가 나 그녀에세 욕을 하자 그와 섹스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머지 두명은 전형적인 프랑스 음악가들이며 프랑스인답게 편할 때만 영어를 쓴다.
밴드 매니저인 돈(스쿳 맥네어리)은 심각한 정신질환 떄문에 병원에 오래있었고 마네킹 페티시가 있다고 존에게 고백한다. '소론프르브스'는 컬트 관객층을 얻게 되고 이로 인해 존은 프랭크에게 SXSW 음악 축제에 참가하자고 애원한다. 그렇게 영화는 밴드가 결성되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일반적인 남성 이름인 '프랭크', 영화 제목 <프랭크>는 아일랜드 출신 감독인 레니 에이브러햄슨의 4번째 장편 영화이다. 제 30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가장 장르적이면서 실험적인 저예산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주인공 마이클 패스벤더가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기 까지 포스터 속의 탈을 벗지 않는다는 천재 뮤지션이라는 설정에 가장 끌렸다. 또 재미난 것은 출연하는 배우들이 화려하다.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돔놀 글리슨이 프랭크의 지목으로 오게 된 꿈만 큰 뮤지션 '존'을 맡았고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 여자친구로 등장하는 매기 질렌할이 클라라 역을 맡았다. 다소 황당한 이 영화가 좋은 이야기는 탈을 쓴 마이클 패스벤더의 코믹연기가 한몫 단단히 했다. 탈을 쓴 남자의 코믹한 몸짓에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를 달고 있지만 마치 장르도 탈을 쓴 듯한, 영화는 오로지 코믹만을 위하고 코믹에 의한 영화는 결코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또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영화의 개봉당시 국내 영화계는 떠들썩 했다. 바로 저예산이자 큰 기대 없었던 <비긴 어게인> 돌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입소문을 탄 <비긴 어게인>은 적은 상영관에도 불구하고, 또 <명량>,<해적>,<해무>등 국내 거대 영화들 속에서도 100만, 200만을 훌쩍 넘어서면서 저력을 과시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프랭크>, 또 음악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한 두 영화.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두 영화 모두 저예산 영화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비긴 어게인>의 제작비는 260억원. 반면 <프랭크>의 제작비는 18억에 불과했다. 다양성 영화가 저예산 영화를 칭하는 점에서 <비긴 어게인>의 다양성 영화화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프랭크>는 <비긴 어게인>이 형식에 치중하느라 신경쓰지 못한 스토리를 좀 더 섬세하게 다룬다. 그렇다고 <비긴 어게인>에 비해서 영화 음악만 놓고 보았을 때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앞서 제작비에서도 단순히 비교가 가능하듯이 <비긴 어게인>의 음악이 대중성 짙은 팝송에 가깝다면 <프랭크>의 음악은 언더 그라운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인디음악 장르에 가깝다. 단순 수치나 장르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두 영화는 지향점이 완전히 다르다. <프랭크>를 통해 나타나는 주체의 문제와 뮤지션으로서의 소모적인 감정을 주로 다루고 있다. <프랭크>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자체다. 그가 부르는 의미없는 것을 나열하는 듯한 가사로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음은 커녕 무슨 뜻인지 조차 알 수 없는 밴드의 이름은 프랭크의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이 밴드는 행복하다. 팀의 이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동료들 조차 어떻게 읽는지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팀 리더이자 정신적 지주인 프랭크다. 새롭게 팀에 들어오게 된 존의 입장에선 이렇게 고갈되는 팀의 실력을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자신은 1년을 산속에 박혀 있어도 해내지 못한 작곡을 프랭크는 단 몇초만에 해낸다. 때문에 좋은 뮤지션을 꿈꾸는 존은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프랭크를 동경하기에 이른다. 동시에 그가 스고다니는 무표정한 가면, 탈과 그의 답답한 성격에 환멸을 느낀다. 존은 프랭크의 허락없이 팀을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 유투브에 연습 영상을 올리고 고작 3만뷰를 기록했을 뿐인데 대중이 너를 좋아한다고 존은 프랭크를 꾄다.
무표정한 가면을 뒤로 한 배우의 표정이 모두 다 보이는 마법을 본 것 같았다. 또 <비긴 어게인>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여러가지 유사성을 바탕으로 비교해 보았을 때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의미 없는 가사들 처럼 보이지만 이 것이 세상을 이룬다. 떄문에 의미없는 가사들은 음악이라는 장르로 재창조되면서 다시 그 의미를 획득한다. 인디음악이 주는 매력이 이런데서 오는것이 아닐까?
<비긴 어게인>을 극장에서 보지 않았을 때 아쉬움은 남는다. 그러나 <프랭크>는 극장에서 보지 않아도 된다.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음악영화, 코믹영화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다. 각자에게 모두 서로 다를 이 무언가를 다 같이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올 가을, 강력 추천하는 영화 한편이다. <프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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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마이클 패스벤더를 좋아하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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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원종현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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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는 인정받는 뮤지션을 꿈꾸는 존이 자신의 부족한 재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위트 있게 풀어낸 코미디다. <프랭크>는 대중성과 진실성, 평범함과 비범함 사이의 갈등을 존과 프랭크라는 두 인물의 대립으로 형상화한다. <프랭크>는 밴드의 일상을 SNS에 공개하는 존의 보이스 오버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며 프랭크의 입장보다는 존의 관점에 편중해 상황을 바라본다. 따라서 프랭크의 숨겨진 재능을 대중에게 알리려는 존의 노력은 타당해 보이고, 영감을 받기 위해 밴드의 엉뚱한 행동을 무작정 따라하는 존의 절박함은 안쓰러운 웃음을 자아낸다. 반면 <프랭크>는 영화 후반부 존에게 설득당한 프랭크가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프랭크는 탁월함 음악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노출될수록 자신감과 음악적 재능을 상실하는데, 그런 프랭크의 아이러니한 모습은 웃음보다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존재 그 자체로 행복했던 프랭크의 밴드를 유명하게 만들고자 했던 존의 시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프랭크>는 밴드를 무대에 남겨둔 채 말없이 떠나는 존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2014년 9월 18일 목요일 | 글_최정인 기자 (jeongin@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