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재자
2014
산업화 시대를 겪어온 우리네 아버지 세대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자존감 마저 버리고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해왔고, 그 댓가로 가족에게 만큼은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비록 그 권력이 이해가 안되고 부당 하더라도 가장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자식들은 아버지를 존중 하였고, 아내는 하늘처럼 받들고 섬기기를 다하였다.
지독히도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산업화는 급속히 이루어졌고 쉴 새 없이 일해야만 살 수 있었던 우리네 아버지들은 이제 그 험난했던 시절들을 뒤로한채 행복을 누릴 자격이 충분 하지만, 훌쩍 커버린 자식들은 자신들의 일도 벅차다며 아버지를 멀리하려 하고, 가정으로 부터 소외된 그들은 도심의 후미진 곳을 전전하며 서글픈 삶을 살아간다.
<나의 독재자>의 이해준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여자가 되고 싶은 뚱보소년 동구(류덕환)를 통해 성소수자들의 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전해주며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또 <김씨 표류기>를 통해 자본주의와 외모지상주의 세상을 살아가며 상처받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번 영화 <나의 독재자>를 통해 이해준 감독은 가정으로 돌아와 소외 받고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아픔들을 들려주려 한다.
영화 <나의 독재자>에서는 북한의 김일성을 전면에 내세워 대역배우로 살아왔던 아버지의 인생을 풀어나가려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2년, 당시 정보부장 '이후락'이 평양을 다녀온 후 "김일성과 박정희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다" 라는 발표가 나온 후 중앙정보부에서는 원만한 회담을 위하여 김일성 대역을 내세워 실제 정상회담 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들을 리허설 해보는 프로젝트를 계획 했었다고 한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나의 독재자>에서는 김일성의 모습을 재연하기 위해 몸부림 쳤던 대역배우 '성근(설경구)'의 안타까운 삶을 보여준다.
권력의 삐에로가 되기위한 무명배우의 변신
지나가는 행인, 구경꾼, 병사 등 비록 대사도 한 줄 없는 배역이지만 언젠가 주인공이 될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성근(설경구)에게 어느날 연극무대에 설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다. 성근은 아버지가 이름도 없는 배우라고 늘상 놀림을 받던 태식(박민수)에게도 자랑스런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어렵게 살면서도 아들의 꿈을 위해 뒷바라지를 마다 하지 않는 어머니 에게도 떳떳한 자식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에 성근은 공연을 설레임속에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주인공 데뷔전은 처참하게 망가지고 어머니와 아들이 보는 앞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게 된다. 비록 힘들게 살면서도 아들 앞에서 만큼은 언제나 당당한 아빠로 아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인정 받고 싶었던 바램은 많은 관객들 앞에서 대사 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채 단장에게 두들겨 맞는 초라한 아빠의 몰골로 끝이 나고 만다.
결국은 자신과 자식에게 평생을 아픔으로 간직될 상처와 아픔만 남기고 말았지만, 이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또 한번 찾아오게 된다. 절망과 좌절에 빠진 성근의 간절함은 당시 김일성의 대역 연기자를 찾던 중앙정보부의 조건과 맞아 떨어졌고, 온갖 고문과 협박에도 견뎌낸 우직함은 그들의 요구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인물로 낙점 된다. 몇년간의 무명생활을 통해 정상에 오른다는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알고있는 그가 어느날 갑자기 주인공이 되어 '남북정상회담'의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을 연기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명의 배우에 연기에 대한 열정이 없는자, 연기를 지나치게 잘해도 안되고 질문이 많아서도 안된다. 성근이 김일성의 대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연기열정 때문도 아니고 타고난 연기력 때문도 아니다. 중정의 프로젝트팀은 단 하나,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자를 원했고, 부족한 연기력은 성근에게 면접을 권유했던 연극과 교수 허상웅(이병준)의 스타르타식 교육으로 완성된다.
부족해도,능력이 없어도 아버지의 그늘은 든든하다.
김일성의 기록필름을 보며 몸동작부터 어투까지 따라하고, 작가의 시나리오에 따라 김일성으로 빙의되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며 공산주의 사상과 그들의 사고방식을 주체화 시킨다. 모든 준비과정을 마치고 이제 대통령과의 리허설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회담이 좌절되고 만다. 그토록 바라던 주인공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그나마 지켜왔던 자존심 마저 무너지며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세월이 흘러 어린 태식이는 성인이 되었고 그도 이제 초로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벽에는 인공기가 걸려있고 지금도 스스로를 김일성 이라고 믿으며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이로 인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태식의 시점으로 바라보며 극의 전개를 새롭게 변화 시키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속에는 웃음과 감동이 묻어난다. 부자간의 소통을 거부한채 각자의 길을 가고있지만 철거와 보상 문제로 어쩔수 없는 동거에 들어가며 서로에게 서서히 동화 되어간다.
20여년간 '김일성'이라는 배역에 몰입해 자신을 독재자 라고 믿고 살아왔던 그가 아들에게 무심코 던진 말에는 그가 왜 지금껏 김일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암시 하고있다. "수령은 아버지가 아니네?" 아들에게 따뜻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지만 이미 무너져 버린 권위는 찾을 수 없었고, 그가 선택한 길은 영원히 독재자로 군림하며 세월을 망각 하는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권력자들을 위해 삐에로가 되기 보다 아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20여년의 시간을 투자한 위대한 연극은 단 몇분의 공연으로 끝이 나지만 기나긴 시간 오해와 갈등으로 점철된 부자관계는 시간의 흐름만큼 빠르게 서로를 향해 다가선다.
어릴적 태식이가 건네준 딱지 한장을 소중하게 보관했던 아버지는 그때의 순수했던 아들의 모습을 간직하며 그시절을 헤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고독한 독재자는 떠나고 그가 남겨놓은 흔적들을 바라보며 오열하는 태식의 모습이 낮설게 느껴지지 않는건, 아마 우리들의 아버지도 그리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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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독재자 ] 2014.1080p.고화질.H2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