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를 위한 1분
One Minute for Conductors , 2013

<지휘자를 위한 1분>은 2010년의 겨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1주일간 열린 제 11회 안토니오 페드로티 국제 지휘 콩쿠르의 예선 및 본선, 결선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이 콩쿠르는 세계 3대 지휘 콩쿠르 중 하나로 명성이 자자하며, 우승자에게는 밀라노, 피렌체, 빈, 프랑크프루트의 훌륭한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 최고의 지휘자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40세 미만의 인재들 131명이 예선에 참가한다.
영화는 열정 어린 눈빛과 훌륭한 재능으로 빛나는 참가자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인터뷰하면서 관객에게 지휘자라는 직업의 심오함과 참가자들의 지휘에 대한 열정과 경쟁에 대한 태도를 엿보게 해준다. 한편 오케스트라는 어느 참가자가 지휘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음색과 분위기를 보여주고, 생동감 넘치는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며 관객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세 번의 시험을 치르며 점차 윤곽을 잡아가는 파이널리스트들에 궁금해하거나 참가자들의 열정과 긴장감에 가슴을 두근거리느라 다큐멘터리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남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
제 11회 안토니오 페드로티 국제 지휘 콩쿠르의 예선 장에는 다양한 인종과 국적, 나이와 성별을 가진 참가자들이 긴장된 얼굴로 모여있다. 이들은 첫 번째 관문인 예선에서 음악적 배경지식을 묻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고, 피아노 두 대와 성악곡을 지휘해야 하며, 본선에서는 오케스트라와 관현악곡 일부를, 결선에서는 청중들 앞에서 오케스트라와 관현악곡 전부를 연주해야 한다. 각 한번씩 주어지는 기회 동안 처음 보는 연주자들을 데리고 무작위로 주어지는 곡을 이 모든 과정마다 완벽하게 지휘해야 한다. 그 와중에 지휘 기술이나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은 물론 그만의 개성, 지휘자로서의 카리스마도 증명해야 하는 어려운 경쟁이다.
영화는 예선, 본선, 결선이 진행되는 동안 참가자들을 때로는 관찰하고 때로는 인터뷰하면서 이들이 이 경쟁에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들여다 보게 해준다. 그런데 참가자들은 이 콩쿠르가 잔인하고 치열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건 서로 싸우는 싸움이 아니며 상대방의 실수를 바라는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냉혹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쉽게 목격하곤 하는 “너 아님 내가 죽는다“는 식의 남을 밟고 올라가야만 내가 승리하는 경쟁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은 남들이나 심사위원이 아닌 자기 자신 혹은 작곡가와 싸움을 하고 있으며, 남과 비교우위에 서기 위해서가 아닌 절대적인 탁월함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참가자들은 서로 심사위원이 무엇을 질문했는지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내가 경연장에 들어가 지휘했을 때 뭐가 부족했었는지를 허심탄회하게 말해주기도 한다. 다른 참가자들을 내 경쟁자라고 보지 않고 음악과 지휘에 대한 열정으로 한 길을 가고 있는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관대한 제스처들이 대회가 열리는 건물을 가득 메운다. 또한 그 긴장의 순간에서도 그들은 무대에 올라서 지휘할 수 있었던 일이 너무나 즐거웠다고 말한다.
참가자들은 경쟁에서 이기는 게 아닌 자기의 꿈이 구체화되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쟁의 목적은 승리고, 이를 위해 남을 쳐부숴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어온 사람들에게 이들의 태도는 충격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처럼 경쟁의 목적이 자신을 최고의 경지로 성장시키고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서일 때에는 승패를 떠나 경쟁하는 그 순간조차 즐겁고 아름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탈락이란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법
예선을 치르고 나서 심사위원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진지하게 탈락자를 가려낸다. 카메라는 합격한 사람들에게선 환희의 표정을 탈락한 사람들에게선 우울한 좌절감을 잡아낸다. 하지만 탈락자들은 괜찮다며 자신을 달래고 심사위원을 욕하지 않는다. 나는 패자라며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거나 자존감을 땅에다 메다 꽂지도 않는다. 탈락자들은 우선 심사위원장인 구스타프 쿤에게 자신의 지휘가 어떤 점이 좋았고 나빴는지를 묻고, 대회장에 남아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를 계속 지켜본다. 그들은 이 모든 경험을 내 위치를 확인하고 배우며 성장해나가는 발판으로 삼아 더 나은 지휘자가 되고자 한다. 또한 내가 탈락한 건 심사위원의 판단일 뿐이라며 이로 인해 지휘에 대한 사랑과 꿈을 멈추지는 않을 거라 말한다.
운동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얼굴을 하는 우리나라의 분위기와는 참으로 다르다. 콩쿠르의 탈락자들은 모두가 뽑힐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참가했다며 그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패자라곤 생각지 않는다. 또 탈락 경험을 통해 음악과 지휘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재확인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파악해 더 성장하여 다시 도전하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탈락자들을 통해 경쟁에서 패했다 해도 새로운 시작을 바라 볼 수 있는 여유와 열정을 배운다.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온 지휘의 매력
영화를 보면 지휘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관객들마저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는 직업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지휘자가 어떤 일인지, 어떻게 지휘자가 되려고 하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누군가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다 우연히 무대에 올라 지휘하게 된 뒤로 지휘에 사로잡혔고, 어떤이는 어려서부터 음악가 집안에서 음악과 호흡하며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또 여성 참가자중 한 명인 아눈치아타는 지휘가 내가 아닌 음악의 본질과 하나가 되어 그 본질을 신체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하며, 데보라는 지휘가 악보에 생명을 불어넣는 직업이며 어떻게, 언제 할지를 내가 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경우이건 간에 그들이 지휘에 대해 말할 때는 말투와 눈빛에서 벅찬 감흥과 불꽃같은 열망이 느껴진다. 수천 개의 음이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중심에서 그 음들 모두를 조율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더 큰 존재감으로 이끌어가고, 죽은 작곡가의 회색 빛 악보에 총천연색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 지휘의 매력. 지휘자의 단상에 올라 언젠가 나만의 오케스트라를 멋지게 지휘하리라는 참가자들의 빛나는 꿈은, 소싯적의 반짝이던 열정 따위 잊고 사는 회색 빛 도시의 지친 현대인들의 가슴에도 오랜만의 두근거림을 안긴다.

예선과 본선을 지나 5명으로 압축된 파이널리스트. 다양한 국적만큼이나 지휘하는 스타일도 각자 다른 그들은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모든 집중력과 염원을 모아 오케스트라와 청중앞에 선다.
이 마지막 멤버들이 어떤 마음가짐과 꿈을 품고 여기까지 올라오게 되었는지 알고 있는 관객들은 이들의 몸짓과 표정, 리듬이 곡을 따라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때에 마치 내가 지휘단상에 올라가 지휘하는 듯한, 오케스트라와 내가 하나가 된듯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 결선의 결과는 영화 속에서 확인하기로 하자.

우리 누구나 삶의 지휘자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등수가 아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심한 경쟁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참가자들의 열정과, 같은 경쟁에 내몰린 타인을 응원하는 배려심,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탁월함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 승자가 되지 못했더라도 결과를 수용하며 끝이 아닌 시작을 바라보는 담대함을 배우는게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태도와 마음으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음악이 얼마나 아름답고 웅장하며 정성스러운지 감동해 보자는 것이다.
영화를 본 뒤에는 지휘의 매력에 눈뜨고, 결과를 떠나 대회 참가자들 모두를 응원하며 마음속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던 나 자신의 열정과 꿈을 재발견할수도 있다. 물론 혹자는 음악이나 지휘의 세계가 너무 먼나라 얘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내 삶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야하는 지휘자임을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 그러니 다큐멘터리속 참가자들의 열정과 담대함을 본받아 훌륭한 지휘자가 되려고 노력해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히카루라는 참가자가 말했듯 "삶을 즐기고 나의 일을 즐기며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운명과 우연이란 음표를 엮어 써내려간 삶이란 제목의 악보에 어떻게, 언제 숨을 불어넣을지는 오롯이 지휘자인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기왕이면 우울하고 처절하기 보다 웅장하고 경쾌하고 사랑스럽게 연주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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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소로우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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