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의원, 2014
사극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가 그 시대의 문물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말투는 물론이거니와 당시의 의식주를 관찰하는 재미는 미래 SF 영화의 화려한 디지털 문화를 보는 것만 것 재밌고 눈이 즐거워진다. 매년마다 나오는 사극 영화는 그런 면에서 항상 ‘전문가에게 고증을 철저히 했다’는 마케팅 용어를 사용하여 볼거리가 충분하다는 점을 자신있게 내세운다.
고증을 철저히 했다는 말은 옛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고 당대의 문물과 문화에 심취할 기회를 주겠다는 이야기이니, 관객은 시대를 너머 과거로의 여행에 흔쾌히 즐길 준비가 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퓨전사극이라는 장르는 현대극 같은 스토리와 개량한복 같은 의상으로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고 고증은 사실 복합적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최근작 <해적>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나> 또는 <조선명탐정> 등의 경우 오락 영화로서 사극을 내세웠기에 퓨전사극의 흐름을 탈 수 밖에 없다.
정통 사극물로 가보면 고증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집중했는지 읽을 수 있는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보면 차를 따르는 장면 하나하나와 시, 서 , 화 문화에 대해서 디테일에 신경 쓴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한번 빠지면 계속 보고 싶은 사극의 볼거리, 그런 재미를 집중해서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상의원>이다.
조선시대 궁궐 안의 의복을 만드는 곳 상의원.
의복이라는 것 자체가 실용성과 화려함, 아름다움을 동반하기에 상의원이라는 영화 자체는 하나의 풍부한 관람영화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난 인간 관계의 다양한 가지들이 스토리에 재미를 주고, 캐릭터와 캐릭터의 연결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 한편을 보고 나면 문득 한 역사의 단락을 여행하고 온 느낌을 받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상의원에서 30년동안 일해온 조돌석(한석규)는 6개월 후에는 양반으로 승격된다. 무심한 세월을 견디며 오직 바느질만 해온 그의 인생에 양반이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궁궐 밖에는 이공진(고수)이라는 실력파가 있었는데 기방을 드나들며 기녀들 옷을 만들어주고 인기를 얻어 그럭저럭 먹고 사는 특이한 캐릭터이다. 이 둘의 관계가 바로 영화의 큰 줄기이고 이 둘의 애증은 그렇게 해피엔딩이 아닐 것이라는 걸 극 초반에 드러난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다음날 제례에 입을 임금의 면복을 태우게 되어 난리가 났지만 상의원 어침장 돌석도 하루만에 고칠 수 없다고 나인들을 실망시킨다. 그 때 궁밖의 공진을 알고 있는 판수에 의해 공진은 느닷없이 입궐하여 신의 솜씨로 면복을 완벽하게 만들어내고, 더구나 임금은 자신의 몸에 잘 맞는다하여 매우 좋아한다. 이 때부터 돌석과 공진의 운명은 이미 결정난 터. 돌석과 공진의 애증과 운명을 건 시험의 장은 그렇게 끝을 향해 달린다.
영화에서 돌석은 공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듯 하다. 상인 출신의 실력파 디자이너인 공진은 돌석이 입궐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살았을 본모습이며 옷에 대한 철학은 실제 돌석이 갖고 있는 개념과 같은 선상이 아닐까.
하지만 돌석은 궁안에 살면서 양반이라는 타이틀을 갖는 것이 인생에 대한 보람이며 30년 바느질 인생에 대한 결과일 것이기에 공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둘이 티격태격하지만 또한 공진도 돌석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지 않으며 그의 뜻에 수긍하는 장면들은 또한 공진도 돌석의 또다른 거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눈을 감고 달을 떠올리라 하면 같이 그렇게 옷감들 사이에서 교감하는 것이나, 공진의 흔적을 모조리 없애겠다고 열변하는 돌석의 말은 공진과 돌석이 함께할 수 없는 이면의 것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한편 왕이 된 배경의 열등감으로 인해서 궁궐 안에서 허허로움을 느끼는 임금의 모습은 돌석과 닮았다. 궁궐 안에 자신만의 것이 없다는 임금의 말은 곧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탄식하는 깨달음인데 왕이 바뀌면서 궁 안의 시스템도 바뀌지만 오직 상의원 일꾼들만은 그대로 둔 것은 자신만의 옷을 만들어준 것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곧 돌석과 임금은 본인의 옷을 만들어주고 그만의 것을 찾아주는 매체이기에 그 둘이 결국 공진을 대하는 결말은 맥이 닿아있다. 공진에게는 마음에 품었지만 다가가지 못하는 왕비가 있었을 뿐, 그를 비춰줄 거울 – 임금과 같은 존재가 없었던 것이다.
청나라 사신을 위한 진연에서 왕비를 위해 마련한 옷은 공진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 보여준다.
계급이 들어가 있고, 위엄이 서려있으며, 기품이 깃든 옷. 그것은 돌석이 주장해온 옷이 아닌가. 공진은 섹시하게 보이는 좁은 소매와 눈에 단박 들어오는 강한 색체의 화려한 옷을 선호했다. 그러나 진연에서 차려야할 왕비의 옷은 그대로 왕비의 품위와 우아함을 담아낸 최고의 옷이었다. 물건에도 뜻을 다하면 아우라가 생긴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온힘을 다해 왕비의 옷을 만들어낸 공진의 뜻은 아마도 자신의 운명을 모두 걸고, 그 결말도 이미 예감했던 것이 아닐까.
영화는 시종 화려한 궁중 패션쇼를 떠올리며 유쾌하게 흘러간다. 종종 삽입된 유머는 옷이라는 소재의 단순함을 무너뜨리는 유쾌한 장면들로 효과를 다한다. <관상>이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정사를 중심으로 무게를 두었다면 <상의원>은 사실 정사에서 많이 비껴간다. 실제로 어떤 왕인지도 정확히 명시되지 않은 상태이다. 선왕이 형이었다는 것과 정실 부인을 홀대한다는 것으로 추측하여 영조가 아닐까 예상되지만 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시 문명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히 즐길만하다.
한석규와 고수, 박신혜, 마동석, 그리고 유연석의 열연은 조선시대의 궁중 모습을 그대로 뚝 떼어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보인 듯 활기차다. 왕으로 나오던 한석규가 어침장으로, 신예 유연석이 왕으로 나오는 캐릭터, 그리고 어디선가 늘 보아온 듯 능글능글한 고수의 모습은 박신혜의 커다란 눈망울과 같이 깊은 호흡을 같이 한다. 멋진 배우들과 화려한 옷들이 가득한 <상의원>은 사극 열풍을 이어갈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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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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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돌석은 자신에게 없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공진이 부러우면서도 밉고, 미우면서도 애틋하다. 돌석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여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자신과 달리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는 공진이 안타깝지만, 그를 위해 자신의 것을 내려놓으려 하지는 않는다. <상의원>은 명확히 시대를 밝히지는 않지만 익숙한 사극의 논리를 따라간다. 힘겹게 왕이 된 후 신하와 갈등을 겪는 왕, 왕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중전, 이를 둘러싼 이들의 권력 다툼을 큰 골격으로 하여 ‘상의원’이라는 참신한 소재로 차별화를 꾀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보니 어느 한 곳에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보여주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 많은 <상의원>은 마치 하이라이트로 구성된 긴 예고편 같다. 퓨전 사극을 지향한 <상의원>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모습은 일면 현대극을 넘어 초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재미를 이끌어내는 관객이라면 환영할 만한 영화다.
2014년 12월 18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 eyoung@movis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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