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바이
Lullaby , 2014
오랜 암 투병 끝에 존엄사를 결정한 아버지. 집을 떠나 자유분방하게 살던 조나단은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가족 곁으로 돌아온다. 조나단에게 있어 언제나 강직했던 아버지는 못 본 사이에 너무나도 약해져 있었다. 헤어져 살던 기간이 길어 어머니와 여동생과의 사이도 소원하고, 우울한 병원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든 조나단은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존엄사를 원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언제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과 마찰까지 발생한다. 조나단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회의를 느끼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 와중에 만난, 역시 완치되기 힘든 불치병으로 투병중인 소녀. 조나단은 소녀에게서 생각하지 못한 위안을 얻으며 조금씩 가족들을 향해 마음을 열어간다.
숨겨왔던 개인의 상처
어릴 적 조나단에게 아버지는 늘 어려운 존재였다. 사춘기를 호되게 앓은 조나단은 부모님의 곁에서 벗어나려고 애를썼다. 음악을 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고, 가족 구성원 누구와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조나단의 인생에서 가족이란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예정된 죽음을 알았을 때, 조나단은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현대 사회에서 부자간의 갈등은 흔한 현상이다. 거의 대부분의 가정이 앓는 문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 그럼에도 넘어서고 싶은 사람이며 아버지에게 있어 아들은 자기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다. 단순히 세대 차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부모-자식간의 갈등은 여러 요인이 작용하는 복합적인 문제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어요”
사실 그랬다. 조나단은 누구보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아버지란 멀리 있는 존재였고, 다가갈 수 없어 망설이기만 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조나단은 엇나가기 시작했고 그 방황은 어머니와 여동생에게도 악영향을 끼쳤다.
성인이 된 이후, 조나단이 가족 곁을 떠나면서 가족 간의 골은 더 깊이 파였다. 법대에 진학한 여동생은 조나단이 아버지의 존엄사를 지지하는 이유가 유산 때문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반면 조나단은 여동생이 사치와 허영에 눈이 먼 속물이라고 여긴다. 물론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두 사람 다, 사실은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항상 날 웃게 했어”
12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게 배우자의 존엄사라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조나단의 어머니는 남편의 투병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다. 헌신적으로 남편을 간호하고,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아 끝까지 배우자의 선택을 존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죽는다는 상황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우리 가족을 생각한다면 병원 침대에 누워서라도 살아줬으면 하고 생각했으리라.
실제로 대부분의 가족들이 투병 환자의 생존을 바란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투병 생활은 ‘반드시 살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강직한 남자의 의지를 꺾기에 충분했다. 조나단의 어머니는 남들 앞에서는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슬퍼하면 누구도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는 곳, 혼자 있을 때만큼은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이별을 이겨내는 방법
2005년 인기리에 방영된 일본 드라마 ‘1리터의 눈물’은 실제로 ‘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으로 투병했던 소녀의 삶을 그렸다. 조금씩 몸이 굳어 일상생활이 어렵게 되는 소녀, 나중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생활하며, 끝내 심장이 멎고 만다는 소녀의 시한부 인생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소녀는 자신이 불행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견디며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다. 소녀가 그만큼 강한 의지를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들의 헌신적인 지지가 컸다.
상대적으로 무심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잘 자라준 동생들, 아픈 딸의 손을 잡고 강한 용기를 불어넣어준 아버지와 어머니.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그들의 삶에 많은 사람들은 공감했고, 절망 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1리터의 눈물>이후 남은 가족들은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지 보여주었다.
불치병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껏 많은 매체에서 다뤘다. 불치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며,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할 수 없기에 원망스럽다. 그에 따른 고난은 당사자는 물론 주변사람들까지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견디는 건, 소중한 사람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새로운 시작
‘산 사람을 살아야 한다’는 표현이 있다. 언제까지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 없다는 의미다. 떠난 사람은 가슴에 묻고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면 된다. 그것이 떠난 사람이 남은 사람들에게 바라는 바다. <룰라바이>의 조나단 역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노래하며 다시 살아간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처럼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사랑했고, 그는 지난날의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에게 차가웠던 아버지를 용서한다. 남은 가족들 또한 마찬가지다. 흔한 속담 하나를 인용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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