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낫 유
You're Not You , 2014

루게릭의 전조
케이트의 삶은 완벽했다. 부유한 생활, 멋지고 능력 있는 남편, 자신의 커리어까지 갖춘 그녀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커리어우먼의 표본이었다. 그녀는 가족과 친구들의 축복 속에 행복한 35세 생일을 맞는다. 그러나 화려한 피아노 연주를 보여주던 중, 케이트는 몸에 나타난 이상을 느낀다. 그녀의 병명은 루게릭. 몸의 근육이 조금씩 굳어 나중에는 먹지도, 말하지도, 숨을 쉬기조차 어려워지는 증상이었다.

천방지축 날라리 여대생, 벤
케이트의 남편 에반은 헌신적으로 그녀를 돌본다. 하지만 그가 자리를 비우는 시간 동안, 케이트에게는 또 한 명의 간병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케이트는 간병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그녀답지 않게 까다롭다. 에반이 신용하던 간병인이 해고된 후, 케이트는 에반에게 있어 ‘말도 안 되는’사람을 새 간병인으로 채용한다. 그녀의 이름은 벤. 간병이라고는 고등학생 때 양로원 봉사활동 경력이 전부인, 가수를 꿈꾸는 천방지축 여대생이었다.
벤은 모든 일에 서투르다. 요리는커녕 청소도 못하고, 케이트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지식도 없다. 말을 가려서 할 줄도 모르며 사생활 또한 난잡하다. 지각은 일상, 어지르기는 고수. 에반은 벤을 선택한 케이트의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다.

조금씩 가까워지기
케이트는 벤을 해고하자는 에반에게 말한다. 자기를 환자로 취급하지 않아서 좋다고. 케이트는 병에 걸리기 전 자신을 기억하고, 그 삶을 지키고자 한다. 병에 걸린 이후 절친한 친구들과 멀어졌어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 간병에 지친 에반의 외도만큼은 그녀로서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 케이트의 곁을 지키고,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위로해준 사람은 벤이었다.
사실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케이트가 어려서부터 곱게 자라온 요조숙녀라면 벤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젊은 니트족이다. 함께 있으면 하루에 세 번씩 싸울 것 같은 조합. 하지만 두 사람은 의외로 죽이 잘 맞는다. 케이트에게 벤은 지금껏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종류의 친구고, 벤에게 케이트는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주는 언니다.
“나한테 그렇게 해 준 사람은 없었거든요.”
벤은 케이트의 곁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는다. 벤의 꿈은 가수지만, 그녀는 스스로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며 끔찍한 무대 공포증까지 있다. 하지만 케이트의 앞에서는 스스럼없이 연주할 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다. 벤은 정말이지 대책 없었던 자신의 사생활도 조금씩 정리해 나갈 용기를 얻는다.

병이 빼앗아가지 못하는 것
극중 케이트와 벤은 재활치료시설에서 같은 병으로 투병중인 친구를 만난다. 그녀 또한 루게릭으로 조금씩 몸이 굳어가고 있지만, 마지막까지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삶은 최대한 행복하게 보내려고 한다. 루게릭은 전신의 근육을 굳게 만들어 몸을 망가뜨리는 잔인한 병이다. 그러나 이 병이 빼앗아가지 못하는 것, 그건 당사자의 정신과 의지였다.
흔히 몸이 망가지는데 정신만이 뚜렷한 것은 불행이라고 한다.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겠는가. 주변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어렵다. 하지만 확실히 주장하고 싶은 게 있다. 굳어가는 육체 안에 맑고 깨끗한 정신이 남아있는 것은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값어치를 지닌다. 마지막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계의 혁명적인 이론들을 정립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21세 때 루게릭 진단을 받았다. 대부분 루게릭 환자들이 짧은 시한부 삶을 선고받는 반면, 그는 전동휠체어에 앉아 40년이 넘게 생존했다. 그는 스스로를 두고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병은 자신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아가지 못했다고도 했다.
“루게릭이 아니라 병원 때문에 죽을 뻔했어.”
잔인한 병 앞에서 케이트가 거부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병원에서 죽지 않는 것. 벤은 케이트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병원에서 온갖 기계에 둘러싸여 죽는 것만큼 불행하고, 또 고통스러운 것은 없을 테니까.

그녀가 보는 세상, 그녀가 만난 사람들
<유아 낫 유>에서는 루게릭 환자의 투병 기간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하여 억지 감동을 짜내려고 하지 않는다. 케이트와 벤이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사실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루게릭은 지금까지도 완치될 수 없는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고, 등장인물들 모두 케이트의 죽음을 전제로 활동한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대한 의견은 모두가 다르다.
“네 모습을 봐주는 사람을 찾아. 너도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봐야 해.”
포스터의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누구나 인생을 바꿀 단 한 명을 만난다는.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케이트와 벤은 분명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다. 케이트는 벤을 만남으로서 힘든 투병기간 동안 웃을 수 있었고, 벤은 케이트를 통해 자기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 아마 두 사람을 서로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작중 내내 밝고 요란했던 벤이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을 잊지 못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어서 서로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두 사람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