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검, 신선조
壬生義士傳 , When The Last Sword Is Drawn , 2003
이 영화는 일본 바쿠후 말기와 신선조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다. '바람의 검'이라는 제목 때문에 일본만화 '바람의 검심'과 관계가 있을 법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만, 만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철도원'의 원작자 아사다 지로의 원작 소설에 기반을 둔 영화이다.
영화는 액자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인이 된 사이토 하지메가 손자를 치료하기 위해 들른 병원에서 우연히 본 신선조 대원의 사진을 보면서 옛일을 회상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주인공은 사이토 하지메이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사진 속의 인물인 요시무라 칸이치로라 할 수 있다. 요시무라 칸이치로는 난부 모리오카(이와테현)의 무사 출신으로 가족의 부양을 위해 바쿠후의 수도였던 쿄토로 올라와서 신선조에 가입한다.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나칠 정도로 돈을 밝히는 등의 모습으로 대원들의 질투를 사는 사람이었다. 특히 3번대 대장이었던 사이토 하지메는 그를 탐탁지 않게 보면서 죽이려고까지 했었다.
가이샤쿠(할복시 목을 베는 역할)를 수행한 대가로 돈을 받는 요시무라는 사람 목을 베면서 칼을 손질해야 한다며 돈을 더 받는다. 그의 실력을 마음에 들어 한 상층부는 돈을 더 주지만 사이토 등의 사람들은 그를 탐탁지 않게 바라본다. 실력은 있지만 무사답지 않게 돈을 밝히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호감을 사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밝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한 사연이 밝혀지면서 요시무라의 진심은 더욱 드러나게 된다. 이 영화가 수작이 된 데에는 바쿠후 말기에 대한 묘사도 있겠지만, 그보다 요시무라의 부정(父情)을 애절하게 묘사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배경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번'이라는 제도를 이해하는 것이 좋다. 당시 일본은 수많은 '번(藩)'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번은 영주가 다스리는 지방정부의 배경을 띄고 있었으며 수도 쿄토에는 지금의 대사관에 해당하는 번저가 있었다. 번에 속한 무사가 허락 없이 해당 번을 나가는 것을 '탈번'이라고 해서 오늘날 탈영의 그것에 가까운 엄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당 가족들이 고통받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요시무라가 탈번을 결심한 것은 바로 가족들을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요시무라의 속물에 가까운 부정만 보여주었으면 지금 받는 평가보다는 박하게 받았을 것이지만 신선조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충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그의 실력과 충성, 부정은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의 수많은 갈등을 헤쳐나갔음에도 신선조는 메이지 유신의 여파로 몰락하게 되고 바쿠후를 수호하던 부대에서 오히려 반군의 위치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는다. 그 와중에도 요시무라는 신선조에 대한 배신은 커녕 더욱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동시에 소꿉친구인 오노 지로에몬과의 신의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충과 의를 아름답게 보여주었기에 이 영화는 걸작으로 남았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수많은 비극이 숨어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총탄 속에 몸을 던지는 요시무라, 동란의 와중에 꽃피우지 못한 사랑을 했던 사이토와 누이라는 기생, 죽음으로 친구의 명예와 신의를 지킨 요시무라와 오노 지로에몬과의 우정 등. 시대의 혼란 속에 꽃피우지 못한 우정과 사랑이 이 영화의 큰 물줄기를 이루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가 수작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대적 배경이나 일본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영화는 2004년 NHK드라마 '신선조'를 본 사람에게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드라마 상에서는 콘도 국장이 유비 못지 않은 호걸로 나오지만, 영화상에서는 속물로 나온다. 또한, 세리자와 카모로 나온 사토 코이치가 신선조 3번대 대장 사이토 하지메를 맡았으며 칼 같은 이미지의 야마나미 케이스케를 맡은 사카이 마사토는 1번대 대장 오키타 소이치를 연기했다. 이러한 캐스팅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일본 영화 혹은 드라마가 가지는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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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서영갑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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