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 모험의 시작
西遊降魔篇 , Journey to the West: Conquering the Demons , 2013
호불호가 가장 명확히 갈리는 배우 혹은 감독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주성치일 것이다. 오버스러운 연기. 이상한 유머코드, 엽기, 무협, 액션, 판타지. 각종 장르의 범벅. 주성치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저런 것도 영화일까? 란 생각을 불러일으켰던 그의 영화들은 시간과 세월을 거쳐 그 이상하고도 낯선 모험담과 액션, 유머들을 끝까지 고수해왔고 그리고 세상의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지난 20년 넘는 시간동안 그의 세계관에 관객들이 시나브로 중독되었다고 할까? 허무와 엽기가 뒤섞인 그의 유머들이 어느 순간 진정성을 갖추기 시작하더니 서유기:월광보합과 선리기연에서는 급기야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았다. 감동까지 갖추기 시작한 주성치의 영화세계. 그의 최고작이라 일컬어지는 서유기 시리즈의 3번째 이야기가 다시 찾아왔다. 곽자건과 공동 연출하며 주성치의 8번째 감독 작품. <서유기: 모험의 시작>은 어떤 영화일까?
<서유기: 모험의 시작>은 어느 한가로운 어촌마을의 전경에서 시작된다. 대여섯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한가로이 아빠와 장난치고 있던 때 거대한 요괴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하나 둘 헤친다. 가짜 퇴마사가 요괴를 잡았지만 그것은 진짜 살인을 한 요괴가 아니었다.
이때 순진무구한 믿음으로 세상의 요괴를 회개하고자 하는 진현장이 나타난다. 동요 300수로 요괴들 속의 악함을 버리고 선함을 일깨우려는 진현장은 그의 뜻대로 요괴들을 선함의 세계로 이끌 수 있을까? <서유기: 모험의 시작>은 진현장과 그가 맞서 싸우는 몇몇의 요괴. 그리고 퇴마사들의 이야기다.
이미 눈치챘을 테지만, 바로 이 진현장이 삼장법사이다. <서유기: 모험의 시작>은 삼장법사의 탄생과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의 만남. 그리고 그들이 천축으로 떠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상당히 진지하다. 퇴마사들과 요괴들이 싸우는 장면은 주성치 영화답지 않을 만큼 유머는 빠져 있고 긴장감을 주는 액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잔인한 장면도 상당히 등장하며 SF적 완성도도 뛰어나다. 서유기의 판타지한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 놀랍기까지 하다.
<서유기: 모험의 시작>역시 주성치가 90년대 보여주었던 그 엽기적인 유머들보다는 훨씬 장르적인 틀 안에서 서유기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따라간다. 진현장이 강 요괴 사오정을 물리치는 이야기. 저팔계가 어찌하여 악한 요괴가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 원숭이 왕 손오공과 삼장법사의 탄생 같이 영화는 원작 서유기의 이야기를 충실히 보여준다.
또한 퇴마사 단소저와의 만남을 통해 사랑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는 진현장의 이야기는 가슴 울컥하게 만드는 감동을 준다. 정신없이 유치하고 허무맹랑하다가도 문득 한순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감동은 여전히 유효하다.
주성치 영화의 허무맹랑함을 즐기던 마니아들에게는 좀 심심할 수도 있을테지만, 소림축구 이후로 주성치의 영화들은 주류 영화에 근접해있다. 좀더 많은 대중들이 그의 영화를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만의 엽기적인 유머들은 그보다 수위 낮은 유머와 감동으로 대체되고 독특한 몸개그는 오버 액션의 수준으로 변화되면서 주류영화와 맞닿아있다. 그런 변화의 덕분인지 <서유기: 모험의 시작>은 2013년 중국 개봉당시에 흥행이 대단했다. 주성치 영화의 유머와 감동이 중국 대륙으로까지 뻗어 나간 것이다.
단소저 역을 맡은 서기. 영화 내내 남자 같은 액션을 펼치고 얼굴에 숱검댕이를 쓰고 나오지만 달빛 아래 저팔계를 유혹하기 위해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 아 역시 서기구나! 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여배우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주성치 영화에서 여배우들은 외모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서기 역시 영화 내내 누더기를 걸치고 나오지만 강렬한 액션을 선보이며 홍일점 역할을 톡톡히 잘 해내고 있다. 진현장을 맡은 배우 문장은 영화 속 온갖 풍파 속에서도 선함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무시무시한 요괴들 앞에서 동요300수를 선보이며 믿음과 회개의 길로 요괴를 인도하려는 퇴마사 역할로 이만한 배우가 어디 있을까 싶다.
장르 불문하고 자기 스타일의 영화를 20년간 찍어온 홍콩 영화계의 이단아 주성치. 그의 최고작은 아마도 아직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리라. 언제나 변신을 꾀하는 주성치의 영화를 볼때면 이런 시도들 때문에 관객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 주성치의 영화를 사랑해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서유기: 모험의 시작>을 통해 주성치의 영화가 얼마나 변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재밌는 감상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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