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빈센트
St. Vincent , 2014
서양에서 친구 – friend – 라는 말은 ‘친구’라는 뜻 외에도 나와 같은 편, 동료, 후원자, 멘토 와 같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나와 같은 선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나의 친구라 할 수 있다. 영화 <친구>의 카피인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 이라는 뜻보다 더 광의적이며 포괄적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친구란 동년배를 뜻하고 연령이 차이가 나면 선배와 후배로 나뉘며 형 오빠 누나 동생으로 출생년 차이를 두는 관계만이 존재한다. 가끔 그런 연령차를 넘은 동료 관계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매우 드문 경우. 결국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 ‘친구’라는 포괄적 개념을 적절히 사용해서 넓은 인간관계와 좀더 다른 세계관을 펼치곤 한다. 개나 고양이를 또하나의 가족으로 상정하듯이, 아이와 어른이 친구가 되는 관계는 낯설지 않다. 세대를 너머서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그래서 계속해서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네마천국>의 토토와 알프레도가 그랬듯이 아이와 노인의 관계는 이상하게도 하나의 인생을 응축하여 보여주는 영화적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인생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인생을 달관한 자의 만남은 영화가 보여주는 인물의 인생을 통달하는 과정과 매우 잘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아이와 세상의 풍지평파를 다 겪은 노인과의 만남은 영화적 재미를 충족시킬 아주 많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기에 이 매력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올 것 같다.
<세인트 빈센트>는 이 ‘우정’에 대해서 다시한번 힐링해주는 마음 따뜻한 영화이다. 각박한 현실에서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는 건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행복한 시간으로 초대해주는 영화의 진면목은 사실 ‘우정’보다는 더 넓은 의미에서 인간에 대한 서로간의 신뢰와 의지가 아닐까.
아버지 없이 엄마와 함께 새 집으로 이사 온 올리버는 또래에 비해 왜소한 외모와 소심함으로 첫 등교한 학교에서 악동들에게 전화기도 뺏기고 집 열쇠도 잃어버린다. 올리버의 옆집에는 할아버지 빈센트가 살고 있는데 올리버가 이사 온 날부터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집에 들어가지 못하니 도움을 요청하고 올리버와 빈센트는 그렇게 친구가 된다.
올리버와 빈센트가 공식적으로 친구가 되는 건 이 둘이 서로 잘 지내고 소심한 올리버가 빈센트를 좋게 봐주고 빈센트의 연령과 모습이 믿음이 가게 되는 것을 올리버의 엄마가 보고서는 베이비시터로 정하면서 부터이다. 올리버와 빈센트는 그렇게 인생을 나누고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로 나가면서 올리버는 빈센트에게 인생을 배우고 빈센트는 올리버로부터 자신의 순수성을 재발견하는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하지만 빈센트의 인생은 위태로우면서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기에 평화로웠던 시간이 무너지는데…
빈센트가 올리버에게 가르쳐주는 인생이란 철학이나 정의, 도덕성 같은 부분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온 자만이 알고 있는 인생의 핵심 팁 같은 것이다. 올리버에게 싸우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이 영화의 포스터의 한 장면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남자가 남자에게 가르쳐주는 전술처럼 젊은 시대를 거쳐온 늙은이가 이제 막 소년을 살아가는 남자에게 전달하는 내면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올리버는 학교의 악당을 이길 목표로 빈센트의 싸움을 배우지만 빈센트는 인생의 전반적 의미를 가르쳐 준 것.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백윤식이 재희에게 싸움을 가르쳐 줄 때 별다른 거 없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분위기’였지만 빈센트가 올리버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실제로 싸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로서 학교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때 올리버에게는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 될 순간으로 읽혀진다.
하지만 그렇게 현실적인 빈센트는 비현실적이게도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가있는 아내가 있고 아내를 위해 헌신하는 남편의 모습을 갖고 있다. 잔디도 없는데 잔디를 깎게 하거나 밤술집에 아이를 데리고가 술집 여자를 보여주는 이 현실적이면서 지극히 무책임해 보이는 노인의 이면에는 결국 책임져야 할 자기 몫이 있었으며 자기 자신도 먹고 살아야 할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일어날 난관에 대해서 고민하고 걱정한다. 결국 빈센트는 경제력이 궁핍한 노인이었고 인생의 경험만이 남아서 올리버에게 줄 것은 그 경험의 결정체밖에 없었던 것.
착한 올리버는 그 뜻을 이해하고 빈센트의 곁에서 인생을 배운다. 다소 작위적이지만 올리버의 학교 발표 숙제가 ‘우리 주면의 성인’이라는 주제가 되는 것은 성인=세인트 라는 뜻으로 결국 빈센트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매우 따뜻하고 보고나서도 기분 좋게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특히 최근 같이 개봉한 <버드맨>에서도 호연을 펼친 나오미 왓츠가 스트리퍼로 나와서 또한 반갑게 빈센트의 인생 역정에 의미를 부여한다. 싼티 안나고 여전히 섹시하면서 내면의 따뜻한 정을 보여주는 여인으로 나온다. 빈센트가 올리버의 친구로서 베풀어주는 입장이라면 나오미 왓츠가 분한 다카는 빈센트에게 역으로 베풀어주는 입장이 된다.
즉, 영화에서 최고령으로 나온 빈센트는 어린 올리버에게는 멘토이지만 다카에게는 멘티가 되어 인생의 의미를 주고 받는 관계로 이어진다.
기타노 다케시의 <기쿠로지의 여름>이 여름방학 한 시절을 담아내며 세대간 우정 관계를 보여주었다면 <세인트 빈센트>는 세대를 너머 인간관계의 더 넓은 우정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매우 수단 좋은 발상으로 빈센트와 올리버 두 인물만 나오는 장면들이 다 재밌고 유쾌한 대화들로 이어진다. 큰 사건 없이 진행되다가 결국 그것들이 쌓여서 하나의 시절이 되고 올리버의 인생에 한 축이 되어 소년의 성장에 살이 되었다.
지금 주변의 동료, 친구, 가족, 이웃을 보면 이렇게 인생에 도움이 되는 어떤 사람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찾는 것도 하나의 인생 경험이다. 올리버는 소심하고 유약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성장시킬 도우미를 적절히 잘 찾았다. 그것도 기술이다. 인생이라는 싸움의 기술. <세인트 빈센트>는 가족과 함께 보면 좋을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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