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셀러
Good People , 2014

홀로 죽은 남자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당신은 빈말로라도 부자라고는 할 수 없는 경제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현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생활비 때문에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방음시설도 제대로 되지 않은 낡은 아파트에는 차압 증명서까지 날아온다.
복권에 당첨되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는 가난. 그런데 어느 날, 아랫집에 살던 독신 남자가 죽었다. 현장의 최초 발견자인 당신은 죽은 남자가 보관하고 있던 가방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당신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액수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 <언셀러>는 바로 그런 상황에 놓인 등장인물들의 행보를 그리고 있다.

주인 없는 돈
톰과 애나는 돈가방을 앞에 두고 갈등한다. 경제적으로 코너에 몰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고민이다. 부정한 돈이라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다. 아랫집에 살던 남자는 독신이었고, 죽은 후에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 일조차 하지 않는 무직이었다. 게다가 집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았다. 그런 남자가 비이상적으로 큰돈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는 분명 사연이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때, 그런 돈은 부정한 수단으로 모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돈이 필요해
톰과 애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좀처럼 경찰 앞에 나서지 못한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무척 불행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애나는 언니처럼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만, 톰은 현실적인 상황을 알고 애나와의 관계를 부담스럽게 느낄 정도다. 두 사람 다 경제적으로 넉넉할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다. 앞으로의 삶이란 대개 빤한 것이다. 오히려 아이가 생김으로서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모습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고민이다. 동시에 커다란 사회적 문제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신혼부부의 빈곤에 있다. 자력으로는 집 한 채조차 마련하기 힘든 요즘, 아이의 양육이란 기쁨이라기보다 부담으로 작용한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평균 비용은 이미 억대를 넘어섰고, 전문가들은 앞으로 더욱 상승세를 타리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결혼은 했어도 아이는 포기하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톰과 애나도 그런 부부 중의 하나다. 문제는 스스로의 의지나 결정이 아닌,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눈앞에 나타난 거액의 돈은 유혹일 수 밖에 없다.

의문의 전화, 그리고 위협
그러나 ‘부정한 돈’의 영향은 막강했다. 톰과 애나는 그들의 위협을 느끼지만 경찰에는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태다. 이 부부 역시 부정한 돈을 훔쳤기 때문이다. 여전히 돈의 행방을 쫓는 경찰과, 정체도 알 수 없는 무리들에게 동시에 쫓기기 시작하는 톰과 애나. 한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대가치고는 냉혹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평범한 시민이 평범한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그들은 때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전혀 다른 인물로 탈바꿈한다. <모범시민>의 클라이드가, <왼편 마지막 집>의 콜링우드 부부가, <쓰리 데이즈>의 존이 그랬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폭발적인 힘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마커스 세이키의 <굿 피플>
<언셀러>는 소설가 마커스 세이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원제는 <굿 피플>로서 아직 국내에는 정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브릴리언스> <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등으로 스릴러계의 신성이라 불리는 작가다. 특히 사람들의 비밀을 꿰뚫어보고, 행동을 예측하는 특수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브릴리언스>는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마커스의 데뷔작인 <칼날을 스스로를 상처입힌다>는 ‘스트랜드 매거진 비평가상’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한 이력을 남겼다. 등장인물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치밀한 설정이 단연 돋보이는 작가다. <굿 피플>또한 그러한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되었다.

행운인가 불운인가
톰과 애나가 죽은 남자의 집에서 돈을 발견한 것은 인생의 행운일까, 아니면 피해야만 했던 불운일까? 러닝타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의문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톰과 애나는 부정한 돈으로 인해 분명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남들에게 내놓고 자랑할 수는 없었지만, 그동안 목을 조여 오던 빚을 청산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대가 또한 혹독하게 치렀다. 부정한 돈을 사용했기에 경찰의 보호도 받을 수 없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자들에게 쫓기는 상황은 돈 가방을 손에 넣기 전으로 되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평범한 부부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한 긴장감으로 러닝타임 내내 손바닥에 땀을 쥐었다. 그러나 어떤 결말이든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들은 평생 남의 돈을 훔쳤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은 사람의 가치를 증명한다
. 개인의 노력이나 인성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안타깝고, 개선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희망을 가지고 사회에서 활동해야 할 젊은이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혀 포기를 선택하고, 꿈을 버린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범죄는 금전, 즉 돈에 의해서 발생한다.
<언셀러>는 한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면 더 큰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