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춘도
绣春刀 , Brotherhood of Blades , 2014

1960년대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홍콩의 무협영화들은 장르적으로 웨스턴 영화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는 해도 매우 새롭고 신선한 영화들이었다. 주인공들은 웨스턴의 총잡이 대신 검과 창을 휘두르는 무사로 대치되었고 황무지 대신 중국의 아름다운 강산을 배경으로 액션을 펼친다.
강호의 세계에서 의협심을 갖고 행동하는 주인공들 혹은 피맺힌 한으로 복수에 열을 올리는 인물들! 무협영화의 카타르시스에 빠져보지 않은 영화광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특히나 우아한 검무와 의협의 세계를 보여준 호금전의 영화와 남성적 액션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장철의 무협영화는 몇 십 년이 흘러도 관객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영화들이다.

영화 수춘도는 이런 홍콩무협영화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변형된 특성을 보여준다. 수춘도는 황제의 직속부대인 금의위의 세 의형제의 이야기이다. 명나라 말기 나라를 어지럽힌 탐관 오리 환관 위충현을 제거하라는 명을 받은 세 사람은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위충현이 죽었다며 증거로 시신을 조정에 보고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 세 사람의 운명은 꼬이게 된다. 늘 조정의 높은 관직에 오르고자 했던 첫째 노검성, 기녀를 사랑하게 되는 둘째 심련, 그리고 남모르는 비밀을 가진 셋째 근일천. 이 사건으로 인해 세 사람의 운명은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되고 영화는 그들의 복수와 대결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홍콩무협영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바로 피튀기는 강렬한 액션 장면과 복수의 테마를 잘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장철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영화는 남성적인 힘의 액션을 선사한다. 근래 몇몇 홍콩무협영화들이 보여주는 황당무계한 액션과 CG가 남용된 장면과 달리 영화 수춘도는 꼼꼼히 설계된 무협액션의 전형을 보여준다.
‘저것이 검의 힘이구나!’가 느껴지는 검술장면과 선혈이 낭자되는 피튀기는 액션 씬이 장철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리저리 꼬인 인생의 수렁에서 자신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돌진하는 주인공의 모습 역시 기존 홍콩 무협영화의 흐름과 상통한다.

그러나 영화 수춘도에는 분명하게도 기존의 홍콩무협영화와는 다른 변형된 특성 또한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욕망과 그들이 복수극을 펼치게 되는 동기에 있다. 영화 속에서 수춘도는 황제가 자신을 지키는 친위대인 금의위에게 하사한 검의 이름이다.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금의위는 수춘도를 잔혹하게 휘두른다. 마치 악당마냥 냉정하고 인정사정없이 금의위의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준다. 첫 시퀀스만 놓고 봤을 때, 나쁜놈처럼 보이는 세 의형제가 이토록 권력에 충성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욕망 즉 높은 관직에 오르고 싶고, 돈이 필요하고,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숨기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이전의 무협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강호의 의리, 의협심과는 다소 거리를 둔 주인공들의 모습이며 장르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스승을 위한 복수, 몰락한 가문을 위한 복수, 탐관 오리를 처형하고 백성들의 안녕을 위한 복수 등 이전의 무협영화들이 보여주었던 대의가 영화 수춘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세 명의 의형제가 환관 위충현과의 대결에서 고군분투 하는 이유는 모두 돈 때문이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 기녀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 위해서 필요한 돈. 이처럼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운다. 강호의 의리와 의협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으로 동기부여 된 인물들. 과연, 21세기 무협영화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을 욕망한 그들의 말로는 역설적이게도 무협의 전통으로 귀결된다. 복수의 테마는 그렇게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

중국의 신예 루양 감독의 세 번째 영화로 부산영화제에도 소개되었던 영화이다. 장첸이 둘째 형제의 심련을 연기한다. 말없이 우직하나 매서운 눈빛을 빛내는 장첸의 강한 검술 액션이 압도적인 매력을 풍기는 영화다. 나쁜 놈들과 더 나쁜 놈들의 대결.
그 진흙탕 싸움을 영화는 매우 매력적인 무협 액션으로 관객들의 눈을 홀리게 한다. 중국전통무협영화의 액션 장면과 새로운 세대를 대변하는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만난 영화 수춘도. 그 흥미로운 만남과 장르의 변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