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럽
Syrup, 2013

마케터를 꿈꾸는 마이클은 경영대에 입학한 후 자신의 이름을 ‘스캣’이라 짓는다. 이곳에서 나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오로지 이미지다. 고객에게 어필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이미지. 아이디어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스캣은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한 방’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세계 1위 음료회사의 인정받는 마케터, 섹시하고 매력적인 커리어우먼 식스. 그녀의 유일한 약점은 기발한 발상의 부족이다. 음료 광고 프로젝트를 앞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던 그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스캣을 만나고, 두 사람은 본사 임원들의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스캣의 아이디어를 도둑질한 그의 룸메이트 스키니로 인해 순조로웠던 그들의 앞날이 꼬이기 시작한다.

로맨스의 탈을 쓰고 있지만, 상당히 전문성 있게 마케팅을 다루는 작품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둑질당한 어린 대학생 스캣.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며 마케팅 분야의 신이 된 식스, 하늘을 날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추락할 수 있는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 이곳에서 완벽한 자기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품을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곧 그 사람의 능력이고, 그 아이디어를 위해 치밀한 뒷공작이 펼쳐지기도 한다. 사람 앞날은 알 수 없다는 말이 딱 이런 세상을 위한 표현인 것 같다. 우연에 기댄 운도 능력이고, 저급한 거래나 절묘한 표절 또한 능력이다. 기억하라, 마케터에게 중요한 건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다.

<시럽>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매력적인 커리어우먼을 연출한 엠버 허드가 아닐까. 검고 타이트한 원피스에 하이힐, 금발, 붉은 립스틱. 섹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커리어우먼 식스는 누구라도 빠져들게 만들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다.
이미지가 그렇다 보니 엠버 허드는 지금까지 매혹적인 여주인공, 히로인 역할을 도맡았는데 그녀의 초기 작품인 <겟 썸>의 ‘바하’가 엠버 허드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영화 자체는 십대 소년들의 파이트 클럽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아름답고 쿨한 엠버 허드의 존재감은 막강했다.

효과적인 광고 문구가 없으면, 아무리 세계적인 음료라 하더라도 시럽과 물의 혼합물에 불과하다. 이는 수익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마케팅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사람과 인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반짝이는 순간의 아이디어와, 이를 어떻게 활용하여 극상의 효과를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템테이션>은 ‘한 번 성공이 영원한 성공은 아니다’라는 주제를 내세우며, 성공한 사람들이 결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무명 시나리오 작가에서 일약 스타 작가가 된 ‘데이비드’는 평범한 대학생에서 ‘한 방’을 터뜨린 스캣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데이비드는 오랜 시간 헐리웃에서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스캣은 시작도 전에 아이디어를 빼앗겨 추락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스캣은 식스의 도움으로 재기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상승과 추락을 반복하는데, 만약 혼자였다면 그 난관을 헤쳐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마케팅이라는 비즈니스에 로맨스 요소를 결합하여, 남녀노소 구분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비즈니스의 세계가 바탕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주인공인 스캣과 식스의 심리변화도 절묘하게 드러난다.
사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인데, 어느 한쪽에 치중되지 않으면서 지루하지 않은 전개로 흘러간다. 유쾌하고 즐겁다. 등장인물 각자의 개성도 뚜렷하고, 악역들조차 각자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충분히 매력적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비즈니스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인지, 작중 시간의 흐름이 굉장히 빠르다. 너무 빨리 성공하고 그만큼 쉽게 몰락한다. 이 시장에서 끊임없이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고, 그 아이디어로 최대한의 수익을 창출할 마케팅 전략이다.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주인공 스캣은 그 와중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식스는 그런 마음이 프로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식스에게 다가가려는 스캣과 그에게 적당히 거리를 둔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식스. 두 사람의 밀당은 어디쯤에서 끝이 보일까.

섹시하고 매력적인 커리어우먼과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슈퍼루키의 조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된다. 굳이 마케팅 시장이 아니라도 이러한 설정은 여러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故박용하와 김민정 주연의 <작전>이 <시럽>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주식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개인투자자 현수는 우연찮게 ‘큰 손’들의 작전에 끼어들게 되고, 상류층의 비밀스러운 자산관리사 서연과 만난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작전’에는 사실 각자의 꿍꿍이가 있다. 누가 누구를 배신할지 모른다. 안심하는 순간 뒤통수 맞는다. 오로지 믿을 것은 자기 자신, 이라는 슬로건이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유일한 진리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