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
Shine , 1996

천재의 인생에 대한 영화는 언제나 관객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선사한다. 지나친 천재성으로 비극을 맞이한다던가, 우연한 계기로 천재성을 알게되 인생역전에 성공한다던가 말이다. 관련된 영화도 많다. 이름만 들어도 한번쯤 봤을만한 영화들은 피아니스트, 뷰티풀 마인드, 굿윌헌팅, 어거스터 러쉬 등등이다.
그 중 특히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는 바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음악과 영상에서 관객을 압도할 수 있고 거기에 연출까지 더한다면 사실 실패할 수 없는 공식이 아닐까 싶다. 샤인은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로 스토리는 비극으로 치닺지만 약간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찝찝함이 남는 비극이 아닌 비극을 통한 재생, 희망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본인이 천재성에 대한 영화 중 몇 손가락에 드는 영화라고 자부할만한 영화다.

우선 줄거리를 살펴보자. 어린 데이빗 헬프갓은 보수적인 유대인 집안에서 자란다. 데이빗의 아버지인 피터는 나치로부터 부모를 잃고 불우한 삶을 살았던 인물로 비쳐진다. 가족들이 공병을 수거해 생계를 이어갈 만큼 가난한 집안이지만, 아버지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데이빗을 포함한 모든 자식들이 음악(특히 피아노)에 소질을 보인다.어린 데이빗은 특히 실력이 뛰어나 다양한 대회에서 수상하지만 1등, 최고만을 바라는 아버지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아이다.
그러던 중, 데이빗의 천재성을 알아본 강사와 후원자를 통해 데이빗에게 미국 유학의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가족의 단합을 부르짖으며 아버지는 데이빗이 미국으로 못가게 막는다. 어린 데이빗의 상심이 깊어갈 때쯤, 데이빗에게 다시한번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영국왕실예술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초청장이 날라온 것이다. 당시 데이빗과 정신적 교감을 나누던 여류작가는 데이빗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격려했고, 그 결과 데이빗은 아버지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으로 떠날 수 있게된다.

영국에서 그의 삶은 나쁘지 않다. 아버지의 과도한 등살 없이 본인의 음악을 갈고 닦고, 훌룡한 스승을 만나 자신만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하지만, 어린시절부터 계속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와 가족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에 끊임없이 고통받던 데이빗은 결국 최종 콩쿠르에서 신들린 연주를 선보인뒤, 정신분열로 쓰러지게 된다.
정신병원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데이빗은 우연히 그를 알아보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외부로 다시 나서게 된다. 영화의 시작부분이기도 한 비오는 거리, 한 레스토랑에 도착한 그는 한 웨이트리스의 친절로 다시끔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었다. 비록 큰 극장의 콘서트는 아니지만 조그만 레스토랑에서 본인의 연주를 유감없이 공연하고 스스로에 대해 힐링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아버지가 찾아오게 된 후 데이빗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고, 그와 정서적 교감을 나눴던 웨이트리스의 친구, 길리언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길리언의 노력으로 다시한번 콘서트장에 선 그는 인생의 정수가 담긴, 즉 완성된 라흐마니노프의 3악장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뜨거운 갈채를 받고 본인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대립구조는 바로 피터와 데이빗,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다. 상대적으로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새대에서 흔히 생기는 갈등이 바로 부자간의 갈등이다. 보통은 부자간의 갈등이 사춘기나 혹은 취업, 결혼 등의 자연스러운 일에서 비롯되고 또 화해가 되기 마련이지만, 사실 요즘 태세가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힘든 시기를 겪어온 아버지 새대에서 보기엔 요즘 젊은이들이 못마땅하고 아직도 철없는 어린 아이로 볼 수 있지만, 또 아들 새대에서는 자신들만의 생각이 있고 할 말이 있다. 이런 논란은 얼마전 상영됐던 국제시장에서도 있었지만, 본인이 보기에는 특별히 답은 없는 것 같다. 어떤 갈등이든 가족이라는 것이 보호하는 울타리가 될지, 제한하는 테두리가 될지는 입장마다 다르니 말이다.

하지만 샤인에서 보여준 가족이란 테두리는, 특히 아버지의 존재는 테두리에 가깝다. 영화에서도 보여지지만, 피터는 데이빗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애기를 하며 “난 이랬으니, 넌 정말 행복한거야. 따라해보렴, 난 정말 행복한 아이다.”라는 말을 강요하며 본인이 이루지 못한 성취욕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에게 풀고 있으며, 또 가족이라는 대의명분아래 데이빗의 유학기회 등 아들이 성장할지도 모르는 기회를 데이빗이 아닌 본인이 의사결정을 해 거절해 버린다. 이런 성향은 데이빗에게도 트라우마로 작용해 모든 일에 아버지의 말을 따른다던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분명 과하고 보는 내내 불편함이 들긴 하지만 또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어느정도 이해는 된다. 불우한 가정환경, 당시 시대상의 유대인 가족,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 보수적인 성향 등을 살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데이빗을 구타하는 장면이나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순간부터 영화를 보고 있던 본인 역시 등을 돌리게 만든다. 아버지의 권위에 저항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온 데이빗은 유감없이 천재성을 발휘하며 피아노에 매진하지만 어린시절의 깊은 트라우마는 늘 데이빗의 목을 조여온다. 최고의 순간에 쓰러져 정신병을 얻은 데이빗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힐링을 하던 중, 한 평생 연락이 안되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리고 데이빗에게 하는 말은 다시 한번 데이빗을 시험하는 말을 던진다. “할아버지 이야기 알지? 난 이랬는데, 넌 정말 행복한 아이야. 자 따라해 보렴.” 이 순간 데이빗은 기억이 안난다고 대답함으로써 스스로 트라우마의 고리를 끊어 버린다. 이 후 데이빗은 재기에 성공하게 되고, 영화 마지막에 아버지의 무덤에 가서도 덤덤한 모습으로 “인생을 계속 흘러가는거야.”라고 말하며 그의 연인, 길리언과 묘비를 걸어나간다.

줄거리나 대립구조 외 특히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서두에 밝혔듯이 일단은 ‘음악’영화면서 연출이 좋고, 또 배우들의 열연이 아주 뛰어나다는 점이다. 영화 내에 삽입된 클래식 음악이 제법 많아 클래식 쪽으로 귀가 있는 분들은 영화감상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며, 특히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노력한 배우들의 열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장면이 많다.
킹스 스피치에서도 잘 갈무리된 연기를 선보였던 제프리 러쉬의 경우, 샤인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연기를 완벽에 가깝게 연기했고, 특히 피아노 연주 씬을 위해 제프리 러쉬나 청년 데이빗을 연기한 노아 테일러 역시 몇 달간 피아노를 맹연습했다고 한다. 극 중, 메인 곡으로 다뤄지는 라흐마니노프의 3악장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과 접점을 나타낼만한 미장센이면서, 또 연주하는 장면 자체가 관객을 손쉽게 압도해버릴 만큼 훌룡하다. 데이빗이 쓰러지기 전, 라흐마니노프 3악장을 연주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중간에 음악소리를 없애고 고요함 속에 데이빗의 땀과 손가락, 마찰음으로 뒤덮인 장면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샤인의 감독인 스콧 힉스의 경우, ‘세바스찬과 참새’라는 영화로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뒤, ‘철의 만리장성’과 같은 다큐멘터리, 멜로물 등 다양한 장르에서 맹활약 중인 유망한 감독이다. 오래 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초반부의 화이트밸런스 처리가 아주 깔끔하고 캐릭터 간 미디엄 샷, 장면별 앵글 구도의 변화는 필요한 부분마다 매끄럽게 진행된다.

결론적으로, 영화 ‘샤인’은 정말 추천하는 영화고, 본인 역시 아주 만족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필자 역시 보수적인 집안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공감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다만 아버지에 대한 분노나 트라우마가 너무 강하다면, 자칫 잘못해 감독의 메시지를 오해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데이빗에게 찾아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스스로 이겨내는 데이빗, 그 이후 데이빗의 삶은 더욱 빛난다. 데이빗 헬프갓이 아닌, 진정한 데이빗 샤인이 된 것이다. 마지막 묘비씬을 보면 영화 내내 아버지와의 장면에서 비쳐졌던 어두움이나 찝찝함은 없다, 오히려 밝고 잔잔하다. 감독이 주는 메시지가 확실해 지는 순간이다. 삶은 한 순간이고, 결국 끝은 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단, 사람간의 상처는 사람간의 힐링으로 다시 치유될 수 있고, 트라우마를 극복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